2026년 7월 9일 목요일

7월 넷째주 주일 오후 예배 대표기도문

7월 넷째주 주일 오후 예배 대표기도문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7월 넷째 주일 오후, 하루의 열기가 아직 땅 위에 남아 있는 시간에 다시 우리를 예배의 자리로 불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아침 예배의 은혜를 뒤로 흘려보내지 않게 하시고, 오후의 조용한 제단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다시 주님께 드리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이 바쁜 일정으로만 흘러가지 않게 하시고, 예배를 통해 시간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는 “광야의 그늘”을 생각하며 기도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뜨거운 광야를 지날 때, 하나님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듯이, 우리 인생의 무더운 길에도 하나님께서 친히 그늘이 되어 주심을 믿습니다. 세상의 길은 때로 메마르고, 우리의 마음은 쉽게 지치며, 믿음의 걸음도 흔들릴 때가 많지만,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는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우리는 구속받은 백성이면서도 광야에서 자주 원망했던 이스라엘과 닮았습니다. 은혜를 받았으나 금방 잊었고, 만나를 먹으면서도 애굽의 고기를 그리워했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았으면서도 세상의 방식과 욕망을 부러워할 때가 많았습니다. 우리의 불신앙과 조급함과 감사 없음과 자기중심적인 마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를 씻어 주시고, 성령으로 새롭게 하셔서 광야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7월의 끝자락을 향해 가는 이 계절 가운데 성도들의 몸과 마음을 붙들어 주옵소서. 계속되는 폭염 속에서 연로하신 어르신들이 지치지 않게 하시고, 병상에 있는 성도들에게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일터와 현장에서 땀 흘리는 성도들에게 새 힘을 주시며, 마음이 낙심한 이들에게는 주님의 위로가 시원한 생수처럼 임하게 하옵소서. 폭우와 태풍과 각종 사고로부터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지역 사회를 지켜 주옵소서.

휴가와 이동이 많은 계절입니다. 성도들의 오고 가는 발걸음을 보호하여 주시고, 쉼의 자리에서도 믿음의 중심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의 쉼이 하나님 없는 방종이 되지 않게 하시고, 창조주 하나님 안에서 몸과 영혼이 회복되는 안식이 되게 하옵소서. 가족들이 함께하는 시간에는 대화와 이해가 깊어지게 하시고, 여러 형편으로 쉬지 못하고 일터를 지키는 성도들에게도 하늘의 위로와 평안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여름성경학교와 수련회와 교회학교의 모든 여름 사역을 붙들어 주옵소서. 아이들과 청소년과 청년들이 단순히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으로 끝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부름받은 정체성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세상은 더 큰 성공과 더 빠른 길을 말하지만, 우리 다음 세대는 십자가의 길이 생명의 길임을 배우게 하옵소서. 그들의 마음에 심긴 말씀의 씨앗이 쉽게 마르지 않게 하시고, 때가 되어 믿음과 순종의 열매로 자라나게 하옵소서.

교사들과 봉사자들을 축복하여 주옵소서.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준비하고 섬기며 기도한 손길들을 기억하여 주시고, 그들의 수고가 사람의 칭찬보다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제물이 되게 하옵소서. 지친 몸에는 새 힘을, 섬기는 마음에는 기쁨을, 맡겨진 영혼을 바라보는 눈에는 사랑과 인내를 더하여 주옵소서.

우리 교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이 교회가 세상 한복판에 세워진 하나님 나라의 표지가 되게 하옵소서. 예배가 살아나게 하시고, 말씀이 권위 있게 선포되게 하시며, 성도들의 삶 속에 기도와 회개의 불이 꺼지지 않게 하옵소서. 사람의 취향과 시대의 유행을 따라 흔들리는 교회가 아니라, 사도적 복음과 십자가의 진리 위에 굳게 선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교회 안에 사랑과 질서와 거룩함을 더하여 주옵소서. 서로의 연약함을 판단하기보다 품게 하시고, 불평보다 중보가 앞서게 하시며, 말의 상처보다 위로의 언어가 많아지게 하옵소서. 작은 섬김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마음이 드러나게 하시고, 우리 교회가 지역 사회 속에서 지친 영혼들에게 그늘이 되고, 목마른 이들에게 복음의 생수를 전하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이 나라와 민족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갈등과 분열이 깊어지는 시대 속에서 위정자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백성을 섬기는 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정직과 공의가 회복되게 하시고, 약한 자와 가난한 자와 외로운 자들이 외면당하지 않는 사회가 되게 하옵소서. 한국 교회가 먼저 회개하고, 하나님 나라의 의와 평강을 세상 속에 증언하게 하옵소서.

오늘 오후 예배를 기쁘게 받아 주옵소서. 찬양과 기도와 말씀이 오직 하나님께만 향하게 하시고,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께 성령의 충만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선포되는 말씀이 우리의 심령을 깨우고, 우리의 삶을 다시 하나님 나라의 방향으로 돌이키는 생명의 말씀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남은 7월도 주님의 손에 맡깁니다. 광야 같은 시간에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믿게 하시고, 뜨거운 날에도 은혜의 그늘 아래 머물게 하옵소서. 우리의 인생이 방황이 아니라 순례가 되게 하시고, 우리의 하루가 하나님 나라를 향해 걷는 믿음의 걸음이 되게 하옵소서.

