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30일 목요일

2026년 9월 셋째 주일 낮 예배 대표기도문

2026년 9월 셋째 주일 낮 예배 대표기도문|추석을 앞두고 화목을 구하는 교회

모든 가정의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

계절을 따라 만물을 아름답게 하시고, 우리의 가정과 교회를 사랑으로 붙드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리옵나이다. 추석을 앞둔 9월 셋째 주일에 우리를 예배의 자리로 불러 주시고, 말씀과 찬양과 기도로 하나님을 높이게 하셨으니 감사하옵나이다. 지난 모든 날에 필요한 양식을 공급하시고, 기쁠 때와 어려울 때에도 우리를 지켜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옵소서.

명절을 준비하는 분주함 가운데서도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게 하시고, 우리가 누리는 건강과 가정, 만남과 일용할 양식이 모두 하나님의 선물임을 고백하게 하옵소서. 이 시간 예배 가운데 우리의 염려를 내려놓고, 참된 평안과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용서하지 못한 우리의 죄를 고백하옵나이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의 허물과 죄를 고백하옵나이다. 가족을 사랑한다 하면서도 가까운 이들에게 더 쉽게 상처 주었고, 나의 생각과 형편을 앞세워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였나이다. 용서해야 할 일을 오래 품고 마음의 벽을 쌓았으며, 감사보다 불평을, 기도보다 염려를 더 많이 하였나이다.

우리의 교만과 완고함, 이기심과 무관심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의지하오니,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시고 화해의 영을 부어 주옵소서. 요셉이 자신에게 상처를 준 형제들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다시 품었던 것처럼, 우리도 받은 용서를 기억하며 먼저 사랑하고 용서하게 하옵소서.

추석의 모든 만남을 은혜 가운데 지켜 주소서

추석을 맞아 고향을 찾고 가족을 만나는 모든 성도들의 걸음을 안전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운전하는 이들에게 맑은 정신과 조심하는 마음을 주시며, 긴 이동과 혼잡한 길 가운데 사고와 위험을 막아 주옵소서. 먼 곳에서 돌아오는 자녀와 가족들이 건강하게 만나고 평안히 돌아오게 하옵소서.

명절의 만남이 겉으로만 화목한 시간이 되지 않게 하시고, 서로의 안부를 진심으로 묻고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랑을 나누게 하옵소서. 부모를 공경하게 하시고, 형제자매와 친족 사이에 이해와 배려를 더하시며, 오랜 갈등과 상처가 있는 가정에는 용서와 회복의 길을 열어 주옵소서. 가정마다 믿음의 말과 감사의 고백이 살아나게 하시며, 다음세대에게 복음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믿음의 가정이 되게 하옵소서.

외롭고 어려운 이웃을 기억하게 하소서

명절이 기쁨보다 더 큰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이들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사랑하는 이를 먼저 떠나보낸 가정, 홀로 지내는 어르신, 가족과 멀리 떨어져 지내는 이들, 병상과 요양시설에서 명절을 맞는 성도들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안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경제적 어려움으로 명절을 준비하기 힘든 가정과 이주민, 돌봄이 필요한 이웃들을 기억하시며, 교회를 통하여 따뜻한 관심과 실제적인 도움을 얻게 하옵소서.

병상에서 예배를 사모하는 성도들에게 치료와 회복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간병과 돌봄으로 수고하는 가족들에게 새 힘을 더하여 주옵소서. 생업의 어려움과 일자리의 불안으로 마음 무거운 가정에 필요한 길을 열어 주시며, 우리도 받은 은혜를 나누고 이웃의 형편을 살피는 사랑의 백성이 되게 하옵소서.

교회와 교단을 말씀 위에 세워 주소서

우리 교회의 예배와 모든 사역을 복되게 하옵소서. 담임목사님에게 말씀을 준비하는 지혜와 목양의 새 힘을 더하여 주시고, 선포되는 말씀마다 성도의 영혼을 위로하고 믿음을 굳게 세우게 하옵소서. 모든 교역자와 장로님들, 권사님들과 집사님들, 교사와 봉사자들이 겸손과 기쁨으로 맡은 사명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각 교단의 총회와 모든 공적 모임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사람의 뜻과 유익보다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의 거룩함을 먼저 구하게 하시며, 진리 안에서 바른 결정을 이루게 하옵소서. 한국 교회가 세상의 갈등을 닮지 않게 하시고, 복음의 진실과 사랑의 실천으로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게 하옵소서.

나라와 열방에 평화를 허락하소서

이 나라와 민족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공적인 책임을 맡은 이들에게 정직과 지혜를 주시고, 국민의 삶과 약한 이들의 형편을 세심히 살피게 하옵소서. 사회의 갈등과 불신이 깊어지지 않게 하시며, 서로를 존중하고 화해하는 길이 열리게 하옵소서. 한반도와 세계 곳곳의 전쟁과 폭력을 그치게 하시고, 재난과 가난, 박해로 고통받는 이웃들에게 피할 곳과 도움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는 선교사님들과 세계의 교회들을 지켜 주시며, 모든 민족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평화가 확장되게 하옵소서. 우리도 가정과 일터, 지역사회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며 화해와 평화의 통로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말씀을 따라 감사와 화목의 삶을 살게 하소서

이제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을 성령으로 붙들어 주시고, 선포되는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옵소서. 말씀을 듣는 데에만 머물지 않게 하시고, 추석의 모든 만남 가운데 감사와 사랑을 나누며, 어떤 형편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화목을 이루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6년 9월 둘째 주일 낮 예배 대표기도문

 

2026년 9월 둘째 주일 낮 예배 대표기도문|한 영혼을 귀히 여기는 돌봄의 교회

우리의 이름을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

한 사람의 이름과 삶의 형편, 말하지 못한 눈물과 마음의 무게까지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리옵나이다. 가을의 문턱에 선 9월 둘째 주일에도 우리를 예배의 자리로 불러 주시고, 말씀과 기도 가운데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셨으니 감사하옵나이다. 우리의 삶이 분주하고 마음이 흔들릴 때에도 우리를 잊지 아니하시며, 선한 목자가 되어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하옵소서.

우리의 형편은 서로 다르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된 교회로 불러 주셨으니 감사하옵나이다. 기쁨을 나누고 슬픔을 함께 짊어지며, 믿음 안에서 서로를 세워 가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가 서로를 바라볼 때 겉모습이나 형편으로 판단하지 않게 하시고, 주께서 귀히 여기시는 한 영혼으로 사랑하게 하옵소서.

사랑하지 못한 우리의 죄를 고백하옵나이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의 허물과 죄를 고백하옵나이다. 우리의 문제와 필요에만 마음을 빼앗겨 가까운 이들의 아픔을 세심히 살피지 못하였고, 위로해야 할 이에게 따뜻하게 말하지 못하였나이다. 믿음이 연약한 이를 기다려 주기보다 판단하였으며, 도움을 구하는 이웃의 형편을 알면서도 마음으로만 염려하고 실제로 다가가지 못하였나이다.

우리의 무관심과 이기심, 조급함과 게으름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위하여 낮은 자리로 오시고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의지하오니,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옵소서. 받은 사랑을 기억하며 사랑하게 하시고, 용서받은 자답게 용서하며, 말과 행동으로 그리스도의 긍휼을 나타내게 하옵소서.

병상과 어려움 가운데 있는 성도를 돌보소서

병상에서 예배를 사모하는 성도들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치료와 회복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오랜 질병과 통증으로 몸과 마음이 지친 이들에게 평안과 견딜 힘을 더하여 주옵소서. 수술과 검사를 앞둔 이들에게 두려움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주시며, 치료를 돕는 의료진의 손길에도 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간병과 돌봄의 책임을 감당하는 가족들을 위로하여 주옵소서. 피로와 염려 가운데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필요한 도움과 쉴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생업의 어려움과 경제적 염려로 마음 무거운 가정, 관계의 상처와 외로움 속에서 힘들어하는 성도들을 기억하시며, 교회를 통하여 위로와 기도, 실제적인 사랑을 얻게 하옵소서.

심방의 모든 걸음을 인도하여 주소서

가을 심방을 하나님께 맡겨 드리옵나이다. 찾아가는 이들의 발걸음마다 성령께서 함께하시고, 말하기보다 잘 듣는 마음을 주시며, 성도의 삶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함께 기도하게 하옵소서. 심방이 형식적인 방문에 머물지 않게 하시며, 낙심한 이에게 위로가 되고, 믿음이 흔들리는 이에게 다시 일어설 힘을 주고, 예배에서 멀어진 성도에게 돌아올 용기를 주는 은혜의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사도 바울이 성도들을 눈물과 겸손으로 돌보았던 것처럼, 우리도 맡겨진 영혼을 귀히 여기게 하옵소서. 찾아가는 이와 맞이하는 이 모두가 그 만남 가운데 참된 목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게 하시며, 가정마다 말씀과 기도의 평안이 회복되게 하옵소서.

목장마다 말씀과 사랑이 깊어지게 하소서

모든 목장을 말씀과 기도 위에 든든히 세워 주옵소서. 목장마다 서로의 이름과 형편을 기억하게 하시고, 기쁨을 함께 감사하며 아픔을 함께 짊어지게 하옵소서. 말씀이 삶을 비추게 하시며, 기도가 순서에 그치지 않고 서로의 영혼을 붙드는 실제적인 힘이 되게 하옵소서.

새가족과 믿음이 연약한 성도를 따뜻하게 품게 하시고, 오해와 상처로 마음이 멀어진 이들을 사랑으로 세워 주옵소서. 목장 안에 비교와 판단, 말의 상처가 자리 잡지 않게 하시며, 서로를 격려하고 믿음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목장을 통하여 가정이 회복되고, 지역사회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흘러가게 하옵소서.

목회자와 모든 일꾼에게 새 힘을 주소서

담임목사님에게 말씀을 준비하는 지혜와 목양의 새 힘을 더하여 주옵소서. 성도를 돌보고 말씀을 전하는 모든 과정 가운데 성령의 충만함을 허락하시며, 영육 간에 강건하게 하옵소서. 모든 교역자와 장로님들, 권사님들과 집사님들, 교사와 봉사자들에게도 사랑과 겸손, 충성된 마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수고하는 이들의 헌신을 기억하여 주시고, 섬김이 부담이나 자랑이 되지 않게 하시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교회를 세우는 기쁨의 사명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가 많은 일을 하는 교회를 넘어, 말씀과 사랑으로 한 영혼을 끝까지 품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나라와 열방을 긍휼히 여겨 주소서

이 나라와 민족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공적인 책임을 맡은 이들에게 정직과 지혜를 주시며, 질병과 돌봄, 주거와 일자리의 어려움 가운데 있는 국민들을 세심히 살피게 하옵소서. 갈등과 불신이 치유되고, 약한 이들이 보호받으며, 정의와 평화가 세워지는 사회가 되게 하옵소서.

전쟁과 재난, 가난과 박해로 고통받는 세계의 이웃들을 돌아보시며,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는 선교사님들과 세계 곳곳의 교회들을 붙들어 주옵소서. 우리도 가까운 이웃과 먼 열방을 위하여 기도하며, 하나님 나라의 사랑과 평화를 삶으로 나타내게 하옵소서.

말씀을 따라 서로를 세워 가게 하소서

이제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을 성령으로 붙들어 주시고, 선포되는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과 삶을 새롭게 하옵소서. 말씀을 듣는 데에만 머물지 않게 하시고, 이번 한 주도 서로를 돌아보며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고, 가정과 일터와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6년 9월 첫째 주일 낮 예배 대표기도문

 

2026년 9월 첫째 주일 낮 예배 대표기도문|말씀으로 새 계절을 여는 교회

새 날을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계절과 시간을 주관하시며, 우리의 모든 날을 선하신 뜻 가운데 이끄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리옵나이다. 여름의 긴 더위를 지나 9월의 첫 주일에 우리를 예배의 자리로 불러 주시고, 새로운 달과 새로운 걸음을 시작하게 하셨으니 감사하옵나이다. 지난 시간 우리의 가정과 일터와 교회를 지켜 주시며, 기쁠 때에도 어려울 때에도 떠나지 아니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찬양하옵소서.

새 계절을 맞으며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옵나이다. 지나간 일에만 머물거나 아직 오지 않은 일만 염려하지 않게 하시고,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과 은혜를 붙들게 하옵소서. 우리의 계획보다 앞서 가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9월의 모든 날을 믿음과 감사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말씀보다 내 생각을 앞세운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의 허물과 죄를 고백하옵나이다. 말씀을 들으면서도 삶으로 순종하지 못하였고, 기도하기보다 염려하였으며, 감사하기보다 부족한 것만 바라보았나이다. 우리의 생각과 경험을 더 의지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못하였고, 가까운 가족과 이웃에게 사랑과 인내를 보이지 못하였나이다.

우리의 교만과 게으름, 욕심과 무관심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의지하오니,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시고 새 영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말씀을 읽을 때 우리의 생각이 바로잡히게 하시고, 말씀을 들을 때 우리의 삶이 변화되며, 말씀을 따라 가정과 일터에서 진실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배의 기쁨을 회복시켜 주소서

하나님 아버지, 우리 교회의 예배를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익숙한 순서와 습관에 머물지 않게 하시고, 찬양과 기도와 말씀 가운데 살아 계신 하나님을 깊이 만나게 하옵소서. 예배를 드리는 우리의 마음에서 세상의 염려와 분주함을 내려놓게 하시며, 오직 하나님께 시선을 돌리고 온 마음으로 경배하게 하옵소서.

담임목사님에게 말씀을 준비하는 지혜와 성령의 충만함을 더하여 주옵소서. 선포되는 말씀이 성도의 영혼을 위로하고, 굳은 마음을 깨우며, 삶의 방향을 바로 세우게 하옵소서. 모든 교역자와 장로님들, 권사님들과 집사님들, 교사와 찬양대원, 목자와 봉사자들에게도 영육 간의 강건함을 주시며, 맡겨진 자리에서 기쁨과 겸손으로 교회를 섬기게 하옵소서.

새 학기와 다음세대를 붙들어 주소서

새 학기를 시작하고 학교생활에 적응해 가는 어린이와 청소년, 청년들을 지켜 주옵소서. 학업과 성적, 친구 관계와 진로, 새로운 환경을 두고 마음이 흔들리는 이들에게 평안과 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세상의 비교와 경쟁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게 하시며,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은사와 부르심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부모들에게는 자녀를 믿음으로 기다리고 양육할 사랑과 인내를 주시며, 교사와 교역자들에게는 한 영혼을 귀히 여기고 말씀으로 세울 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다음세대가 세상의 많은 소리 가운데서도 진리를 분별하게 하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고 따르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게 하옵소서.

목장과 가정에 말씀의 뿌리를 내리게 하소서

가을의 목장 모임을 하나님께 맡겨 드리옵나이다. 목장마다 말씀을 나누고 기도할 때 형식적인 모임에 머물지 않게 하시며, 서로의 이름과 형편을 기억하고 진실한 사랑으로 함께하게 하옵소서. 기쁨은 함께 감사하고, 아픔은 함께 짊어지며, 믿음이 연약한 성도를 정죄하기보다 따뜻하게 품고 세워 주게 하옵소서.

요시야 왕이 율법책의 말씀을 듣고 자신과 백성의 삶을 돌이켰던 것처럼, 우리도 말씀 앞에서 자신을 정직하게 살피게 하옵소서. 가정마다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시간이 회복되게 하시며, 부모와 자녀가 믿음의 이야기를 나누고, 부부와 가족이 서로를 위하여 축복하며 기도하게 하옵소서.

연약한 성도와 이웃을 돌보소서

병상에서 예배를 사모하는 성도들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치료와 회복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오랜 질병과 통증으로 지친 이들에게 마음의 평안과 견딜 힘을 더하여 주옵소서. 간병과 돌봄으로 수고하는 가족들을 위로하시며, 홀로 외로움을 견디는 어르신들과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생업의 어려움과 경제적 염려로 마음 무거운 가정에 필요한 길을 열어 주시고, 일터에서 수고하는 성도들을 안전하게 지켜 주옵소서. 우리 교회가 어려움 가운데 있는 성도를 외면하지 않게 하시며, 기도와 사랑, 실제적인 섬김으로 함께하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나라와 열방을 위하여 기도하옵나이다

이 나라와 민족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공적인 책임을 맡은 이들에게 정직과 지혜를 더하시고, 갈등과 불신이 치유되며, 약한 이들이 보호받고 정의와 평화가 세워지게 하옵소서. 청년들이 소망을 잃지 않게 하시고, 모든 국민이 서로를 존중하며 공동체의 선을 함께 구하게 하옵소서.

