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하는 마음 앞에서
미움은 마음 깊은 곳에서 조용히 자라나는 어두운 불입니다. 처음에는 작은 상처처럼 시작됩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억울한 일, 배신의 기억, 비교와 시기, 반복된 실망이 마음에 남습니다. 그러나 그 상처가 하나님 앞에서 다루어지지 않으면 어느 순간 미움이 됩니다. 미움은 단순히 싫어하는 감정이 아닙니다. 미움은 상대를 마음속에서 지워 버리고 싶어 하는 마음이며, 그의 불행을 은근히 바라는 죄의 그림자입니다.
성경은 미움을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요한일서는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실제 행동으로 사람을 죽이지 않았더라도, 마음속 미움이 이미 생명을 해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살인은 손에서만 시작되지 않습니다.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상대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지 않고, 내 상처와 분노의 대상으로만 볼 때, 우리는 이미 사랑의 길에서 벗어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미움을 느끼는 모든 사람을 정죄 속에 가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복잡하고 연약한지 아십니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에게 “그저 잊어버려라”라고 가볍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시편에는 원통함과 분노와 탄식의 기도가 가득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의 어두운 감정을 숨기지 않고 하나님께 가져갔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성도는 미움을 품은 채 사람에게 폭발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아 놓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울분은 기도가 되고, 기도 속에서 미움은 다루어지기 시작합니다.
성경적 원리는 분명합니다. 우리는 죄를 미워해야 하지만,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악을 미워하십니다. 불의와 거짓과 폭력과 교만을 미워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도 죄에 대해 무감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죄를 미워하는 것과 사람을 증오하는 것은 다릅니다. 죄를 미워하는 마음은 거룩으로 향하지만,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은 파괴로 향합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심판하시는 분이면서도, 동시에 죄인을 부르시고 회개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감정적으로 원수를 좋아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원수 사랑은 죄를 덮어 주거나 불의를 묵인하라는 말도 아닙니다. 원수 사랑은 복수의 권리를 하나님께 맡기고, 악으로 악을 갚지 않으며, 상대의 영혼까지 하나님의 긍휼 아래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으로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원수 사랑은 성도의 도덕적 의지가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에서 시작됩니다.
십자가는 미움을 이기는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조롱하고 못 박는 자들을 향해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은 죄를 가볍게 여기신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가장 분명히 보여 주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 죄인의 미움보다 더 크다는 것을 보여 주는 자리입니다. 성도는 십자가 앞에서 자신도 용서받은 죄인임을 깨닫습니다. 그때 다른 사람을 향한 미움도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물론 용서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용서는 상처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을 정당화하는 것도 아닙니다. 필요한 경우에는 거리를 두고, 진실을 말하며, 정의로운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그러나 용서란 내 마음의 재판석에서 내려와 최종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미움은 상대를 묶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나를 묶습니다. 용서는 상대를 무조건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내 영혼이 미움의 감옥에서 풀려나는 은혜입니다.
성도는 미워하는 마음이 올라올 때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의 공의를 구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내 분노가 만족되기를 바라는 것입니까. 나는 죄를 미워하는 것입니까, 사람 자체를 지워 버리고 싶은 것입니까. 나는 하나님께 판단을 맡기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습니까. 이 질문은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우리를 다시 하나님 앞에 세웁니다.
미움을 이기는 길은 사랑을 억지로 짜내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받는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큰 긍휼을 입은 사람인지 기억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오래 참으셨고, 나를 버리지 않으셨으며, 나의 죄를 십자가에서 담당하셨다는 사실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잊으면 사람은 쉽게 미워합니다. 그러나 은혜를 기억하면 미움의 불길이 조금씩 낮아집니다.
성도의 마음에도 미움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미움에 마음의 왕좌를 내어 주지 않습니다. 미움을 하나님께 가져가고, 십자가 앞에서 다루며, 성령의 도우심으로 사랑과 용서의 길을 배웁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미움이 전혀 없는 사람이 성도가 아니라, 미움을 품고도 하나님께 나아가 치유받는 사람이 성도입니다.
그러므로 미움 앞에서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마음을 숨기지 말고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어두운 마음까지 아시며, 그 마음을 말씀과 은혜로 새롭게 하실 수 있습니다. 미움이 있던 자리에 긍휼이 자라고, 복수심이 있던 자리에 기도가 자라며, 상처가 있던 자리에 십자가의 위로가 스며들 때, 성도는 조금씩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 갑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의 굳은 마음을 만지시며 말씀하십니다. “미움에 너를 맡기지 말라. 너는 은혜를 받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