광야의 그늘이 되시며 생수의 반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신앙칼럼] 믿음으로 산다는 것, 히브리서 11장을 중심으로

 

믿음으로 산다는 것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막연한 낙관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현실을 모르는 순진함도 아니고, 마음만 강하게 먹으면 모든 일이 잘될 것이라는 자기 확신도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실제보다 더 실제로 붙드는 삶입니다. 눈앞의 상황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더 신뢰하고, 세상의 평가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무겁게 여기며,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하나님의 미래를 오늘의 삶 속에서 미리 살아내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합니다(히 11:1). 여기서 “실상”으로 번역된 말은 헬라어 휘포스타시스(ὑπόστασις)입니다. 이 말은 단순한 생각이나 감정이 아니라, 어떤 것을 든든히 받치고 서게 하는 기초와 확신을 뜻합니다. 믿음은 허공에 걸린 상상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 위에 삶을 세우는 영적 실재입니다. 성도는 아직 눈으로 다 보지 못해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 약속을 붙들고 살아갑니다.

히브리서 11장의 사람들은 모두 완벽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아벨은 죽임을 당했고, 노아는 보이지 않는 심판을 준비했으며,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사라는 늙은 몸으로 약속의 자녀를 기다렸고, 모세는 애굽의 보화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길을 택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삶의 조건이 평탄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불확실함과 기다림과 손해와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믿음은 환경이 좋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신실하시다는 사실에 뿌리내릴 때 자라납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먼저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인정하는 삶입니다. 세상은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가진 것, 이룬 것, 드러난 결과, 사람들의 인정이 인생의 무게를 결정하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보이는 세계가 전부가 아님을 압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약속이 있으며, 하나님의 심판과 상급이 있음을 압니다. 그래서 믿음은 성도의 시선을 바꿉니다. 눈앞의 손해가 전부가 아니고, 현재의 고난이 끝이 아니며, 사람들의 평가가 최종 판결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합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삶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 줍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습니다(히 11:8). 믿음은 언제나 모든 지도를 받은 뒤에 출발하는 삶이 아닙니다. 때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를 붙들고 익숙한 자리를 떠나는 것입니다. 안전해 보이는 계산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인도하실 미래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중요한 것은 목적지의 정보가 아니라 부르신 분의 신실하심이었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기다리는 삶이기도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의 사람들은 약속을 받았으나 그 완성을 다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은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자신들이 이 땅에서는 나그네와 외국인임을 고백했습니다(히 11:13). 이것이 믿음의 깊은 특징입니다. 믿음은 즉각적인 성취만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시간이 인간의 시간보다 깊고 크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성도는 기다림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아직 열매가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씨앗을 땅속에서 자라게 하심을 믿습니다.

또한 믿음은 선택으로 드러납니다.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받기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선택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히 11:24-26). 믿음은 마음속에만 머무는 관념이 아닙니다. 믿음은 무엇을 귀하게 여기고, 무엇을 포기하며,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를 결정하게 합니다. 참된 믿음은 가치의 질서를 바꿉니다. 세상이 크게 여기는 것을 작게 보게 하고, 세상이 작게 여기는 하나님의 뜻을 크게 보게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삶은 언제나 눈에 보이는 승리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기적적인 구원과 승리를 말하면서도 동시에 고문과 조롱과 결박과 옥에 갇힘과 죽음을 말합니다. 어떤 이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고 약속을 받았지만, 어떤 이들은 믿음으로 고난을 견디고 더 좋은 부활을 바라보았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의 믿음은 성공을 보장하는 기술이 아닙니다. 믿음은 어떤 결과 속에서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신뢰하는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을 이용하여 원하는 것을 얻는 삶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 자신을 가장 큰 분깃으로 삼는 삶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께 응답을 구하지만, 응답보다 하나님을 더 신뢰합니다. 길을 열어 주시기를 기도하지만, 길이 늦어질 때에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습니다. 치유를 구하지만, 아픔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붙듭니다. 믿음은 원하는 일이 이루어질 때만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께 마음을 맡기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결국 믿음의 사람들을 소개한 뒤, 히브리서 12장에서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라고 말합니다. 믿음의 최종 대상은 믿음의 영웅들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아벨도, 노아도, 아브라함도, 모세도 우리 믿음의 모범이지만, 그들의 믿음도 결국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참으시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시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성도의 믿음은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흔들리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오늘의 삶을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세우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이 흔들릴 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붙드는 것이고, 길이 분명하지 않을 때 부르신 분의 신실하심을 신뢰하는 것이며, 세상의 보화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더 귀히 여기는 것입니다. 믿음은 성도를 현실 밖으로 도피하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현실 한복판에서 하나님께 속한 사람답게 살게 합니다.

성도는 믿음으로 걷습니다. 때로는 갈 바를 알지 못해도 걷고, 때로는 오래 기다리면서 걷고, 때로는 손해를 감수하며 걷습니다. 그러나 그 걸음은 헛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걷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지 않으십니다. 믿음은 아직 보이지 않는 영광을 오늘 붙드는 손이며,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영원한 하나님께 닻을 내리는 영혼의 고백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성도는 결국 이 고백으로 하루를 살아갑니다. “주님, 제가 다 알지 못해도 주님은 아십니다. 제가 다 보지 못해도 주님은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믿음으로 살겠습니다.”

2026년 10월 넷째 주일 낮예배 대표기도문

  2026년 10월 넷째 주일 낮예배 대표기도문 거룩하시고 영원히 변함없으신 하나님 아버지, 결실의 계절 10월 넷째 주일에 저희를 주님의 전으로 불러 모아 예배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들녘의 곡식이 익고 나뭇잎이 제 빛깔을 드러낸 뒤 조용히 땅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