전쟁과 재난, 가난과 박해로 고통받는 세계의 이웃들을 돌아보시며,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는 선교사님들과 세계 곳곳의 교회들을 붙들어 주옵소서. 모든 민족 가운데 복음의 빛이 비추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의와 사랑과 평화가 더욱 넓게 확장되게 하옵소서.

말씀을 따라 새 달을 살아가게 하소서

이제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을 성령으로 붙들어 주시고, 선포되는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과 삶을 새롭게 하옵소서. 말씀을 듣는 데에만 머물지 않게 하시고, 9월의 모든 날에 믿음과 사랑으로 순종하며, 우리의 가정과 일터와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6년 7월 23일 목요일

2026년 8월 할렐루야 성가대 대표기도문

2026년 8월 할렐루야 성가대 대표기도문

온 땅이 찬양할 영광의 하나님 아버지, 8월에도 할렐루야 성가대로 함께 모여 예배를 준비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호흡과 목소리, 마음과 시간을 주께서 받아 주시고,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니 감사와 찬송을 올려 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의 찬양이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는 데 머물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높이며 성도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거룩한 제사가 되게 하옵소서. 곡을 연습할 때마다 겸손한 마음을 주시고, 음정과 화음뿐 아니라 믿음과 사랑의 조화를 이루게 하옵소서. 각자의 목소리는 다르지만 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시며, 서로의 연약함을 품고 격려하는 성가대가 되게 하옵소서.

무더운 여름 가운데 성가대원들의 건강을 지켜 주옵소서. 연로하신 대원들과 병환 중에 있는 이들을 돌보시고, 일터와 가정에서 지친 이들에게 새 힘과 평안을 더하여 주옵소서. 휴가와 여행길에 나서는 이들의 모든 걸음을 안전하게 인도하시며, 쉼의 시간 가운데 몸과 영혼이 함께 회복되게 하옵소서.

지휘자와 반주자, 모든 대원에게 지혜와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준비하는 수고를 기억하시고, 예배의 모든 순서가 질서와 은혜 가운데 진행되게 하옵소서. 찬양을 통하여 낙심한 심령이 위로받고, 믿음이 연약한 성도가 새 힘을 얻으며, 말씀을 듣는 모든 회중이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게 하옵소서.

말씀을 맡아 섬기시는 목회자와 교역자들에게 영육 간의 강건함을 더하시고, 우리 교회가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든든히 세워지게 하옵소서. 여름성경학교와 수련회, 다음세대를 위한 모든 사역 가운데도 함께하셔서 복음의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우리의 찬양을 기쁘게 받아 주시기를 바라오며, 영원히 찬양받으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8월 찬양팀 대표기도문

8월 찬양팀 대표기도문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아버지, 8월에도 찬양팀으로 함께 모여 하나님을 섬기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목소리와 호흡, 손과 마음을 주께서 사용하셔서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게 하시니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의 찬양이 사람의 감동이나 자신의 기량을 드러내는 일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성도들의 마음을 말씀과 기도로 이끄는 거룩한 섬김이 되게 하옵소서. 연습할 때마다 겸손한 마음을 주시고, 서로의 부족함을 사랑으로 품으며, 한마음과 한뜻으로 아름다운 화음을 이루게 하옵소서. 찬양하는 입술과 삶이 다르지 않게 하시고, 평소의 말과 관계와 가정에서도 복음의 향기를 나타내게 하옵소서.

무더운 여름 가운데 찬양팀 모든 지체의 건강을 지켜 주옵소서. 각자의 일터와 가정, 학업과 삶의 자리에서 지치지 않게 하시며, 병상에 있거나 어려움을 겪는 지체들에게 회복과 위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휴가와 여행길에 나서는 이들의 안전을 지켜 주시고, 쉼을 통하여 몸과 영혼이 새 힘을 얻게 하옵소서.

예배를 위하여 함께 섬기는 반주자와 음향, 영상, 안내와 모든 봉사자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각자의 은사를 따라 충성되게 섬기며, 보이지 않는 수고까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아 주옵소서. 예배마다 성령께서 함께하셔서 찬양을 통하여 낙심한 심령이 위로받고, 굳어진 마음이 열리며, 모든 성도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옵소서.

말씀을 맡아 섬기시는 목회자와 교역자들에게 영육 간의 강건함을 더하시고, 우리 교회가 말씀과 기도, 찬양과 사랑으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찬양을 기쁘게 받아 주시기를 바라오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나회 월례회 대표기도문

 

한나회 월례회 대표기도문

기도를 들으시며, 간구하는 자의 눈물을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 아버지, 한나회 회원들이 함께 모여 예배드리고 기도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세상의 분주함과 각 가정의 여러 사정을 내려놓고, 교회와 성도와 다음세대를 위하여 한마음으로 중보하게 하시니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사무엘을 얻기 전 오랜 세월 눈물로 기도하였던 한나처럼, 저희에게도 낙심하지 않고 기도하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기도가 자신의 소원만을 구하는 데 머물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과 교회의 필요, 복음이 필요한 이웃과 열방을 품는 기도가 되게 하옵소서. 입술의 기도만이 아니라, 사랑으로 섬기고 위로하며 믿음의 본을 보이는 삶으로 기도하게 하옵소서.

한나회를 이루는 권사님들의 건강과 가정을 지켜 주옵소서. 연로함과 질병, 여러 삶의 수고 가운데서도 영육 간에 강건하게 하시며, 기도할 때마다 성령께서 새 힘과 평안을 더하여 주옵소서. 자녀와 손주들, 믿지 않는 가족을 위하여 오랫동안 기도하는 간구를 기억하여 주시고, 각 가정에 믿음의 복이 이어지게 하옵소서. 마음의 아픔이나 외로움을 안고 있는 회원들을 위로하시며, 서로의 형편을 살피고 따뜻하게 품게 하옵소서.

교회를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말씀을 맡아 섬기시는 목회자와 교역자들에게 영육 간의 강건함과 성령의 지혜를 더하여 주시고, 말씀을 준비하고 성도들을 돌보는 모든 사역 가운데 은혜를 충만히 부어 주옵소서. 장로와 모든 제직, 교사와 봉사자들이 한마음으로 교회를 섬기게 하시며, 예배와 교육, 전도와 선교, 구제와 봉사의 사역마다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여 주옵소서.

병상에 있는 성도들과 어려움 가운데 있는 가정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치료가 필요한 곳에 치유의 은혜를 베푸시고, 경제적 어려움과 관계의 아픔, 자녀 문제로 눈물 흘리는 이들에게 피할 길과 소망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한나회가 이러한 성도들을 이름으로 기억하며, 사랑의 기도와 섬김으로 곁을 지키게 하옵소서.

다음세대를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어린이와 청소년, 청년들이 세상의 유혹 속에서도 말씀을 사랑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의 중심에 모시게 하옵소서. 선교지에서 수고하는 선교사님들과 그 가정을 보호하시고, 복음의 문을 넓게 열어 주옵소서.

이 한나회의 모든 기도를 기쁘게 받아 주시고, 저희의 작은 간구를 통하여 교회와 가정, 이 땅과 열방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더욱 아름답게 드러나게 하옵소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6년 8월 장로회 대표기도문

2026년 8월 장로회 대표기도문

교회의 머리 되시며, 말씀과 성령으로 주의 몸 된 교회를 친히 다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 무더운 여름 8월의 장로회로 함께 모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지난 한 달 동안에도 교회와 성도들의 가정, 목회자와 모든 일꾼들을 지켜 주시고, 맡겨진 직분을 따라 기도하며 섬기게 하시니 모든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에게 장로의 직분을 맡기신 뜻을 깊이 깨닫게 하옵소서.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양 떼를 사랑으로 돌보고 말씀과 기도로 교회를 세우라고 맡기신 거룩한 책임임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저희 안에 교만과 자기 의, 조급함과 판단하는 마음이 있다면 용서하여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과 섬김을 본받아 충성하게 하옵소서.

교회의 모든 성도를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폭염과 여러 질병 가운데 성도들의 건강을 지켜 주시고, 병상에서 치료받는 이들과 마음의 근심으로 지친 이들을 위로하여 주옵소서. 경제적 어려움과 가정의 문제, 자녀와 관계의 아픔을 안고 기도하는 성도들에게 피할 길과 새 힘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저희 장로들이 성도들의 형편을 세심하게 돌아보고, 말보다 기도로 먼저 섬기며, 상한 심령을 품는 목자의 마음을 갖게 하옵소서.

여름성경학교와 수련회, 각 부서의 여름 사역을 은혜 가운데 인도하여 주옵소서. 수고하는 교역자와 교사, 봉사자들에게 건강과 기쁨을 더하시고, 다음세대의 마음에 심긴 복음의 씨앗이 믿음의 열매로 자라게 하옵소서. 장로회가 다음세대를 위하여 더욱 기도하며, 교회의 교육과 선교, 전도와 구제의 사역을 든든히 돕게 하옵소서.

말씀을 맡아 섬기시는 목회자와 교역자들을 특별히 붙들어 주옵소서. 영육 간에 강건하게 하시고, 말씀을 연구하고 성도들을 돌보는 모든 목회 위에 성령의 지혜와 능력을 더하여 주옵소서. 저희 장로들이 목회자를 사랑과 기도로 세우며, 당회와 제직회, 교회의 모든 사역 가운데 한마음으로 협력하게 하옵소서.

이 시간 나누는 모든 논의와 계획 위에 성령께서 함께하여 주시고, 사람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가 말씀과 기도 위에 굳게 서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며, 지역사회와 열방에 복음의 빛을 비추게 하옵소서. 우리의 참된 목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6년 7월 22일 수요일

2026년 8월 제직회 대표기도문

2026년 8월 제직회 대표기도문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말씀과 성령으로 주의 몸 된 교회를 친히 세워 가시는 하나님 아버지, 무더운 여름 8월의 제직회로 함께 모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지난달의 모든 사역과 예배를 지켜 주시고, 폭염과 장마 가운데서도 성도들의 가정과 일터를 보호하여 주셨으며,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고 섬기는 마음을 잃지 않게 하시니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직분을 맡은 저희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면서도 때로는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앞세우고, 기쁨으로 감당해야 할 일을 부담과 불평으로 대하였음을 고백합니다. 보이지 않는 섬김을 가볍게 여기고, 다른 이의 수고를 충분히 돌아보지 못했으며, 기도하기보다 염려하고 사랑하기보다 판단하였던 저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낮아지셔서 섬기신 사랑을 본받게 하시고, 우리의 직분이 명예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거룩한 책임임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이 시간 제직회를 통하여 나누는 모든 보고와 계획, 논의와 결정 위에 성령께서 함께하여 주옵소서. 말하는 이에게는 온유함과 지혜를 주시고, 듣는 이에게는 겸손과 분별력을 더하여 주옵소서. 서로의 의견이 다를 때에도 감정과 서운함에 머물지 않게 하시고, 교회의 유익과 복음의 사명을 먼저 구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모든 결정이 사람의 뜻을 드러내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성도들을 유익하게 하는 길이 되게 하옵소서.

무더운 여름을 지나는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뜨거운 현장과 일터에서 수고하는 이들에게 건강과 힘을 더하여 주시고, 연로하신 어르신들과 병상에서 치료받는 성도들, 마음의 근심과 외로움으로 지친 이들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갑작스러운 호우와 태풍, 휴가철의 여러 안전사고로부터 성도들의 가정과 지역사회를 보호하여 주옵소서. 경제적 어려움과 자녀 문제, 관계의 아픔으로 기도하는 가정마다 피할 길을 열어 주시며, 우리 교회가 어려움을 겪는 성도들을 기도와 사랑으로 세심하게 돌보게 하옵소서.

여름성경학교와 수련회, 각 부서의 여름 행사를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준비하고 진행하는 교역자와 교사, 찬양과 기도, 식사와 차량, 안내와 후원으로 섬기는 모든 봉사자의 수고를 기억하여 주옵소서. 지친 몸에는 회복을, 마음에는 기쁨을 더하시며, 모든 일정 가운데 안전을 지켜 주옵소서. 어린이와 청소년, 청년들의 마음에 심긴 복음의 씨앗이 자라나 세상의 유혹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믿음의 열매로 나타나게 하옵소서.

교회의 가을 사역을 준비하는 모든 과정에 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예배와 교육, 전도와 선교, 구제와 봉사의 사역이 형식적으로 흐르지 않게 하시고, 성도들의 삶을 새롭게 하며 이웃에게 복음의 소망을 전하는 사역이 되게 하옵소서. 장로와 권사, 안수집사와 집사, 교사와 각 기관의 일꾼들이 서로 협력하며 맡겨진 자리를 충성되게 감당하게 하옵소서. 새로 나온 성도와 믿음이 연약한 이들이 교회 안에서 따뜻한 사랑과 돌봄을 경험하게 하시며, 모든 성도가 한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 가게 하옵소서.

교회의 재정과 모든 물질을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성도들이 믿음으로 드린 헌금이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투명하고 지혜롭게 사용되게 하시며, 재정을 맡은 이들에게 정직함과 책임감을 더하여 주옵소서. 부족한 곳에는 필요한 은혜를 채워 주시고, 풍성함 가운데서도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고백하며 감사하게 하옵소서.

말씀을 맡아 섬기시는 목회자와 교역자들을 붙들어 주옵소서. 영육 간에 강건하게 하시며, 말씀을 연구하고 기도하며 성도들을 돌보는 모든 목회 위에 성령의 지혜와 능력을 더하여 주옵소서. 목회자의 가정과 건강을 지켜 주시고, 선포되는 말씀마다 죄인은 돌이키며 상한 심령은 위로받고 믿음이 연약한 성도는 굳게 세워지게 하옵소서.

이 제직회를 통하여 우리 교회가 더욱 말씀과 기도 위에 든든히 서게 하시고, 사랑으로 하나 되어 지역사회와 열방에 복음의 빛을 비추게 하옵소서. 모든 일을 주께 맡겨 드리오며, 교회의 머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6년 제직회 대표기도문

 

2026년 제직회 대표기도문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말씀과 성령으로 주의 몸 된 교회를 친히 세워 가시는 하나님 아버지, 2026년 제직회로 함께 모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각자의 삶과 섬김의 자리에서 저희를 지켜 주시고, 교회의 사역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길을 함께 기도하게 하시니 모든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에게 직분을 맡기신 뜻을 깊이 깨닫게 하옵소서. 직분을 명예나 권리로 여기지 않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음을 기억하며 겸손히 감당하게 하옵소서. 저희 안에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앞세우는 마음, 인정받고자 하는 욕심, 다른 이의 수고를 가볍게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용서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의지하여,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교회의 덕을 먼저 구하게 하옵소서.

이 시간 제직회를 통하여 나누는 모든 보고와 계획, 논의와 결정 위에 성령께서 함께하여 주옵소서. 사람의 지혜와 계산만을 의지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믿음과 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말하는 이에게는 온유함을, 듣는 이에게는 겸손함을 주시며, 의견이 다를 때에도 다툼이나 서운함에 머물지 않고 기도와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하옵소서. 모든 결정이 교회의 유익과 복음의 확장,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되게 하옵소서.

교회의 예배와 교육, 전도와 선교, 구제와 봉사의 모든 사역을 붙들어 주옵소서. 다음세대가 말씀 위에 굳게 서도록 교회학교와 청년 사역을 복되게 하시며, 믿음이 연약한 성도와 새로 나온 이들을 따뜻하게 돌보게 하옵소서. 지역사회의 어려운 이웃을 외면하지 않게 하시고, 교회가 복음의 빛과 사랑의 손길을 함께 드러내게 하옵소서. 선교지에서 수고하는 선교사님들과 그 가정을 지켜 주시며, 우리 교회가 기도와 물질과 사랑으로 선교의 사명에 충성하게 하옵소서.

교회의 재정과 모든 물질을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성도들이 믿음으로 드린 헌금이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투명하고 지혜롭게 사용되게 하시며, 재정을 맡은 이들에게 정직함과 책임감을 더하여 주옵소서. 필요한 곳에는 부족함이 없게 채워 주시고, 풍성함 가운데서도 교만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고백하게 하옵소서.

말씀을 맡아 섬기시는 목회자와 모든 교역자들에게 영육 간의 강건함을 더하여 주옵소서. 말씀을 연구하고 기도하며 성도들을 돌보는 사역에 성령의 지혜와 능력을 부어 주시고, 목회자의 가정과 건강을 지켜 주옵소서. 장로와 권사, 안수집사와 집사, 교사와 모든 봉사자에게도 충성된 마음을 주셔서 맡겨진 자리에서 기쁨으로 섬기게 하옵소서.

이 제직회를 통하여 우리 교회가 더욱 말씀과 기도 위에 든든히 서고, 사랑으로 하나 되며, 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힘 있게 나아가게 하옵소서. 모든 일을 주께 맡겨 드리오며, 교회의 머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6년 7월 18일 토요일

8월 새벽 예배 대표기도문 모음

8월 새벽 대표기도문

8월 첫째 주 새벽예배 대표기도문

어둠을 밝히시고 새로운 아침을 열어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8월의 첫 주를 맞아 고요한 새벽에 저희를 깨우시고 예배의 자리로 불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지난 일곱 달 동안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변함없이 붙들어 주셨으며, 새로운 달을 믿음으로 시작하게 하신 은혜를 찬양합니다.

뜨거운 햇빛 아래 곡식을 익게 하시고, 짙어진 나무를 통해 지친 이들에게 그늘을 주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보이는 변화가 더딜 때에도 땅속의 뿌리를 자라게 하시듯, 기다림과 시련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을 깊게 하심을 믿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말씀보다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고, 기도해야 할 때 염려하며, 감사할 자리에서 불평했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더위와 피곤함을 이유로 가족과 이웃에게 무심했고, 자신의 편안함을 위해 수고하는 사람들의 땀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하오니 보혈로 씻어 주시고, 성령으로 속사람을 새롭게 하옵소서.

8월의 모든 날을 하나님의 손에 맡겨 드립니다. 우리의 계획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며, 말과 행동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게 하옵소서. 기쁠 때에는 교만하지 않고 감사하며, 어려움을 만날 때에는 낙심하지 않고 약속을 붙들게 하옵소서.

폭염 가운데 성도들의 건강을 보호하여 주옵소서. 홀로 지내는 어르신과 어린이, 만성질환자와 병상에 있는 환자들을 특별히 돌보시며, 냉방이 어려운 가정에 필요한 도움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뜨거운 현장에서 일하는 건설 노동자와 농어민, 택배와 배달 종사자, 환경미화원과 운송 노동자들에게 안전과 합당한 쉼을 더하여 주옵소서.

휴가와 여행을 떠나는 성도들의 오가는 길을 지켜 주시고, 교통사고와 물놀이 사고, 식중독과 각종 질병에서 보호하여 주옵소서. 휴가가 지나친 소비의 시간이 아니라 가족의 사랑을 회복하고, 지친 몸과 마음을 쉬게 하며, 창조주의 은혜를 발견하는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방학을 보내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유혹과 사고에서 보호하시고, 중고등부와 청년부 수련회, 여름성경학교와 선교 사역을 축복하여 주옵소서. 다음 세대가 복음을 분명히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고백하며, 받은 말씀을 일상의 순종으로 이어 가게 하옵소서.

담임목사님과 모든 교역자에게 성령의 충만함과 영육의 강건함을 더하여 주옵소서. 여름 사역으로 지친 종들에게 필요한 휴가와 쉼을 허락하시며, 그 가정에도 평안과 기쁨을 더하여 주옵소서. 교사와 찬양, 차량과 식사, 안내와 청소로 수고하는 모든 일꾼의 헌신을 기억하시고 하늘의 복으로 갚아 주옵소서.

이 시간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을 붙드시고, 선포되는 말씀이 오늘의 길을 밝히는 등불이 되게 하옵소서. 말씀을 마음에 품고 가정과 일터에서 사랑과 정직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참된 안식이요 생명의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8월 둘째 주 새벽예배 대표기도문

어둠을 물리치고 새날을 열어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8월 둘째 주의 고요한 새벽에 저희를 깨워 예배의 자리로 불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밤새 생명과 가정을 지켜 주시고, 세상의 분주한 소리가 시작되기 전에 말씀과 기도로 하루를 열게 하신 은혜를 찬양합니다.

뜨거운 햇볕 아래 곡식이 익어 가고, 나무가 지친 이들에게 그늘을 내어 주는 한여름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폭염 속에서도 모든 생명을 붙드시고 계절을 따라 열매를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습니다. 보이는 변화가 없을 때에도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시며, 기다림과 시련마저 선을 이루는 재료로 사용하심을 고백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지난날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말씀보다 자신의 생각을 옳게 여기고, 기도해야 할 때 염려했으며, 받은 은혜보다 부족한 것만 바라보며 불평했습니다. 더위와 피곤함을 이유로 가족과 이웃에게 무심했고, 자신의 쉼을 위해 수고하는 사람들의 땀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하오니 보혈로 깨끗하게 씻어 주시고, 성령으로 마음을 새롭게 하옵소서.

폭염이 계속되는 가운데 성도들의 건강을 지켜 주옵소서. 홀로 지내는 어르신과 어린이, 장애인과 만성질환자, 병상에 있는 환자들을 특별히 보호하시며, 냉방이 어려운 가정에 필요한 도움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뜨거운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농어민, 택배와 배달 종사자, 환경미화원과 운송 노동자들에게 건강과 안전한 휴식을 더하여 주옵소서.

휴가와 여행 중인 성도들의 오가는 길을 지키시고, 교통사고와 물놀이 사고, 식중독과 각종 질병에서 보호하여 주옵소서. 휴가를 통하여 지친 몸과 마음이 회복되고, 가족이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랑을 새롭게 하게 하옵소서. 형편상 휴가를 떠나지 못하거나 생업 때문에 쉬지 못하는 이들에게도 하늘의 위로와 필요한 쉼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방학을 보내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유혹과 사고에서 지켜 주시며, 생활의 질서와 믿음을 잘 지키게 하옵소서. 중고등부와 청년부 수련회, 여름성경학교와 선교 사역을 통하여 다음 세대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깊이 깨닫게 하시고, 받은 말씀과 결단이 학교와 가정의 삶으로 이어지게 하옵소서.

담임목사님과 모든 교역자를 성령의 능력으로 붙들어 주옵소서. 말씀과 목양, 여름 사역으로 지친 종들에게 영육의 강건함과 필요한 휴가를 허락하시며, 그 가정에도 평안과 기쁨을 더하여 주옵소서. 교사와 찬양대, 차량과 식사, 안내와 청소로 수고한 모든 일꾼의 헌신을 기억하시고 하늘의 복으로 갚아 주옵소서.

대한민국을 긍휼히 여기시며 정부와 공직자들에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먼저 생각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폭염과 집중호우, 태풍과 각종 재난에 철저히 대비하게 하시고, 경제적 어려움과 취업 문제로 낙심한 이들에게 필요한 길을 열어 주옵소서.

이 시간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을 붙드시고, 선포되는 말씀이 지친 영혼을 적시는 생명수가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말씀을 따라 정직하고 사랑하며, 맡겨진 자리에서 충성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참된 안식이시며 생명의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8월 셋째 주 새벽예배 대표기도문

어둠을 밝히시고 새로운 아침을 열어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8월 셋째 주의 고요한 새벽에 저희를 깨워 예배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밤새 생명과 가정을 지켜 주시고, 세상의 분주함이 시작되기 전에 말씀과 기도로 하루를 열게 하신 은혜를 찬양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지난날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말씀보다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고, 기도보다 염려를 오래 붙들었으며, 감사해야 할 자리에서 불평했습니다. 더위와 피곤함을 이유로 가족과 이웃에게 무심했고, 사랑으로 섬겨야 할 때 자신의 편안함만 구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하오니 보혈로 씻어 주시고, 성령으로 마음을 새롭게 하옵소서.

계속되는 폭염 가운데 모든 성도의 건강을 지켜 주옵소서. 홀로 지내는 어르신과 어린이, 만성질환자와 병상에 있는 환자를 특별히 보호하시며, 뜨거운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농어민, 배달과 운송 종사자들에게 안전과 합당한 쉼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집중호우와 태풍, 각종 사고로부터 이 땅을 지켜 주시고, 피해를 입은 이들의 일상을 속히 회복시켜 주옵소서.

휴가와 여행 중인 성도들의 오가는 길을 보호하시며, 쉼을 통하여 지친 몸과 관계가 회복되게 하옵소서. 방학의 후반을 보내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생활과 믿음의 질서를 잘 지키게 하시고, 새 학기를 건강하게 준비하게 하옵소서.

여름성경학교와 중고등부·청년부 수련회, 선교와 봉사를 통해 뿌려진 복음의 씨앗이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수고한 담임목사님과 교역자, 교사와 모든 봉사자에게 새 힘과 필요한 쉼을 주시며, 받은 말씀과 결단이 일상의 순종으로 이어지게 하옵소서.

대한민국을 긍휼히 여기시고 위정자들에게 공의와 지혜를 주시며, 경제적 어려움과 취업 문제로 낙심한 이들에게 일할 기회와 필요한 양식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교회가 지친 사람에게 그늘을 내어 주고, 외로운 이의 곁을 지키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이 시간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을 성령의 능력으로 붙드시며, 선포되는 말씀이 오늘의 길을 밝히는 등불이 되게 하옵소서. 들은 말씀을 마음에 품고 가정과 일터에서 정직과 사랑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생명이요 참된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8월 넷째 주 새벽예배 대표기도문

밤의 가장자리에서 새벽빛을 길어 올리시고, 잠든 세상 위에 새로운 하루를 펼쳐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8월 넷째 주의 이른 아침 저희를 깨워 기도의 자리에 세워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매미 소리가 조금씩 낮아지고 아침 햇살의 결이 달라지는 계절의 문턱에서, 변함없이 시간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지난여름의 뜨거운 날들을 지나오며 생명과 건강을 지켜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기쁨 가운데 웃었던 날과 어려움 속에서 눈물 흘렸던 순간까지도 선한 뜻을 이루는 재료로 사용하심을 믿습니다. 저희가 하나님을 붙들고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저희를 놓지 않으셨음을 고백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말씀보다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고, 기도보다 염려를 오래 품었으며, 받은 은혜보다 부족한 것만 바라보았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하오니 모든 허물을 씻어 주시고, 성령으로 속사람을 새롭게 하옵소서. 무더위에 지친 마음이 거칠어지지 않게 하시며, 말과 행동으로 이웃에게 사랑과 평안을 나누게 하옵소서.

남아 있는 폭염과 갑작스러운 기상 변화 속에서 성도들의 건강을 지켜 주옵소서. 병상에 있는 환자와 홀로 지내는 어르신, 뜨거운 현장에서 수고하는 노동자와 농어민을 보호하시며, 필요한 치료와 쉼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경제적 어려움과 취업 문제로 낙심한 가정에는 일용할 양식과 다시 일어설 길을 열어 주옵소서.

방학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가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지켜 주시며, 새로운 학기를 건강과 지혜로 시작하게 하옵소서. 비교와 경쟁에 눌리지 않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귀한 존재임을 기억하게 하시며, 친구와 교사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하옵소서.

여름성경학교와 수련회, 선교와 봉사를 통해 받은 말씀과 결단이 일상의 순종으로 이어지게 하옵소서. 수고한 담임목사님과 교역자, 교사와 봉사자들의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시키시며, 이름 없이 드린 헌신을 하늘의 기쁨으로 갚아 주옵소서. 가을 사역을 준비하는 모든 손길에 새 힘과 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을 성령의 능력으로 붙드시고, 선포되는 말씀이 오늘 걸어갈 길을 비추는 등불이 되게 하옵소서. 새벽에 받은 은혜를 마음에 간직하여 가정과 일터에서 정직하고 온유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어둠 속에서 생명의 길을 여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7월 마지막 주 새벽예배 대표기도문

7월 마지막 주 새벽예배 대표기도문

7 새벽 대표기도문

어둠을 물리치고 새 아침을 열어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7월의 마지막 주 새벽에 잠을 깨워 주의 전으로 불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아직 세상이 고요한 시간, 분주한 생각과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우리의 생명과 호흡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밤새도록 지켜 주시고 새로운 하루를 선물로 주신 은혜를 찬양합니다.

지난 한 달 동안 폭염과 장맛비 가운데서도 가정과 일터를 보호하시고 필요한 양식을 공급하여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기도한 일이 이루어진 날에도, 응답을 기다리며 눈물 흘린 날에도 변함없이 곁을 지켜 주셨음을 믿습니다. 저희가 하나님을 붙들고 살아온 것이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저희를 놓지 않으셨음을 고백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지난날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말씀보다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고, 기도보다 염려를 오래 붙들었으며, 감사해야 할 자리에서 불평했습니다. 더위와 피곤함을 이유로 가족과 이웃에게 무심했고, 바쁘다는 핑계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지나쳤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하오니 보혈로 깨끗하게 씻어 주시고, 성령으로 마음을 새롭게 하옵소서.

7월의 남은 시간을 믿음으로 잘 마무리하게 하시며, 이루지 못한 일에 집착하거나 지나간 실패에 매이지 않게 하옵소서. 잘못한 일은 정직하게 돌이키고, 받은 은혜는 세어 보며, 새로운 8월을 감사와 소망으로 준비하게 하옵소서. 오늘 해야 할 일을 분별하고, 작은 일에도 충성하며, 만나는 사람에게 온유와 사랑을 나타내게 하옵소서.

폭염 가운데 성도들의 건강을 지켜 주시고, 뜨거운 일터에서 수고하는 노동자와 농어민, 배달과 운송 종사자들을 보호하여 주옵소서. 홀로 지내는 어르신과 병상에 있는 환자, 경제적 어려움으로 낙심한 가정에 필요한 도움과 위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휴가와 여행을 떠나는 이들의 길을 안전하게 지키시며, 방학을 보내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각종 사고와 유혹에서 보호하여 주옵소서.

여름성경학교와 수련회, 선교와 봉사의 모든 일정을 주관하시고, 말씀을 전하는 교역자와 교사들에게 성령의 능력과 건강을 더하여 주옵소서. 수고하는 모든 일꾼의 헌신을 기억하시며, 다음 세대의 마음에 뿌려진 복음의 씨앗이 풍성한 믿음의 열매로 자라게 하옵소서.

담임목사님과 모든 교역자를 영육 간에 강건하게 붙드시고, 우리 교회가 말씀과 기도 위에 든든히 서게 하옵소서. 이 시간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께 성령의 권능을 더하시며, 선포되는 말씀이 오늘 걸어갈 길을 밝히는 등불이 되게 하옵소서. 들은 말씀을 마음에 품고 가정과 일터에서 순종하게 하옵소서.

어둠 속에 빛을 비추시며 새로운 길을 열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7월 마지막 주 새벽예배 대표기도문

어둠을 밝히시고 새로운 아침을 열어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7월의 마지막 주 새벽에 저희를 깨워 예배의 자리로 불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밤새 생명과 가정을 지켜 주시고, 고요한 새벽 공기 속에서 말씀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게 하신 은혜를 찬양합니다.

지난 한 달 동안 장맛비와 폭염 가운데서도 보호하시고, 필요한 양식과 건강을 허락하여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기도한 일이 이루어졌을 때뿐 아니라 응답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저희를 붙드셨음을 믿습니다. 저희가 하나님을 놓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저희를 놓지 않으셨음을 고백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더위와 피곤함을 이유로 기도와 말씀에 게을렀으며, 가족과 이웃에게 무심하고 날카롭게 대했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자신의 쉼만을 구하면서 다른 사람의 수고를 당연하게 여겼고, 감사보다 불평을 앞세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하오니 보혈로 깨끗하게 씻어 주시고, 성령으로 마음을 새롭게 하옵소서.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을 맞아 길을 떠나는 모든 가정을 지켜 주옵소서. 오가는 길에서 교통사고를 막아 주시고, 물놀이 사고와 식중독, 각종 질병으로부터 보호하여 주옵소서. 휴가가 지나친 소비와 즐거움만을 위한 시간이 아니라 지친 몸과 마음을 쉬게 하고, 가족의 사랑을 회복하며, 창조주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는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형편상 휴가를 떠나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의 휴식을 위해 일하는 이들에게도 필요한 쉼과 위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폭염 가운데 모든 성도의 건강을 지켜 주시며, 특별히 연로하신 어르신과 어린이, 만성질환자와 병상에 있는 환자들을 보호하여 주옵소서. 뜨거운 일터에서 수고하는 노동자와 농어민, 택배와 배달 종사자들에게 안전과 합당한 휴식을 허락하여 주시며, 교회가 어려운 이웃에게 시원한 물과 사랑의 손길을 나누게 하옵소서.

여름성경학교와 중고등부·청년부 수련회, 단기선교와 봉사의 모든 일정을 주관하여 주옵소서. 다음 세대가 복음을 분명히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게 하시며, 받은 말씀과 결단을 일상에서도 지키게 하옵소서. 이동과 숙박, 음식과 모든 활동 가운데 사고가 없도록 보호하여 주옵소서.

담임목사님과 교역자들에게 성령의 충만함과 영육의 강건함을 더하여 주옵소서. 말씀과 목양, 여름 행사로 지친 종들에게 필요한 휴가와 쉼을 주시며, 그 가정에도 평안과 기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교사와 차량, 식사와 찬양, 안내와 청소로 수고하는 모든 일꾼의 헌신을 기억하시고 하늘의 복으로 갚아 주옵소서.

이 시간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을 붙드시고, 선포되는 말씀이 오늘의 길을 밝히는 등불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참된 안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8월 주일 낮 예배 대표기도문

 

8월 주일 낮 예배 대표기도문

살아 계셔서 역사를 주관하시며, 만물을 선하신 뜻 가운데 붙드시는 하나님 아버지, 무더운 여름의 한가운데서 저희를 거룩한 주일 예배로 불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지난 한 주간에도 우리의 생명과 호흡을 지켜 주시고, 가정과 일터와 교회를 보호하시며, 알게 모르게 닥친 위험 가운데서 건져 주셨으니 모든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8월의 뜨거운 햇살 아래서도 들판의 곡식이 자라게 하시고, 밤의 어둠 가운데서도 땅을 쉬게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뜨거운 수고의 때가 있고, 앞이 보이지 않아 잠잠히 기다려야 하는 때가 있으나, 모든 계절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도 가장 선한 길로 이끌어 가심을 믿습니다. 우리가 지나온 날을 붙드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아직 오지 않은 날을 예비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길을 잃은 양처럼 방황할 때가 많았습니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알지 못할 때에는 자신의 생각과 경험만을 의지하였고, 형편이 어려워질 때에는 기도보다 염려를 앞세웠습니다. 말씀을 알고도 순종하지 못하였으며, 하나님의 뜻을 묻기보다 눈앞의 유익과 사람의 평가를 더 크게 여겼습니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가까운 이들에게 사랑을 잃었고, 더위와 답답함을 핑계로 불평과 원망의 말을 내뱉기도 하였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희를 붙들어 주옵소서. 양이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르듯, 저희도 세상의 수많은 소리와 욕망의 유혹보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게 하옵소서. 주님 앞에 충만한 기쁨이 있고 영원한 즐거움이 있음을 믿사오니, 세상의 조건과 형편에 따라 흔들리는 기쁨이 아니라 구원받은 백성에게 주시는 참된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매 순간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성령께 순종하게 하시고, 내 뜻을 이루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눈앞의 이익만 좇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아브넬이 자신의 안전과 지위를 위하여 상황에 따라 마음을 바꾸었던 것처럼, 저희도 형편이 좋을 때만 믿음을 말하고 손해가 예상될 때에는 진리에서 물러나는 기회주의자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또한 요압처럼 공의와 공동체의 평안보다 자신의 상처와 감정을 앞세우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억울함과 서운함을 오래 품어 미움으로 키우지 않게 하시고, 개인의 감정 때문에 다른 이를 해하거나 교회의 덕을 무너뜨리지 않게 하옵소서.

다윗이 완전한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죄와 한계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였던 것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우리도 자신의 능력과 명철을 자랑하지 않게 하시고, 모든 일에 하나님을 인정하며 말씀 앞에 자신을 비추게 하옵소서. 잠언의 말씀처럼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내 명철을 의지하지 않으며, 범사에 주를 인정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판단에는 한계가 있고 우리의 계획에는 빈틈이 있으나, 하나님의 뜻은 완전하시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는 실수가 없음을 믿습니다.

폭염과 장마의 변덕스러운 날씨 가운데 연약한 이들을 붙들어 주옵소서. 뙤약볕 아래에서 일하는 이들, 시장과 거리와 현장에서 생계를 위하여 수고하는 이들, 무더운 방에서 여름을 견디는 어르신들, 병상에서 치료받는 환우들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열사병과 여름철 질병, 갑작스러운 비와 태풍으로 인한 사고에서 지켜 주시고, 몸의 연약함으로 마음까지 지친 이들에게 치료와 위로를 더하여 주옵소서. 우리 교회가 어려운 이웃을 말로만 기억하지 않고, 기도와 관심과 실제적인 섬김으로 사랑을 나누게 하옵소서.

휴가철을 보내는 성도들을 지켜 주옵소서. 가족과 함께 길을 떠나는 이들에게 안전한 여행을 허락하시고, 운전하는 이들에게 맑은 정신과 양보하는 마음을 주옵소서. 산과 바다와 계곡에서 예기치 않은 위험을 피하게 하시며, 쉼을 누리는 시간에도 절제와 감사를 잃지 않게 하옵소서.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며 창조주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억하게 하시고, 가족이 함께 나누는 대화와 웃음이 사랑을 회복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휴가를 떠날 형편이 되지 못하고 일터를 지키는 이들에게도 마음의 쉼과 새 힘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참된 안식이 환경의 변화에 있지 않고, 우리의 짐을 친히 담당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믿게 하옵소서.

방학을 보내는 어린이와 청소년, 청년들을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자유로운 시간이 무절제와 방황으로 흐르지 않게 하시고, 말씀과 기도 안에서 자신의 삶을 바르게 준비하게 하옵소서. 여름성경학교와 수련회마다 성령의 은혜를 부어 주셔서, 다음 세대가 단지 즐거운 추억만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교회의 소중함을 깊이 깨닫게 하옵소서. 교사와 교역자, 부모들에게 사랑과 인내와 지혜를 더하시고, 자녀들이 믿음의 선한 본을 보며 자라게 하옵소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우리 교회가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방법을 자랑하지 않고, 오직 말씀과 기도와 십자가의 복음 위에 굳게 서게 하옵소서. 성도들이 서로의 형편을 헤아리고,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도 충성하며, 말과 행실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게 하옵소서. 낙심한 영혼에게는 위로를, 병든 이에게는 회복의 소망을, 믿음이 약해진 이에게는 다시 일어설 힘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담임목사님께 성령의 충만함과 영육의 강건함을 더하여 주옵소서. 말씀을 묵상하고 준비하며 선포하시는 모든 시간마다 하늘의 지혜를 부어 주시고, 전해지는 말씀이 우리의 양심을 깨우며 삶을 변화시키는 생명의 말씀이 되게 하옵소서. 함께 섬기는 교역자들과 직분자, 교사와 봉사자들에게도 기쁨과 충성을 더하여 주옵소서.

이 나라와 민족을 긍휼히 여겨 주시고, 경제적 어려움과 질병과 관계의 문제로 신음하는 이들을 돌아보아 주옵소서. 지도자들에게 공의와 겸손을 주시며, 갈등과 불신이 깊어진 사회 가운데 화해와 책임의 길을 열어 주옵소서. 세계 곳곳의 전쟁과 재난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로하시고,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과 박해 가운데 믿음을 지키는 교회를 보호하여 주옵소서.

이제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을 붙들어 주시고, 선포되는 말씀 앞에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옵소서. 듣는 데서 그치지 않고, 가정과 일터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선한 목자 되시며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신앙칼럼] 성경을 읽는 마음

성경을 읽는 마음

성경을 읽는 일에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같은 성경을 펼쳐도 어떤 마음으로 읽느냐에 따라 그 말씀은 지식이 되기도 하고, 판단의 도구가 되기도 하며, 생명의 양식이 되기도 합니다. 성경은 단순히 정보를 얻기 위해 읽는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는 사람은 책상 앞에 앉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앉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는 마음은 먼저 듣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너무 빨리 말하려 합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설명할까, 어떻게 적용할까, 누구에게 들려주면 좋을까를 먼저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말씀 앞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듣는 자세입니다. 사무엘이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고백한 것처럼, 성도는 성경 앞에서 자기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말씀은 우리가 이용할 자료가 아니라 우리가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성경을 읽는 마음은 겸손한 마음이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생각을 확인해 주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생각을 고치고, 우리의 죄를 드러내며, 우리의 길을 새롭게 하기 위해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이 말씀이 내 생각과 맞는가”만 묻지 말고, “내 생각이 이 말씀 앞에서 고쳐져야 할 것은 무엇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말씀을 자기 뜻 아래 두지 않고, 자기 뜻을 말씀 아래 둡니다.

성경을 읽는 마음은 회개하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편안하게만 하지 않습니다. 때로 말씀은 우리의 숨은 죄를 찌르고, 정당화하던 욕망을 폭로하며, 익숙하게 붙들고 있던 교만을 깨뜨립니다. 그러나 말씀의 찌름은 우리를 멸망시키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를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도는 말씀 앞에서 드러나는 죄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죄가 드러나는 곳에서 회개가 시작되고, 회개가 시작되는 곳에서 은혜의 회복이 열립니다.

성경을 읽는 마음은 그리스도를 찾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성경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단지 교훈만 얻고 그리스도를 보지 못한다면, 우리는 성경의 깊은 중심에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율법은 우리의 죄와 그리스도의 의를 보게 하고, 제사는 십자가의 대속을 바라보게 하며, 예언은 오실 왕과 구원의 약속을 기다리게 합니다. 복음서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보여 주고, 서신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성도의 삶을 가르칩니다. 성경을 읽는 마음은 언제나 묻습니다. 이 말씀은 나를 어떻게 그리스도께로 이끄는가.

성경을 읽는 마음은 사랑하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말씀은 차갑게 분석만 할 대상이 아닙니다. 물론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문맥과 원어와 역사적 배경을 살피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성경 연구가 사랑을 잃으면 말씀이 지식의 장식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주의 말씀을 사랑한다고 고백했습니다. 말씀을 사랑한다는 것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성도는 성경 안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만나고, 그분의 성품을 배우며, 그리스도의 은혜를 새롭게 발견합니다.

성경을 읽는 마음은 순종하려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감동을 받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말씀은 우리의 삶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용서하라는 말씀 앞에서는 용서를 배워야 하고, 사랑하라는 말씀 앞에서는 사랑의 자리로 나아가야 하며, 거룩하라는 말씀 앞에서는 죄와 타협하지 않아야 합니다. 순종 없는 성경 읽기는 아직 마음의 문턱에 머문 읽기입니다. 참된 말씀 읽기는 발걸음을 바꾸고, 말투를 바꾸며, 선택의 방향을 바꿉니다.

성경을 읽는 마음은 기다리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말씀의 열매는 언제나 즉시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떤 날은 말씀을 읽어도 특별한 감동이 없고, 어떤 날은 본문이 어렵게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씨앗이 땅속에서 조용히 자라듯, 하나님의 말씀도 성도의 마음속에서 천천히 역사합니다. 성도는 조급해하지 않고 말씀 곁에 머물러야 합니다. 말씀은 때가 되면 생각을 새롭게 하고, 감정을 다스리며, 고난 속에서 붙들 약속이 되고, 길 잃은 마음에 빛이 됩니다.

성경을 읽는 마음은 기도하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이기에, 성도는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읽어야 합니다. “주님, 제 눈을 열어 말씀의 놀라운 것을 보게 하옵소서”라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말씀을 읽기 전에도 기도하고, 읽는 중에도 기도하며, 읽은 후에도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자리이고, 기도는 그 말씀에 우리가 응답하는 자리입니다. 말씀과 기도는 성도의 영혼을 하나님께 묶어 주는 두 숨결과 같습니다.

성경을 읽는 마음은 자신을 낮추되 낙심하지 않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말씀 앞에서 우리는 자신의 부족함을 자주 봅니다. 믿음이 작고, 사랑이 부족하며, 순종이 더딘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그 자리에서 낙심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연약함을 드러내지만, 동시에 그리스도의 은혜를 보여 줍니다. 말씀 앞에서 무너지는 사람은 은혜 안에서 다시 세워질 수 있습니다. 성경은 완벽한 사람을 위한 책이 아니라, 은혜가 필요한 죄인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을 읽는 마음은 결국 하나님을 향한 마음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그리스도를 믿으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성경을 펼치는 시간은 영혼이 하나님께 돌아가는 시간입니다. 세상의 많은 말들이 우리의 마음을 흔들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다시 중심으로 데려갑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은 자기 삶을 말씀 앞에 열어 놓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 제 마음을 말씀 앞에 낮추어 주옵소서. 말씀을 듣게 하시고, 말씀을 사랑하게 하시며, 말씀을 따라 살게 하옵소서.”

성경을 읽는 마음이 바뀌면 성경 읽기도 바뀝니다. 의무감으로만 읽던 말씀이 생명의 양식이 되고, 어렵게만 느껴지던 본문이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가 되며, 익숙한 구절도 오늘의 영혼을 깨우는 음성이 됩니다. 성도는 말씀을 읽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말씀 앞에서 읽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읽으시고, 고치시며, 새롭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오늘도 조용히 성경을 펼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그 말씀 안에서 영혼은 다시 살아납니다.

2026년 7월 17일 금요일

2026년 8월 첫째 주 수요예배 대표기도문

 

2026년 8월 첫째 주 수요예배 대표기도문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무더운 여름의 한가운데서 8월 첫째 주 수요예배로 저희를 불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세상의 분주한 일을 잠시 내려놓고, 말씀과 기도로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지난날에도 우리의 생명과 가정과 일터를 지켜 주셨으며, 오늘도 필요한 힘과 양식을 공급하신 주님의 신실하심을 찬양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지난 삶을 돌아보며 저희의 죄를 고백합니다. 더위와 피곤함을 핑계로 쉽게 불평하였고, 가까운 이들에게 따뜻한 말보다 무심한 말과 날카로운 태도를 보였습니다. 말씀을 읽고 기도하기보다 세상의 염려에 마음을 빼앗겼으며,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생각과 계획을 앞세웠습니다. 우리의 교만과 게으름, 감사하지 못한 마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하게 하시고,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셔서 진실한 믿음과 사랑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폭염 가운데 지쳐 있는 성도들을 붙들어 주옵소서. 뜨거운 현장과 거리에서 수고하는 이들의 건강을 지켜 주시고, 병상에서 치료받는 환우들과 몸이 약한 어르신들에게 회복과 평강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홀로 지내며 더위와 외로움을 함께 견디는 이웃들을 돌아보게 하시고, 우리의 작은 관심과 섬김이 그들에게 위로가 되게 하옵소서. 갑작스러운 폭우와 태풍, 여름철의 여러 사고로부터 이 땅과 성도들의 가정을 지켜 주옵소서.

휴가철을 보내는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여행길과 귀갓길을 안전하게 지켜 주시고, 산과 바다와 계곡에서 예상하지 못한 위험을 피하게 하옵소서. 쉼을 누리는 시간에도 감사와 절제를 잃지 않게 하시며, 아름다운 자연을 통하여 창조주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휴가를 떠날 형편이 되지 못하고 일터를 지키는 이들에게도 마음의 평안을 주시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를 쉬게 하시는 주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게 하옵소서.

여름성경학교와 수련회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모든 교회학교를 축복하여 주옵소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세상의 즐거움보다 복음의 기쁨을 깊이 알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믿음의 세대로 자라게 하옵소서. 교사와 교역자들에게 지혜와 체력, 사랑과 인내를 더하시며, 모든 섬김 위에 성령의 열매가 풍성히 맺히게 하옵소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우리 교회가 말씀과 기도에 더욱 힘쓰게 하시고, 형식적인 신앙에 머물지 않으며 삶으로 복음을 드러내게 하옵소서. 담임목사님께 성령의 충만함과 영육의 강건함을 더하시고, 준비하시고 선포하시는 말씀마다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드러나게 하옵소서. 함께 섬기는 교역자들과 직분자들, 모든 봉사자에게 기쁨과 충성을 더하여 주옵소서.

이 나라와 민족을 긍휼히 여겨 주시고, 경제적 어려움과 질병과 관계의 문제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을 붙들어 주시며, 저희가 말씀을 듣고 회개하며 순종할 힘을 얻게 하옵소서.

우리의 참된 쉼과 소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6년 7월 마지막 주일 낮 예배 대표기도문

 

2026년 7월 마지막 주일 낮 예배 대표기도문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 한 해의 한가운데를 지나 7월의 마지막 주일을 맞아 저희를 예배의 자리로 부르시니 감사드립니다. 긴 장마와 뜨거운 햇살, 갑작스러운 비와 무더운 밤을 지나오는 동안에도 저희의 생명과 가정과 일터를 지켜 주셨습니다. 달력의 한 장이 또 넘어가고 시간은 쉼 없이 흘러가지만, 우리의 시작과 끝을 아시며 모든 날을 붙드시는 하나님께서 변함없이 함께하심을 믿고 찬양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지난 7월을 돌아보며 감사보다 먼저 회개할 것을 고백합니다. 저희는 주께서 베푸신 은혜를 당연하게 여기고,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는 쉽게 낙심하며 불평하였습니다. 무더위와 피곤함을 핑계로 가까운 이들에게 무심하였고, 조급한 말과 날카로운 판단으로 마음에 상처를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기도하겠다고 하면서도 염려에 붙들렸고, 말씀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의 계산과 자신의 경험을 더 의지하였습니다. 우리의 교만과 게으름, 숨은 욕심과 사랑 없는 모습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십자가의 은혜를 깊이 바라보게 하시며, 남은 시간에는 더욱 정직하고 겸손하게 주님 앞에 살아가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여름의 깊은 열기 가운데 지친 성도들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뙤약볕 아래에서 일하는 이들, 시장과 가게와 공사 현장, 도로와 배달의 자리에서 땀 흘리는 이들의 건강을 지켜 주옵소서. 냉방이 충분하지 않은 곳에서 생활하는 어르신들과 홀로 여름을 나는 이웃들, 병상에서 더위를 견디는 환우들을 특별히 붙들어 주옵소서. 열사병과 각종 질환, 여름철 사고로부터 보호하시고, 육신의 연약함으로 마음까지 지친 이들에게 치료와 위로와 평안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장마의 끝과 폭염의 시작, 갑작스러운 폭우와 태풍의 위험 가운데 이 땅을 지켜 주옵소서. 비가 필요한 곳에는 은혜로운 단비를 내리시고, 지나친 비와 바람으로 삶의 터전을 잃는 일이 없게 하옵소서. 농어촌에서 수고하는 이들의 땀을 기억하시고, 자라나는 곡식과 열매를 보호하여 주옵소서. 피조세계의 질서가 우리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하시며, 자연을 함부로 소비하기보다 창조주의 뜻을 따라 책임 있게 돌보게 하옵소서.

여름휴가를 맞아 길을 떠나는 성도들을 지켜 주옵소서. 자동차와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모든 길에 사고를 막아 주시고, 바다와 계곡, 산과 여행지에서 안전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들뜬 마음으로 절제와 감사의 마음을 잃지 않게 하시며, 아름다운 자연과 가족의 웃음 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휴가를 떠날 형편이 되지 못해 일터를 지키는 이들에게도 위로를 더하시고, 바쁜 일상 가운데서도 몸과 마음이 회복되는 쉼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참된 안식이 어디를 가는 데 있지 않고, 우리의 모든 짐을 맡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믿게 하옵소서.

방학을 보내는 어린이와 청소년, 청년들을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자유로운 시간이 방황과 무절제로 흘러가지 않게 하시고,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세우며 말씀 안에서 자신의 삶을 준비하게 하옵소서. 여름성경학교와 수련회를 준비하는 교회마다 복음의 은혜를 부어 주시며, 어린 영혼들이 재미있는 행사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구원의 진리를 깊이 만나게 하옵소서. 수고하는 교사와 교역자들에게 체력과 기쁨, 지혜와 사랑을 더하시고, 심긴 복음의 씨앗이 믿음의 열매로 자라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가정들을 지켜 주옵소서. 더운 날씨와 생활의 피로로 가족 간의 말이 거칠어지지 않게 하시고, 서로의 수고를 알아주며 감사하게 하옵소서. 부모와 자녀가 말씀 안에서 대화하게 하시고, 부부가 서로의 부족함을 품으며 사랑으로 세워 가게 하옵소서. 진로와 건강, 생계와 관계의 문제로 기도하는 가정마다 필요한 길을 열어 주시며, 해결되지 않은 문제 앞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신 때를 기다리게 하옵소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우리 교회가 계절과 형편에 따라 열심이 식지 않게 하시고, 언제나 말씀과 기도 위에 굳게 서게 하옵소서. 예배의 자리에 나온 모든 성도에게 필요한 은혜를 허락하시며, 낙심한 이에게는 위로를, 병든 이에게는 회복의 소망을, 믿음이 흔들리는 이에게는 굳건한 확신을 더하여 주옵소서.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수고하는 봉사자들을 기억하시고, 성도들이 서로를 판단하기보다 섬기며, 복음 안에서 하나 됨을 지키게 하옵소서.

담임목사님을 성령의 능력으로 붙들어 주옵소서. 무더운 여름의 사역 가운데서도 영육을 강건하게 하시고, 말씀을 준비하고 선포하실 때마다 하늘의 지혜와 권세를 더하여 주옵소서. 전해지는 말씀이 우리의 양심을 깨우고 삶을 변화시키며, 그리스도를 더욱 사랑하게 하는 생명의 말씀이 되게 하옵소서. 함께 섬기는 교역자들과 모든 직분자, 교사와 봉사자들에게도 충성의 마음과 기쁨을 더하여 주옵소서.

이 나라와 민족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경제적 어려움과 생계의 염려로 힘겨운 이들을 돌아보시고, 일자리를 구하는 이들과 장사와 사업의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길을 열어 주옵소서. 지도자들에게 공의와 지혜, 국민을 섬기는 겸손을 허락하시며, 갈등과 불신이 깊어진 사회 가운데 진실과 화해의 길을 열어 주옵소서. 세계 곳곳의 전쟁과 재난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로하시고,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과 박해받는 교회를 보호하여 주옵소서.

이제 말씀을 들을 때에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옵소서. 7월을 믿음으로 마무리하게 하시고, 새로 시작되는 8월에도 주님의 뜻을 먼저 구하며 맡겨진 자리에서 충성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모든 시간의 주인이시며 영원한 소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6년 7월 금요 성령집회 대표기도문

2026년 7월 금요 성령집회 대표기도문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한 주간의 삶을 마치고 금요 성령집회로 저희를 불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세상의 분주함과 염려를 잠시 내려놓고, 우리의 심령을 살피시며 새 힘 주시는 하나님 앞에 나아오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무더운 7월의 날들 속에서도 우리의 생명과 가정을 지켜 주시고, 일터에서 수고할 힘을 주시며, 오늘 이 시간에도 예배할 마음을 주셨으니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한 주간 살아온 모습을 돌아봅니다. 말씀을 따라 살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앞세웠고, 기도해야 할 때에 걱정하였으며, 사랑해야 할 때에 무관심하였습니다. 입술로는 감사를 고백하면서도 마음에는 불평과 원망을 품었고,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도 용서하지 못한 마음과 숨은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였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 안에 정결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성령으로 새 영을 부어 주셔서, 형식적인 신앙과 습관적인 예배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진실하게 사랑하게 하옵소서.

성령 하나님, 이 시간 우리 가운데 충만히 임하여 주옵소서. 지친 심령에는 새 힘을 주시고, 메마른 마음에는 은혜의 단비를 내려 주옵소서. 믿음이 흔들리는 이에게는 확신을 주시며, 죄의 습관과 유혹으로 힘겨워하는 이에게는 이길 힘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사람의 말과 감정이 앞서는 시간이 아니라, 오직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밝히시고 성령으로 삶을 변화시키시는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기도가 자기 욕심을 이루기 위한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순종하는 기도가 되게 하옵소서.

폭염과 장마가 이어지는 이 계절에 연약한 이들을 돌아보아 주옵소서. 뜨거운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 생활의 어려움으로 쉬지 못하는 이들, 병상에서 고통받는 환우들, 홀로 여름을 견디는 어르신들을 붙들어 주옵소서. 폭우와 태풍, 각종 사고와 질병에서 지켜 주시며, 우리의 가정과 지역사회에 평안을 더하여 주옵소서. 여름휴가를 떠나는 성도들의 길을 안전하게 지키시고, 쉼의 시간에도 믿음과 감사와 절제를 잃지 않게 하옵소서.

다음 세대를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여름방학을 보내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세상의 유혹과 무절제한 문화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게 하시고, 말씀 안에서 바른 생각과 믿음을 갖게 하옵소서. 여름성경학교와 수련회마다 복음의 은혜를 더하셔서, 어린 영혼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사랑하며 교회를 귀히 여기게 하옵소서. 교사와 교역자, 부모들에게 지혜와 사랑을 더하시고, 믿음의 본을 보이게 하옵소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기도드립니다. 우리 교회가 세상의 방법과 사람의 평가보다 성경의 진리와 십자가의 복음 위에 굳게 서게 하옵소서. 예배와 기도와 말씀의 자리가 더욱 살아나게 하시며, 성도들이 서로를 판단하기보다 사랑으로 세워 주고, 고통받는 이웃을 실제로 돌보게 하옵소서. 담임목사님께 성령의 충만함과 영육의 강건함을 더하시며, 말씀을 준비하고 선포하실 때마다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드러나게 하옵소서. 모든 교역자와 직분자, 봉사자에게 기쁨으로 충성하는 마음을 주옵소서.

이 나라와 민족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경제적 어려움과 삶의 불안으로 지친 이들을 돌아보시고, 지도자들에게 공의와 지혜, 국민을 섬기는 겸손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분열과 미움이 있는 곳에 화해를 이루시며,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과 세계 곳곳에서 믿음을 지키는 교회를 보호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을 성령께서 붙들어 주옵소서. 선포되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죄가 드러나 회개하게 하시고, 우리의 상한 마음이 위로받으며, 믿음으로 다시 일어서게 하옵소서. 이 예배를 마치고 돌아갈 때에는 성령의 새 힘을 얻어, 가정과 일터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게 하옵소서.

우리의 구원자 되시며 성령으로 교회를 새롭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6년 9월 첫째 주일 낮 예배 대표기도문

 

2026년 9월 첫째 주일 낮 예배 대표기도문

계절과 시간을 다스리시며 우리의 모든 날을 선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9월의 첫 주일을 허락하시고 거룩한 예배의 자리로 불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뜨거웠던 여름을 지나 아침저녁의 바람이 조금씩 달라지고, 들판의 곡식과 나무의 열매가 익어 가는 때에 저희의 삶도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한 해의 많은 날을 지나 여기까지 오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앞으로의 길을 예비하시고 인도하실 분도 하나님이심을 믿고 찬양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지난날의 삶을 돌아보며 우리의 죄를 고백합니다. 저희는 많은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감사보다 염려를 앞세웠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보다 자신의 계산과 욕심을 더 의지하였습니다. 말씀을 듣고도 쉽게 잊었으며, 기도해야 할 때에 걱정만 하였습니다. 가까운 사람의 허물에는 엄격하면서도 자신의 교만과 무정함은 살피지 못하였고, 사랑으로 섬기기보다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으로 일할 때도 있었습니다. 우리의 숨은 죄와 굳어진 마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십자가의 은혜를 의지하여 진실한 회개로 나아가게 하시고,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과 말과 삶을 새롭게 다스려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계절은 가을로 향하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더위와 변덕스러운 날씨 가운데 성도들의 건강을 지켜 주옵소서. 여름 동안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시켜 주시고, 환절기의 질병과 사고에서 지켜 주옵소서. 병상에 있는 성도들, 치료를 기다리는 이들, 가족의 건강을 염려하며 기도하는 이들에게 치료의 은혜와 평강을 더하여 주옵소서. 홀로 살아가는 어르신들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마음이 무거운 이들을 외면하지 않게 하시며, 우리 교회가 그들의 곁에 다가가 기도와 사랑을 나누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새 학기를 시작한 어린이와 청소년, 청년들을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새로운 교실과 관계, 학업과 진로의 부담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고, 지혜와 건강한 마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경쟁과 비교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게 하시며,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은사와 부르심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학교와 사회의 여러 유혹 가운데서도 믿음과 정직을 지키게 하시고, 말씀을 삶으로 증거하는 다음 세대로 자라게 하옵소서.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와 교사들에게는 사랑과 인내, 분별의 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9월의 일상과 가을 사역을 시작하는 모든 성도들을 붙들어 주옵소서. 휴가와 방학을 마치고 다시 일터로 돌아간 이들에게 새 힘을 주시며, 맡겨진 책임을 성실히 감당하게 하옵소서. 사업의 어려움과 생계의 염려, 진로와 관계의 문제로 마음이 무거운 이들에게 필요한 길을 열어 주옵소서. 우리의 계획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에도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게 하옵소서. 바쁘게 일하는 가운데서도 예배와 기도의 자리를 지키며, 무엇보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게 하옵소서.

농부가 씨를 뿌리고 기다리며 열매를 거두듯, 우리의 믿음에도 좋은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말로만 주를 사랑한다고 고백하지 않게 하시고, 가정에서는 인내와 용서의 열매를, 일터에서는 정직과 성실의 열매를, 교회에서는 섬김과 화평의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혹 아직 열매가 보이지 않아 낙심하는 성도들이 있다면,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믿음을 주옵소서.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으며, 주 안에서 드리는 작은 충성도 귀히 받으심을 믿게 하옵소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우리 교회가 가을의 모든 사역을 사람의 열심만으로 감당하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준비하게 하옵소서.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고 복음을 충실히 전하며, 기도와 사랑으로 영혼을 돌보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새로 예배의 자리에 나온 이들을 따뜻하게 품게 하시고, 믿음이 약해진 이들에게는 다시 일어설 힘을 주시며, 오랫동안 신앙생활 한 이들에게는 더욱 깊은 겸손과 헌신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모든 기관과 구역, 각 부서의 섬김 위에 은혜를 더하시고, 성도들이 한마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게 하옵소서.

담임목사님을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선포하시는 모든 시간에 성령의 충만함을 더하여 주시며, 목사님의 건강과 가정, 목회의 걸음을 친히 지켜 주옵소서. 선포되는 말씀이 단지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이 아니라, 죄인을 돌이키고 상한 심령을 위로하며 성도를 진리 위에 굳게 세우는 생명의 말씀이 되게 하옵소서. 함께 섬기는 교역자들과 직분자, 교사와 봉사자들에게도 기쁨과 충성을 더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이 나라와 민족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경제적 어려움과 불확실한 미래로 지친 이들을 돌아보시고, 일자리를 구하는 이들과 생계의 짐을 지고 있는 가정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지도자들에게 공의와 지혜를 더하시며, 사회 가운데 깊어진 불신과 분열을 치유하여 주옵소서. 우리 모두가 자신의 권리만 주장하기보다 이웃의 아픔을 돌아보고, 진실과 책임과 사랑을 따라 살아가게 하옵소서. 전쟁과 재난으로 고통받는 세계의 이웃을 불쌍히 여기시며,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과 박해 가운데 믿음을 지키는 교회를 보호하여 주옵소서.

이제 말씀을 들을 때에 저희의 마음을 열어 주옵소서. 9월의 첫 걸음을 말씀 위에 세우게 하시고, 다가오는 가을의 모든 날에도 믿음으로 심고 사랑으로 섬기며 소망 가운데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시작과 끝이 되시며 영원한 소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8월 초등부 대표기도문

 

8월 초등부 대표기도문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무더운 8월에도 우리 초등부 친구들을 건강하게 지켜 주시고, 오늘 교회에 와서 함께 예배드리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뜨거운 햇빛과 비, 바람과 구름을 만드시고 우리에게 매일 필요한 음식과 가족과 친구를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 지난 한 주 동안 우리가 부모님 말씀을 잘 듣지 못하고, 친구에게 화를 내거나 거짓말하고, 기도와 말씀 읽기를 게을리한 것을 용서해 주세요.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은혜를 기억하게 해 주세요.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시고, 예수님을 닮아 친절하고 정직한 어린이가 되게 해 주세요.

여름방학을 보내는 동안에도 건강하게 지켜 주세요. 물놀이와 여행을 갈 때 사고가 없게 해 주시고, 더운 날씨에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게임과 영상만 오래 보지 않고, 책도 읽고 부모님도 돕고 말씀도 가까이하게 해 주세요. 여름성경학교와 모든 초등부 예배 가운데 함께하셔서, 친구들이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고 믿음 안에서 자라게 해 주세요.

목사님과 선생님들에게 힘과 지혜를 주시고, 우리 교회와 가정에도 사랑과 평안을 주세요. 오늘 들려주시는 말씀을 잘 듣고 삶으로 실천하게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6년 8월 넷째 주일 낮 예배 대표기도문

2026년 8월 넷째 주일 낮 예배 대표기도문

신실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여름의 끝자락을 지나 8월 넷째 주일을 맞아 저희를 예배의 자리로 불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뜨거웠던 햇살 아래서도 우리의 생명과 가정을 지켜 주셨고, 매일의 일터와 관계 속에서 필요한 힘을 더하여 주셨으며, 오늘도 주님의 말씀을 듣고 찬양하며 기도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계절은 한 걸음씩 가을을 향해 가고, 우리의 시간도 쉼 없이 지나가지만,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피난처와 소망이 되어 주심을 믿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지난날의 삶을 돌아보며 우리의 죄를 고백합니다. 저희는 더위를 핑계로 마음의 열정을 잃기도 하였고, 바쁘다는 이유로 기도를 뒤로 미루며 말씀보다 세상의 소식과 염려에 더 마음을 빼앗기기도 하였습니다. 가까운 이들의 수고를 당연하게 여기고, 이해하기보다 판단하였으며, 사랑으로 말하기보다 쉽게 불평하고 원망하였습니다. 은혜를 구하면서도 순종은 미루었고,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자기 뜻과 자존심을 내려놓지 못하였습니다. 우리의 허물과 완고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시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삶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무더위가 여전히 남아 있는 이 계절에 연약한 이들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폭염과 갑작스러운 비 가운데서 일하는 이들의 건강을 지켜 주시고, 야외와 현장에서 땀 흘리는 노동자들, 시장과 가게를 지키는 자영업자들, 밤낮없이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과 돌봄 노동자들에게 힘을 더하여 주옵소서. 몸의 질병으로 병상에 있는 성도들과 마음의 고통을 홀로 견디는 이들을 기억하여 주시며, 치료와 회복의 은혜, 위로와 평강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독거 어르신들과 형편이 어려운 이웃이 무더위 속에 외롭고 힘들지 않도록 교회와 사회가 필요한 도움을 나누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여름휴가와 방학이 마무리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성도들을 붙들어 주옵소서. 휴가의 즐거움이 지나간 자리에 피로와 허무만 남지 않게 하시고, 쉼을 통하여 회복된 몸과 마음으로 맡겨진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휴가 동안 가족과 나눈 대화와 웃음이 일상의 사랑으로 이어지게 하시며, 여행 중에 누렸던 자연의 아름다움과 평안이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는 감사가 되게 하옵소서. 휴가를 떠나지 못하고 일터를 지켰던 이들에게도 주께서 친히 쉼을 주시며, 삶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새 힘을 얻게 하옵소서.

새 학기와 가을의 문턱을 앞둔 다음 세대를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방학 동안 흐트러진 생활을 바로잡고, 건강한 몸과 맑은 마음으로 학교생활을 준비하게 하옵소서. 학업과 진로, 친구 관계로 고민하는 학생들의 마음을 지켜 주시고, 비교와 경쟁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게 하시며,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존재임을 믿게 하옵소서. 교회학교에서 배운 말씀을 일상의 자리에서 기억하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믿음의 세대로 자라게 하옵소서. 교사와 교역자, 부모들에게는 자녀를 말씀과 사랑으로 세우는 지혜와 인내를 더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여름의 여러 사역을 잘 감당하게 하시고, 이제 다가오는 가을의 모든 사역을 믿음으로 준비하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가 숫자와 외형보다 한 영혼의 구원과 성숙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하시며,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고 기도를 힘쓰며, 복음을 삶으로 보여 주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새로 나온 이들을 따뜻하게 맞이하게 하시고, 오랫동안 예배의 자리를 떠난 성도들이 다시 돌아오게 하시며, 믿음이 약해진 이들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힘을 얻게 하옵소서. 성도들이 서로의 형편을 살피고, 작은 섬김을 귀히 여기며, 말과 행동으로 서로를 세워 가게 하옵소서.

담임목사님을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무더운 여름의 사역 가운데서도 영육을 강건하게 지켜 주시고, 말씀을 묵상하고 준비하는 모든 시간에 성령의 지혜와 능력을 충만히 부어 주옵소서. 선포되는 말씀을 통하여 죄인은 회개하고, 상한 심령은 위로받으며, 성도들이 믿음 안에서 굳게 서게 하옵소서. 함께 수고하는 교역자들과 직분자들, 교사와 각 기관의 봉사자들에게도 기쁨과 충성을 더하시고, 각자의 섬김이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아름다운 열매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이 나라와 민족을 붙들어 주옵소서. 사회와 경제의 어려움으로 지친 이들을 돌아보시고, 일자리를 구하는 이들과 생계의 무게를 짊어진 가정들에게 필요한 길을 열어 주옵소서. 나라의 지도자들에게 정직과 공의, 겸손과 지혜를 더하여 주시며, 분열과 불신이 깊은 사회 가운데 서로를 존중하고 함께 선을 이루려는 마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세계 곳곳의 전쟁과 재난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과 박해 가운데 믿음을 지키는 교회를 보호하여 주옵소서.

이제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을 성령께서 붙들어 주옵소서. 선포되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생각을 바로잡아 주시고,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시며, 다가오는 한 주간을 믿음으로 살아갈 힘을 얻게 하옵소서. 여름을 마무리하며 우리의 신앙도 다시 살피게 하시고, 계절이 바뀌어도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성도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시며 영원한 소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6년 8월 셋째 주일 낮 예배 대표기도문

2026년 8월 셋째 주일 낮 예배 대표기도문

거룩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 광복절을 지나 맞이하는 8월 셋째 주일에 저희를 주님의 집으로 불러 예배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한여름의 뜨거운 햇살 아래서도 들판의 생명을 자라게 하시고, 밤마다 쉼을 허락하시며, 지난 한 주간 우리의 가정과 일터와 걸음을 지켜 주신 은혜를 찬양합니다. 우리가 누리는 생명과 자유, 평안과 예배의 자리까지 모두 하나님께서 베푸신 선물임을 고백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는 은혜를 받으면서도 감사에 더디었고, 자유를 누리면서도 진리 안에서 살지 못하였습니다. 몸이 피곤하고 마음에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가까운 사람에게 날카로운 말을 하였으며, 내 형편만 살피느라 어려움 가운데 있는 이웃을 외면하였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에는 아멘으로 화답하면서도 삶의 자리에서는 자신의 판단과 욕심을 앞세웠습니다. 우리의 교만과 게으름, 숨은 죄와 굳어진 마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십자가의 보혈로 저희를 깨끗하게 하시고, 성령께서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다스려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여름의 끝자락으로 향하는 이때에도 무더위로 지친 성도들을 붙들어 주옵소서. 폭염 속에서 일하는 이들의 건강을 지켜 주시고, 생계를 위하여 쉴 틈 없이 수고하는 이들에게 힘과 위로를 더하여 주옵소서. 병상에서 치료를 받는 성도들, 몸이 약해 더위를 견디기 어려운 어르신들, 홀로 지내며 마음까지 지쳐 있는 이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치료의 손길을 더하시고, 필요한 도움을 허락하시며, 교회가 그들의 형편을 세심히 살피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휴가를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여행지에서의 잠시 쉼이 끝난 뒤에도 마음이 쉽게 메말라지지 않게 하시고, 각자의 가정과 일터에서 새로운 힘으로 맡겨진 일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휴가를 떠났던 이들에게는 돌아오는 길의 안전을 허락하시고, 휴가를 누리지 못한 이들에게도 일상 속의 작은 쉼과 위로를 베풀어 주옵소서. 우리의 참된 안식이 바쁜 일상을 잠시 벗어나는 데 있지 않고, 죄와 염려의 짐을 맡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깊이 깨닫게 하옵소서.

방학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남은 방학 동안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돌보게 하시고, 새 학기를 준비하는 마음에 지혜와 소망을 더하여 주옵소서. 학업과 진로를 염려하는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선한 길을 열어 주시며, 세상의 기준과 비교 때문에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은사와 부르심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여름성경학교와 수련회를 통해 들은 말씀을 잊지 않게 하시고, 가정과 학교에서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갈 용기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광복절을 지나며 이 나라에 주신 자유와 평안을 다시 생각합니다. 일제의 억압과 전쟁의 상처 가운데서도 이 민족을 버리지 않으시고, 복음의 길을 열어 주시며 교회를 세워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누리는 자유를 자기 욕망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지 않게 하시고, 진리와 사랑을 섬기는 책임 있는 자유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남과 북의 분단된 현실을 긍휼히 여겨 주시고, 평화와 복음의 길을 열어 주옵소서. 나라의 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공의로운 판단을 허락하시며, 사회 안에 깊어진 갈등과 미움이 화해와 존중으로 변화되게 하옵소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우리 교회가 세상의 소리에 휩쓸리지 않고 성경의 진리 위에 굳게 서게 하시며, 복음의 본질을 지키면서도 상한 영혼에게는 더욱 따뜻한 품이 되게 하옵소서. 예배를 통하여 회개할 이들에게는 돌이킬 은혜를, 낙심한 이들에게는 위로를, 병든 이들에게는 치유의 소망을, 믿음이 굳어진 이들에게는 새 마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성도들이 서로의 이름을 기억하여 기도하고,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도 기쁨으로 섬기며, 말과 행실로 그리스도를 드러내게 하옵소서.

담임목사님을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말씀을 준비하고 선포하시는 모든 시간에 성령의 충만함을 더하여 주시고, 목사님의 영육을 강건하게 하시며 가정과 사역을 보호하여 주옵소서. 전하는 말씀마다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가 드러나게 하시고, 그 말씀이 성도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되게 하옵소서. 함께 섬기는 교역자들과 모든 직분자, 교사와 봉사자들에게도 충성과 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말씀을 들을 때에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옵소서. 여름의 열기가 남아 있는 이 계절에도 믿음이 식지 않게 하시고, 새롭게 다가올 가을의 사역과 일상을 믿음으로 준비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자유와 구원, 참된 평안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6년 8월 둘째 주일 낮 예배 대표기도문

 

2026년 8월 둘째 주일 낮 예배 대표기도문

역사의 주인이시며 계절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무더운 여름날 8월 둘째 주일을 허락하시고, 저희를 주님의 성전으로 불러 예배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지난 한 주간 폭염과 갑작스러운 비, 각자의 분주한 일상 가운데서도 저희를 지켜 주시고, 오늘도 말씀과 찬양과 기도로 하나님 앞에 서게 하신 은혜를 찬양합니다. 해가 뜨고 지는 질서와 계절의 변화를 따라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께서, 흔들리는 우리의 마음과 가정과 교회도 선하게 붙들어 주심을 믿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의 마음을 살펴 주옵소서. 몸이 지치고 날씨가 덥다는 이유로 쉽게 불평하였고, 작은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사랑해야 할 이들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세상의 즐거움과 편안함은 찾으면서도,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일에는 게을렀습니다. 은혜를 많이 받았으면서도 감사보다 부족함을 먼저 말하였고, 십자가의 사랑을 고백하면서도 용서하지 못한 마음을 품고 살았습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여 주시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하게 하옵소서.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셔서, 더위 속에서도 인내하게 하시고, 피곤한 날에도 사랑을 선택하며, 작은 일에도 감사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여름의 깊은 더위로 지쳐 있는 이들을 돌아보아 주옵소서. 시원한 곳에서 쉴 수 없는 어르신들과 홀로 사는 이웃들, 뜨거운 작업장과 거리에서 생계를 위해 수고하는 이들, 병원과 요양의 자리에서 여름을 견디는 환우들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폭염으로 인한 질병과 사고에서 지켜 주시고, 몸의 연약함으로 고통받는 성도들에게 치료와 회복의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우리의 교회가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더 세심히 돌아보고, 말뿐이 아닌 실제적인 사랑으로 섬기게 하옵소서.

휴가와 여행 중에 있는 성도들을 안전하게 지켜 주옵소서. 먼 길을 오가는 차량마다 사고를 막아 주시고, 바다와 계곡, 산과 낯선 숙소에서 예상하지 못한 위험을 피하게 하옵소서. 즐거움을 누리는 시간에도 절제와 감사의 마음을 잃지 않게 하시며,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볼 때마다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휴가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이들에게는 새로운 힘을 주시고, 쉼이 단지 피로를 덜어 내는 시간이 아니라 믿음과 삶의 방향을 새롭게 하는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일터와 가정을 지키며 휴가철을 보내는 성도들도 기억하여 주옵소서. 가게와 시장을 지키는 이들, 교대 근무와 돌봄의 자리에서 쉬지 못하는 이들, 경제적 형편 때문에 마음 편히 쉬지 못하는 이들에게 평안을 더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 참된 안식은 좋은 환경이나 넉넉한 형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짐을 친히 담당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깨닫게 하옵소서. 주님 안에서 마음의 염려를 내려놓고, 오늘 주신 은혜를 감사히 누리게 하옵소서.

여름성경학교와 수련회를 마쳤거나 준비하는 교회학교를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마음에 뿌려진 복음의 씨앗을 주님께서 자라게 하시고, 일시적인 감동으로 끝나지 않으며 삶의 방향을 바꾸는 믿음으로 열매 맺게 하옵소서. 방학의 느슨한 시간 속에서 다음 세대가 세상의 자극적인 문화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게 하시고, 말씀과 기도와 건강한 관계 안에서 자라게 하옵소서. 애써 섬긴 교사들과 교역자들에게 위로와 새 힘을 주시며, 그들의 수고를 기억하시고 귀한 열매로 갚아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다가오는 광복절을 앞두고 이 나라를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일제의 억압에서 이 땅을 건져 주시고 자유를 허락하신 은혜를 기억하게 하옵소서. 그러나 우리가 누리는 자유를 자신의 욕망을 위한 권리로만 사용하지 않게 하시고, 진리와 책임과 사랑을 위한 자유로 사용하게 하옵소서. 나라를 위해 희생한 선열들을 기억하게 하시며, 남과 북이 갈라진 아픔 속에도 평화의 길을 열어 주옵소서. 지도자들에게 사사로운 이익보다 국민과 다음 세대를 먼저 생각하는 지혜와 공의를 주시고, 갈등과 혐오가 깊어진 사회 가운데 화해와 절제의 마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우리 교회가 세상의 유행과 사람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성경의 진리와 십자가의 복음 위에 든든히 서게 하옵소서. 예배를 통하여 상한 마음은 위로받고, 죄에 무뎌진 마음은 돌이키며, 믿음이 약해진 성도는 다시 힘을 얻게 하옵소서. 성도들이 서로의 형편을 살피고,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도 충성하며, 말과 행동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게 하옵소서.

담임목사님께 성령의 충만함과 강건함을 더하여 주옵소서. 말씀을 준비하고 선포하실 때에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드러나게 하시고, 목사님의 심령과 가정, 건강과 사역을 친히 지켜 주옵소서. 함께 섬기는 교역자들과 모든 직분자에게도 지혜와 사랑을 더하시며, 교회 안에 아름다운 협력과 기쁨이 넘치게 하옵소서.

이 시간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을 붙들어 주시고, 선포되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생각과 삶이 새로워지게 하옵소서. 듣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번 한 주간 가정과 일터와 이웃 가운데서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참된 자유와 소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6년 8월 첫째 주일 낮 예배 대표기도문

2026년 8월 첫째 주일 낮 예배 대표기도문

계절을 정하시고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 뜨거운 여름의 한가운데서 8월의 첫 주일을 허락하시고, 저희를 은혜의 보좌 앞으로 불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이른 아침부터 내리쬐는 햇살과 밤에도 쉽게 식지 않는 열기 속에서, 저희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 주시고 예배할 힘을 주셨으니 모든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들판의 곡식이 뜨거운 햇볕과 비를 지나 익어 가듯, 우리의 믿음도 편안한 날뿐 아니라 수고와 인내의 시간을 지나 성숙하게 하시는 주님의 섭리를 믿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무더운 날씨 속에서 우리의 마음도 쉽게 거칠어졌음을 고백합니다. 작은 불편에도 얼굴을 찌푸렸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사랑해야 할 이들에게 무심하였습니다.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싶어 하면서도 이미 받은 은혜에는 감사하지 못하였고, 우리의 삶을 붙드시는 하나님보다 눈앞의 형편과 염려를 더 크게 바라보았습니다. 우리의 부족함과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마음을 씻어 주시고, 성령으로 새롭게 하셔서 무더위 가운데서도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식지 않게 하옵소서.

휴가철을 맞아 각자의 자리에서 쉼을 누리는 성도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산과 바다와 낯선 길을 찾아 떠나는 이들의 발걸음을 지켜 주시고, 출발하는 순간부터 돌아오는 길까지 교통사고와 각종 위험에서 보호하여 주옵소서. 운전대를 잡는 이들에게 맑은 정신과 양보하는 마음을 주시며, 들뜬 마음으로 안전을 소홀히 하지 않게 하옵소서. 여행지에서 만나는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시고, 먹고 쉬고 즐기는 모든 시간에도 절제와 감사의 마음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휴가를 떠날 여유조차 없이 일터를 지켜야 하는 이들도 돌아보아 주옵소서. 무더운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시장과 가게를 지키는 자영업자들, 병원과 돌봄의 자리에서 쉬지 못하는 이들, 시민의 안전을 위해 수고하는 이들에게 건강과 힘을 더하여 주옵소서. 경제적 형편과 가정의 사정으로 먼 곳을 떠나지 못하는 성도들에게도 일상 속의 평안과 쉼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바쁜 몸은 잠시 쉬어도 마음의 짐을 내려놓지 못하는 이들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부르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안식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폭염으로 고통받는 이웃들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냉방이 어려운 방에서 여름을 견디는 독거 어르신들과 취약한 이웃들, 뙤약볕 아래에서 일하는 이들, 병상에서 더위를 견뎌야 하는 환우들을 보호하여 주옵소서. 열사병과 각종 질환에서 지켜 주시고, 교회와 사회가 필요한 이웃을 살피며 물 한 잔과 따뜻한 관심을 나누게 하옵소서. 폭염과 폭우,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로부터 이 땅을 지켜 주시고, 농어촌의 수고 위에도 필요한 햇빛과 비를 알맞게 내려 주옵소서.

여름방학을 보내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마음과 몸이 자라나는 이 시기에 세상의 유혹과 무절제한 문화에 쉽게 휩쓸리지 않게 하시고, 말씀 안에서 바른 생각과 깨끗한 마음을 품게 하옵소서. 여름성경학교와 수련회에 참여하는 모든 다음 세대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며, 재미있는 행사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마음 깊이 새기게 하옵소서. 말씀을 가르치고 아이들을 돌보는 교사와 교역자들에게 지혜와 인내와 건강을 더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휴가철에도 교회의 예배와 기도가 빈자리를 느끼지 않게 하시고, 어디에 있든지 성도들이 주일을 거룩히 여기며 말씀을 가까이하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가 계절과 형편에 흔들리지 않고 복음 위에 굳게 서게 하시며, 낯선 이에게는 문을 열어 주고, 외로운 이에게는 가족이 되어 주며, 어려움에 처한 이웃에게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담임목사님께 성령의 충만함과 육신의 강건함을 더하여 주옵소서. 말씀을 준비하고 선포하실 때에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드러나게 하시며, 목사님의 가정과 사역을 친히 붙들어 주옵소서. 모든 교역자와 직분자, 교사와 봉사자에게도 기쁨으로 섬기는 마음을 주시고, 작은 수고가 하나님 나라의 귀한 열매로 이어지게 하옵소서.

이 나라와 민족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무더운 여름과 경제적 어려움 가운데 지친 백성들의 삶을 살펴 주시고, 지도자들에게 공의와 겸손, 국민을 섬기는 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분열과 미움이 있는 곳에 화해를 허락하시고, 우리의 사회가 약한 이들을 돌보며 정직과 책임을 소중히 여기는 사회가 되게 하옵소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과 세계 곳곳의 교회를 지켜 주시며, 모든 민족 가운데 그리스도의 평강이 전해지게 하옵소서.

이제 말씀을 들을 때에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옵소서. 여름의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도 메마르지 않는 믿음을 주시고, 잠시의 휴식 뒤에도 더욱 충성스러운 삶으로 돌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전 생애를 인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6년 7월 넷째 주일 낮 예배 대표기도문

2026년 7월 넷째 주일 낮 예배 대표기도문

거룩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복된 주일을 허락하시고 성도의 몸과 마음을 주님의 전으로 불러 모아 예배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지난 한 주간도 저희의 생명과 호흡을 붙드시고, 알게 모르게 닥친 위험 가운데서 지켜 주셨으며, 필요한 양식과 일터와 관계를 허락하신 은혜를 고백합니다. 우리의 모든 시간이 주께로부터 왔고, 우리의 내일도 주님의 선하신 손에 있음을 믿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 저희는 받은 은혜를 당연하게 여기며 살았습니다. 입술로는 주를 고백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세상의 염려와 욕심을 더 의지하였고, 말씀보다 자신의 생각을 앞세웠습니다. 사랑해야 할 이웃에게 무관심하였고, 작은 일에도 불평하였으며, 은밀한 곳에서 죄의 유혹과 타협하였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행실을 살피사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하게 씻어 주옵소서. 우리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시고,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으나 마음은 멀리 떠나 있는 형식적인 신앙에서 돌이키게 하옵소서.

무더위가 깊어 가는 7월의 끝자락에 저희를 붙들어 주옵소서. 더위로 지치기 쉬운 어르신들과 환우들, 홀로 생활하는 이들, 경제적 어려움과 삶의 무게로 마음이 메마른 이들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땀 흘려 일하는 모든 이들의 건강을 지켜 주시고, 휴가와 여행길에 있는 성도들에게 안전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쉼의 시간에도 믿음이 느슨해지지 않게 하시며, 낯선 곳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가정들을 복되게 하여 주옵소서. 부모와 자녀가 말씀 안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하시며, 부부가 자신의 권리보다 서로를 섬기는 사랑을 배우게 하옵소서. 믿음의 유산이 다음 세대에 온전히 이어지게 하시고, 자녀들이 세상의 성공만을 좇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와 정직한 마음을 갖게 하옵소서. 여름방학과 성경학교의 모든 일정 위에 은혜를 더하셔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복음을 분명히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게 하옵소서. 수고하는 교사와 교역자들에게 지치지 않는 사랑과 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우리 교회가 사람의 지혜나 세상의 방법을 자랑하지 않고, 오직 십자가의 복음과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게 하옵소서. 예배마다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굳어진 심령은 회개하게 하시고, 낙심한 영혼은 위로받게 하시며, 믿음이 약한 이들은 말씀 안에서 새 힘을 얻게 하옵소서. 맡겨진 자리에서 섬기는 모든 직분자와 봉사자들에게 충성과 겸손을 주시고, 서로를 귀히 여기며 하나 됨을 힘써 지키게 하옵소서.

담임목사님께 성령의 충만함과 강건함을 더하여 주옵소서. 말씀을 준비하고 선포하실 때에 성경의 진리가 분명히 드러나게 하시고, 목회자의 심령과 가정과 건강을 친히 지켜 주옵소서. 교역자들과 모든 사역자들에게도 은혜를 더하셔서 맡겨진 영혼들을 사랑으로 돌보며, 복음의 선한 열매를 풍성히 맺게 하옵소서.

이 나라와 민족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공의로운 판단을 주시고, 갈등과 분열이 깊어지는 사회 가운데 화해와 질서의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통받는 이들, 일자리를 찾는 청년들, 돌봄이 필요한 이웃들을 외면하지 않게 하시며,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사랑을 실천하게 하옵소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과 박해 가운데 믿음을 지키는 세계의 교회에도 보호와 담대함을 더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을 성령께서 붙들어 주옵소서. 사람의 말이 아니라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게 하시고, 우리의 굳은 마음을 깨뜨리며 삶을 새롭게 하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말씀을 듣는 저희가 듣는 데서 그치지 않고, 가정과 일터와 세상 속에서 순종으로 응답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구원자 되시며 교회의 머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엘리야의 믿음, 무너진 제단 앞에서 하나님을 부르다

 

엘리야의 믿음, 무너진 제단 앞에서 하나님을 부르다

엘리야의 믿음은 무너진 시대 한복판에서 하나님을 부르는 믿음입니다. 그는 평안한 시대의 종교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잊은 시대, 우상이 국가의 중심이 된 시대, 진리와 거짓이 뒤섞인 시대에 부름받은 선지자였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엘리야의 이름을 직접 길게 설명하지는 않지만, “선지자들”의 믿음을 말하며 그들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감당했다고 증언합니다(히 11:32-34). 엘리야는 바로 그 선지자적 믿음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의 믿음은 시대가 어두울수록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더 분명히 붙드는 믿음이었습니다.

엘리야가 활동하던 시대는 북이스라엘 아합 왕의 시대였습니다. 아합은 이스라엘의 왕이었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시돈 왕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맞이했고, 바알 숭배를 국가적 규모로 들여왔습니다. 바알은 풍요와 비와 생산을 주관한다고 여겨지던 가나안의 우상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언약의 하나님을 버리고 풍요의 신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들의 죄는 단순한 종교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번영과 욕망을 하나님보다 더 신뢰한 배교였습니다.

그런 시대에 엘리야는 아합 앞에 서서 말했습니다.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왕상 17:1). 이 선언은 바알 숭배의 심장을 찌르는 말씀이었습니다. 비와 풍요를 준다고 믿던 바알 앞에서 엘리야는 비를 주관하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선포했습니다. 믿음은 시대의 우상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그 우상 앞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엘리야의 믿음은 고독한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다수의 지지를 받으며 사역하지 않았습니다. 왕과 왕비는 그를 미워했고, 바알 선지자들은 세력을 얻었으며, 백성은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머뭇거렸습니다. 갈멜산에서 엘리야는 백성에게 물었습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왕상 18:21). 이 질문은 그 시대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들려오는 말씀입니다. 믿음은 끝없는 중립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길 것인지, 세상의 우상을 따를 것인지 선택하게 합니다.

갈멜산의 대결은 단순한 종교 논쟁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누가 참 하나님이신지를 드러내는 영적 전쟁이었습니다. 바알 선지자들은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들은 뛰놀고, 소리 지르고, 자기 몸을 상하게 했지만 아무 응답도 없었습니다. 우상은 사람의 열정에 응답할 수 없습니다. 우상은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 낸 허상일 뿐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크게 외쳐도 생명 없는 신은 말하지 못하고, 듣지 못하며, 구원하지 못합니다.

반면 엘리야는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했습니다(왕상 18:30). 이 장면은 엘리야의 믿음을 가장 깊이 보여 줍니다. 그는 먼저 제단을 고쳤습니다. 불을 구하기 전에 무너진 예배를 회복했습니다. 능력을 구하기 전에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를 바로 세웠습니다. 믿음은 기적을 요구하기 전에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는 일입니다. 성도의 삶에서 제단이 무너졌다면, 아무리 많은 활동과 열심이 있어도 영혼은 메마를 수 있습니다. 예배가 무너지고, 말씀이 멀어지고, 기도가 식어 버렸다면 먼저 제단을 수축해야 합니다.

엘리야는 열두 돌을 취하여 제단을 쌓았습니다. 열두 돌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상징합니다. 북이스라엘은 정치적으로 분열된 왕국이었지만,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는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엘리야는 무너진 제단 앞에서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다시 불러냈습니다. 믿음은 흩어진 백성을 하나님의 언약 앞으로 다시 모으는 일입니다. 성도는 자신이 누구인지 잊을 때 무너집니다. 우리는 세상의 성공으로 정의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부름받은 언약 백성입니다.

엘리야의 기도는 짧았지만 깊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라고 기도했습니다(왕상 18:36). 그는 새로운 신을 부른 것이 아니라 조상들에게 언약하신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믿음은 새로운 자극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오래전부터 자기 백성에게 신실하셨던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엘리야의 기도는 자기 이름을 드러내기 위한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참 하나님이심과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이 모든 일을 행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를 구했습니다.

그때 여호와의 불이 내려왔습니다. 불은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도랑의 물까지 핥았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침묵하는 우상과 다르셨습니다. 백성은 엎드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왕상 18:39). 이것이 엘리야 믿음의 목표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위대함을 증명하려 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백성이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원했습니다. 참된 믿음은 자신이 인정받는 데 목적을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받고, 무너진 백성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을 기뻐합니다.

그러나 엘리야의 믿음은 갈멜산의 승리로만 설명되지 않습니다. 바로 다음 장면에서 그는 이세벨의 위협을 듣고 광야로 도망합니다. 그는 로뎀나무 아래 앉아 죽기를 구했습니다(왕상 19:4). 이것은 믿음의 사람도 지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큰 승리를 경험한 뒤에도 깊은 탈진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불을 내린 선지자였지만, 여전히 연약한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은 믿음의 사람을 신화적 영웅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믿음은 감정이 흔들리지 않는 초인적 상태가 아니라, 무너진 자리에서도 다시 하나님께 붙들리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지친 엘리야를 책망으로만 대하지 않으셨습니다. 천사를 보내어 먹이시고 재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의 영혼만이 아니라 몸의 피로도 돌보셨습니다. 이것은 깊은 목회적 위로입니다. 때로 성도의 낙심은 믿음 부족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친 몸, 오래된 긴장, 지속된 외로움이 영혼을 약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인간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하나님은 지친 선지자를 다시 먹이시고, 다시 걷게 하십니다.

호렙산에서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강한 바람이나 지진이나 불 가운데만 자신을 나타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세미한 소리 가운데 엘리야에게 임하셨습니다(왕상 19:12). 갈멜산의 하나님은 불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셨고, 호렙산의 하나님은 조용한 음성으로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믿음은 불의 응답만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조용한 하나님의 음성에도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장엄한 기적 속에서도 일하시지만, 깊은 침묵과 낮은 음성 속에서도 자기 백성을 새롭게 하십니다.

엘리야의 믿음은 오늘의 성도에게 무너진 제단을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의 시대도 바알의 시대와 다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름은 다르지만 우상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성공, 돈, 쾌락, 인정, 권력, 자기 만족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심지어 신앙도 하나님 자신보다 복과 성공을 얻기 위한 도구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그때 성도는 물어야 합니다. 내 삶의 제단은 온전한가. 나는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지는 않은가. 내 예배는 살아 있는가. 내 기도는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가.

엘리야의 믿음은 담대한 외침과 조용한 회복을 모두 포함합니다. 그는 아합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고, 갈멜산에서 무너진 제단을 수축했으며, 로뎀나무 아래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냈고,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것이 성도의 실제 신앙입니다. 때로는 담대해야 하고, 때로는 회개해야 하며, 때로는 쉬어야 하고, 때로는 다시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과정 속에서 자기 백성을 다루십니다.

엘리야의 믿음은 결국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믿음입니다.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으라는 믿음입니다. 우상 앞에서 머뭇거리는 마음을 버리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라는 믿음입니다. 성도는 시대가 어둡다고 해서 낙심만 할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고, 한 사람이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으며, 한 사람이 하나님을 부를 때, 하나님은 그 자리를 통해 자신의 살아 계심을 드러내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엘리야의 믿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먼저 제단을 수축해야 합니다. 무너진 예배를 다시 세우고, 식어진 기도를 다시 붙들고, 잊힌 말씀 앞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불은 인간의 조작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불은 하나님께서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실 때 임합니다. 성도는 불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 아니라, 무너진 제단 앞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부르는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우상이 강해 보이는 시대에도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는 사람입니다. 다수가 바알을 따를 때에도 여호와께 돌아오라고 외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지쳐 쓰러졌을 때에도 하나님의 손에 다시 일으킴을 받는 사람입니다. 엘리야의 하나님은 갈멜산의 불 가운데 계신 하나님이며, 로뎀나무 아래의 피곤한 영혼을 먹이시는 하나님이며, 호렙산의 세미한 음성으로 다시 사명을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 앞에서 성도는 오늘도 고백합니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십니다.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고, 살아 계신 주님을 부르겠습니다.”

2026년 7월 16일 목요일

[신앙칼럼] 사무엘의 믿음, 말씀을 듣고 시대를 깨우다

사무엘의 믿음, 말씀을 듣고 시대를 깨우다

사무엘의 믿음은 말씀을 듣는 믿음입니다. 그는 칼을 든 장수로 먼저 등장하지 않았고, 왕좌에 앉은 통치자로 부름받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아이로 시작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사람들을 말하면서 “사무엘”의 이름을 짧게 언급합니다(히 11:32). 그 짧은 이름 안에는 한 시대를 깨운 믿음의 본질이 담겨 있습니다. 믿음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서 시작됩니다. 말씀을 듣는 사람이 시대를 분별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무너진 시대를 깨웁니다.

사무엘이 살던 시대는 영적으로 어두운 시대였습니다. 사사 시대의 혼란이 계속되었고, 사람들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습니다. 제사장 엘리의 집은 무너지고 있었고, 그의 아들들은 성소에서 악을 행했습니다. 사무엘상 3장은 그 시대를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삼상 3:1). 이것은 단지 계시의 빈도를 말하는 문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존중받지 못하고, 영적 지도자들이 어두워지며, 백성의 마음이 말씀에서 멀어진 시대를 보여 줍니다.

그런 시대에 하나님은 어린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사무엘은 처음에 그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인 줄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엘리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반복되는 부르심 속에서 그는 마침내 이렇게 대답합니다.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삼상 3:10). 이 고백은 사무엘의 믿음을 여는 문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 말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듣는 자세입니다. 성도는 자기 생각을 관철하기 위해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기 생각을 낮추는 사람입니다.

사무엘의 믿음은 듣는 믿음이면서 동시에 순종하는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처음 맡기신 말씀은 쉬운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엘리의 집에 대한 심판의 말씀이었습니다. 어린 사무엘에게 그 말씀은 무거웠을 것입니다. 자신을 돌보아 준 엘리에게 심판의 메시지를 전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믿음은 듣기 좋은 말만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무거울 때에도 그 말씀의 진실 앞에 서는 것입니다.

오늘의 성도에게도 사무엘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말이 넘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정보는 많고, 의견은 빠르며, 감정은 쉽게 확산됩니다. 그러나 말씀이 희귀한 시대일 수 있습니다. 성경은 가까이 있지만, 말씀 앞에 머무는 마음은 줄어들 수 있습니다. 설교는 많지만 회개는 적고, 지식은 많지만 순종은 약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믿음의 사람은 먼저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생각의 장식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삶의 기준과 판단의 중심으로 삼아야 합니다.

사무엘의 믿음은 시대를 분별하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이자 선지자이며, 왕정 시대를 여는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사울에게 기름을 부었고, 다윗에게도 기름을 부었습니다. 사무엘은 한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경계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시대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왕을 요구하는 백성의 소리도 들었지만, 그보다 먼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믿음의 지도자는 여론보다 말씀을 두려워하고, 시대의 요구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깊이 분별하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왕을 요구했을 때, 사무엘은 마음이 상했습니다. 백성은 주변 나라들처럼 자신들에게도 왕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정치 제도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요구 안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왕을 의지하려는 마음이 숨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그들이 사무엘을 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삼상 8:7). 사무엘은 이 사건 속에서 인간의 욕망과 하나님의 주권 사이에 서야 했습니다.

사무엘의 믿음은 기도의 믿음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백성을 책망하면서도 백성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겠다”고 말했습니다(삼상 12:23). 이것은 매우 깊은 영적 고백입니다. 사무엘은 백성의 죄를 분명히 지적했지만, 동시에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참된 믿음은 진리를 말하면서도 사랑을 잃지 않습니다. 말씀의 사람은 책망할 줄도 알아야 하지만, 눈물로 중보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사무엘의 믿음은 사람을 세우되 사람을 절대화하지 않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사울에게 기름을 부었지만,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을 때 그를 책망했습니다. 사무엘은 왕의 권력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말했습니다(삼상 15:22). 이 말씀은 사무엘의 신학을 가장 잘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종교적 형식보다 말씀에 대한 순종을 원하십니다. 예배의 외형이 화려해도 말씀을 거역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사무엘의 믿음은 다윗을 세우는 장면에서도 빛납니다. 이새의 아들들이 사무엘 앞에 섰을 때, 사람의 눈에는 엘리압이 왕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삼상 16:7). 사무엘은 자기 판단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선택을 따랐습니다. 믿음은 보이는 조건만으로 사람과 시대를 판단하지 않는 눈입니다. 하나님은 들판에서 양을 치던 다윗을 보셨고, 사무엘은 하나님의 시선을 따라 그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사무엘의 믿음은 결국 말씀 앞에 평생을 세운 믿음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에 “말씀하옵소서”라고 고백했고, 노년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백성을 지도했습니다. 그의 삶은 말씀이 희귀한 시대에 말씀을 듣는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많은 사람이 떠들 때, 조용히 듣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시대가 어두울 때, 하나님은 화려한 능력보다 말씀 앞에 엎드린 영혼을 통해 일하십니다.

오늘 성도는 사무엘의 믿음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정말 듣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내 생각보다 앞세우고 있습니까. 시대의 소리, 사람의 평가, 내 감정의 요구보다 주님의 음성을 더 귀하게 여기고 있습니까. 믿음은 듣는 데서 시작되고, 순종에서 자라며, 기도와 분별 속에서 시대를 깨웁니다.

사무엘의 믿음은 성도에게 조용하지만 강력한 길을 보여 줍니다. 말씀을 듣는 한 사람이 가정의 방향을 바꿀 수 있습니다. 말씀 앞에 선 한 사람이 교회를 깨울 수 있습니다. 기도를 쉬지 않는 한 사람이 무너지는 시대 속에서 하나님의 긍휼을 붙들 수 있습니다. 사무엘은 왕이 아니었지만 왕들을 세웠고, 군대의 장수는 아니었지만 시대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그의 힘은 권력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의 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믿음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무엘의 믿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시대를 깨우는 사람은 먼저 말씀 앞에서 깨어난 사람입니다. 세상을 향해 말하기 전에 하나님께 귀를 여는 사람입니다. 사람의 박수보다 하나님의 음성을 두려워하고, 여론보다 진리를 사랑하며, 책망과 중보를 함께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말씀을 듣는 성도를 통해 일하십니다. 성도의 가장 깊은 고백은 이것입니다.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이 고백이 살아 있는 곳에서 믿음은 다시 시작되고, 무너진 시대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다시 깨어납니다.

2026년 7월 15일 수요일

[신앙칼럼] 다윗의 믿음, 보이는 거인보다 크신 하나님을 보다

다윗의 믿음, 보이는 거인보다 크신 하나님을 보다

다윗의 믿음은 보이는 현실을 부정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그는 골리앗이 크다는 사실을 몰랐던 사람이 아닙니다. 블레셋 장수의 키와 갑옷과 창과 위협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것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믿음은 현실을 작게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크게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사람들을 말하면서 다윗의 이름을 함께 기록합니다(히 11:32). 다윗의 믿음은 강한 사람의 자신감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담대함입니다.

사무엘상 17장의 전쟁터는 믿음과 두려움이 선명하게 갈라지는 자리입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골리앗의 소리를 들을 때마다 두려워 떨었습니다. 골리앗은 단지 키 큰 장수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신앙을 조롱하는 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했고, 이스라엘의 마음을 공포로 묶었습니다. 두려움은 언제나 현실을 과장하고 하나님을 작게 만듭니다. 이스라엘은 골리앗을 보았지만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같은 전쟁터에서 다른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골리앗의 크기보다 하나님의 이름을 보았습니다. 다윗은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고 말했습니다(삼상 17:26). 이 말은 다윗의 믿음이 어디에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다윗에게 문제의 핵심은 군사력의 차이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당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자기 안전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더 크게 여깁니다.

다윗은 갑자기 믿음의 사람이 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들판에서 양을 치며 하나님을 배웠습니다. 사자와 곰이 양 떼를 해치려 할 때,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건져 주셨음을 경험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 앞에서 과거의 은혜를 기억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삼상 17:37). 믿음은 기억하는 힘입니다. 하나님께서 어제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은 오늘의 두려움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다윗의 믿음은 세상의 방식과 달랐습니다. 사울은 다윗에게 자신의 군복과 투구와 갑옷을 입혔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것을 벗었습니다. 그는 익숙하지 않은 갑옷으로 싸우지 않았습니다. 대신 물매와 돌 다섯 개를 들었습니다. 이것은 무모함이 아닙니다. 다윗은 자신이 의지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믿음은 세상이 강하다고 여기는 것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자리와 방식 안에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골리앗에게 나아가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 17:45). 이 고백은 다윗의 믿음의 절정입니다. 골리앗은 무기를 의지했고,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했습니다. 골리앗은 자기 힘을 자랑했고, 다윗은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했습니다. 믿음은 결국 의지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가진 것입니까, 실력입니까, 사람의 인정입니까, 아니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이름입니까.

다윗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전쟁의 주인이심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삼상 17:47). 이 말은 성도의 모든 싸움에도 적용됩니다. 우리의 삶에는 여러 골리앗이 있습니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 오래된 두려움, 관계의 상처, 경제적 불안, 죄와 습관의 싸움, 미래에 대한 막막함이 우리 앞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그 싸움의 최종 주인이 자신이 아님을 압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 힘만 계산하다가 낙심하지 않습니다.

다윗의 믿음은 작은 순종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그는 왕궁의 장군으로 전쟁터에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형들에게 음식을 전하러 온 소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작은 걸음을 통해 큰 믿음의 무대를 여셨습니다. 성도는 일상의 작은 순종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양을 치던 들판에서 다윗을 준비시키셨고, 심부름의 길 위에서 골리앗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믿음의 큰 사건은 종종 평범한 순종의 길 위에서 시작됩니다.

다윗의 믿음은 승리 이후에도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쓰러뜨렸지만, 그의 인생 전체가 곧장 평탄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후 사울에게 쫓기고, 광야를 지나며, 수많은 기다림과 고난을 겪었습니다. 믿음은 한 번의 승리로 모든 문제가 끝난다는 보장이 아닙니다. 믿음은 승리의 날에도 교만하지 않고, 광야의 날에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삶입니다. 다윗의 믿음은 골리앗 앞에서만이 아니라 엔게디 굴과 광야의 침묵 속에서도 시험받았습니다.

다윗은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훗날 큰 죄를 범했고, 깊은 책망과 징계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의 실패를 숨기지 않으면서도 그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이것은 다윗이 죄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죄를 깨달았을 때 하나님 앞에 무너질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넘어지지 않는 완전함이 아닙니다. 믿음은 넘어졌을 때 다시 하나님께 돌아가는 회개의 마음입니다. 다윗의 위대함은 자기 의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긍휼을 붙드는 데 있었습니다.

다윗의 믿음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합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었지만, 그는 더 크신 왕의 그림자였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씨를 통해 영원한 왕국을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그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사건은 단순히 작은 소년이 큰 장수를 이긴 감동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가 백성을 대신하여 원수를 무너뜨리는 구속사의 표지입니다. 참된 다윗이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다윗처럼 용감해져야 한다는 도덕적 교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먼저 다윗보다 크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골리앗을 이기는 영웅이기 전에, 그리스도의 승리 안에 피난한 백성입니다. 우리가 담대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안에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미 가장 큰 원수인 죄와 죽음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용기는 자기 확신에서 나오지 않고 그리스도의 승리에서 나옵니다.

오늘도 우리 앞에는 크고 무거운 문제들이 서 있습니다. 어떤 문제는 골리앗처럼 날마다 우리를 조롱합니다. “너는 못 한다. 너는 안 된다. 너는 무너질 것이다.” 그러나 믿음은 그 소리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듣는 것입니다. 믿음은 두려움의 크기를 재는 대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보이는 거인을 부정하지 않지만, 그 거인보다 크신 하나님을 더 분명히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믿음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골리앗을 보되 골리앗만 보지 말아야 합니다. 현실을 직면하되 현실에 갇히지 말아야 합니다. 두려움을 느끼되 두려움에게 인생의 왕좌를 내어 주지 말아야 합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해 있습니다. 성도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늘의 싸움 앞에 섭니다. 그 이름이 우리의 방패이며, 우리의 용기이며, 우리의 승리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거인이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거인 앞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물매와 돌을 들었지만, 그의 참된 무기는 하나님의 이름이었습니다. 오늘 성도에게도 같은 믿음이 필요합니다. 보이는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 들리는 위협보다 신실하신 하나님, 우리의 약함보다 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으로 성도는 오늘도 고백합니다.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갑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입니다.”

2026년 7월 14일 화요일

아브라함의 믿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나다

 

아브라함의 믿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나다

  • 본문: 창세기 12:1-9 / 히브리서 11:8-10 / 로마서 4:18-22

서론: 믿음은 익숙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향해 떠나는 것입니다

믿음은 언제나 길 위에서 시작됩니다. 믿음은 안전한 자리에서 하나님을 분석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익숙한 자리를 떠나는 일입니다. 성경의 믿음은 머릿속의 동의로 끝나지 않습니다. 믿음은 발걸음을 요구합니다. 믿음은 마음의 방향을 바꾸고, 삶의 자리를 옮기고, 익숙한 세계를 내려놓게 합니다.

아브라함은 그런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는 성경에서 “믿음의 조상”이라 불릴 만큼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갈대아 우르와 하란이라는 익숙한 세계 안에서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도 집이 있었고, 친족이 있었고, 문화가 있었고, 안정된 삶의 질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셨습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이 말씀은 아브라함의 인생을 흔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목적지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지도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과정을 미리 알려 주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말씀하셨습니다. “떠나라.” 그리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오늘 설교의 중심은 이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모든 것을 알고 떠난 믿음이 아니라, 말씀하신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에 갈 바를 알지 못하고도 순종한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결국 참된 약속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됩니다.

1.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의 부르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인간의 결심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서 시작됩니다. 창세기 12장은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믿음의 출발점은 아브라함의 종교적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먼저 하나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이것은 성경 전체의 중요한 원리입니다. 믿음은 인간이 하나님을 향해 쌓아 올린 사다리가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실 때 시작되는 응답입니다. 아담이 숨었을 때 하나님이 찾아오셨고, 노아가 살던 시대가 부패했을 때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셨으며, 아브라함이 이방 땅에 살고 있을 때 하나님이 그를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자기 신앙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자랑거리가 아니라 은혜의 흔적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붙든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먼저 나를 붙드셨습니다. 내가 말씀을 선택한 것 같지만, 사실은 말씀이 먼저 내 인생을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떠남은 믿음의 첫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그 떠남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삶의 주인을 바꾸는 사건이었습니다.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은 단순한 장소가 아닙니다. 그것은 정체성, 안전, 보호, 관계, 과거의 세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익숙한 의지처를 내려놓고 하나님 자신을 의지하라고 부르셨습니다.

믿음은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너는 무엇을 의지하고 사느냐?”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가지고 있습니다. 돈일 수 있고, 사람의 인정일 수 있고, 과거의 경험일 수 있고, 지식일 수 있고, 안정된 환경일 수 있습니다. 그것들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하나님보다 더 깊은 의지처가 될 때,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 자리에서 떠나라. 나를 신뢰하라.”

2.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순종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8절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이 말씀에서 가장 인상적인 표현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입니다.

우리는 대개 모든 것을 알고 나서 움직이고 싶어 합니다. 목적지가 분명해야 하고, 과정이 계산되어야 하고, 손해가 없어야 하며, 결과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길은 언제나 모든 정보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최종 목적지보다 먼저 하나님 자신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은 무지한 모험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아무 근거 없이 떠난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떠났습니다. 목적지는 몰랐지만 말씀하신 분은 알았습니다. 길은 몰랐지만 부르신 하나님은 신실하심을 믿었습니다. 믿음은 미래를 다 아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붙드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우리는 내일을 모릅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어떤 문이 열리고 어떤 문이 닫힐지, 어떤 기쁨과 슬픔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말씀하신 하나님을 압니다. 우리를 부르신 분이 신실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 선하시며, 우리를 끝까지 버리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즉각적이었습니다. 창세기 12장 4절은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라고 말합니다. 여기에는 믿음의 단순함이 있습니다. 그는 많은 변명을 늘어놓지 않았습니다. 모든 가능성을 계산한 뒤 움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말씀을 들었고, 말씀을 따라갔습니다.

오늘 우리의 믿음이 약해지는 이유 중 하나는 말씀보다 계산을 더 오래 붙들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이미 들었는데, 우리는 계속 계산합니다. 순종해야 할 것을 알면서도 더 안전한 조건을 기다립니다. 용서해야 할 것을 알면서도 상대가 먼저 바뀌기를 기다립니다. 내려놓아야 할 것을 알면서도 손해가 없을 때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믿음은 계산이 끝난 뒤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 계산보다 더 크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시작됩니다.

3. 아브라함의 믿음은 약속을 붙드는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떠나라고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약속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아브라함의 믿음은 막연한 종교심이 아니라 약속을 붙드는 믿음이었습니다.

성경의 믿음은 언제나 하나님의 약속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믿음은 자기 소원을 강하게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붙든 것은 자기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약속은 처음부터 현실과 충돌했습니다. 하나님은 큰 민족을 약속하셨지만, 아브라함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땅을 약속하셨지만, 그는 가나안 땅에서 장막에 거하는 나그네였습니다. 복의 근원이 되리라 하셨지만, 그의 현실은 불안정한 이주민의 삶이었습니다. 약속은 컸지만 현실은 작았습니다. 약속은 영광스러웠지만 삶은 흔들렸습니다.

여기서 믿음의 훈련이 시작됩니다. 믿음은 약속과 현실 사이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현실이 약속을 부정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믿음은 약속하신 하나님을 붙듭니다. 로마서 4장은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고 말합니다. 그의 몸은 늙었고 사라의 태도 죽은 것 같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졌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의 믿음이 언제나 흔들림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갔고, 두려움 때문에 아내를 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약속을 기다리지 못해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의 실패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더 크게 보여 줍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완벽한 믿음이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다시 약속으로 돌아오는 믿음이었습니다.

이 점에서 아브라함은 우리에게 큰 위로를 줍니다. 믿음의 조상도 흔들렸습니다. 믿음의 조상도 두려워했습니다. 믿음의 조상도 자기 방식으로 약속을 이루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말씀하셨고, 다시 약속을 확인하셨고, 결국 그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4. 아브라함은 장막에 살며 더 나은 본향을 바라보았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에 거할 때 장막에 거했다고 말합니다. 장막은 임시 거처입니다. 그는 가나안 땅을 약속받았지만, 그 땅에서 성을 쌓고 정착한 사람이 아니라 나그네처럼 살았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단지 땅의 소유에 머물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히브리서 11장 10절은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다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눈앞의 땅만 바라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비하실 더 나은 본향을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믿음은 땅의 약속을 통해 하늘의 본향으로 나아갔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삽니다. 나그네라는 말은 세상을 미워하며 산다는 뜻이 아닙니다. 책임 없이 산다는 뜻도 아닙니다. 나그네는 목적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이 땅의 삶을 소중히 살지만, 이 땅을 최종 목적지로 삼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장막에 살면서도 제단을 쌓았습니다. 창세기 12장을 보면 그가 세겜에 이르렀을 때 여호와께 제단을 쌓았고, 벧엘 동쪽 산에서도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의 모습입니다. 세상 속에서는 장막을 치고, 하나님 앞에서는 제단을 쌓습니다. 삶은 임시적이지만 예배는 영원한 방향을 가집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장막과 제단이 필요합니다. 장막은 이 세상이 영원하지 않다는 고백입니다. 제단은 하나님이 나의 참 주인이시라는 고백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장막을 성처럼 여기고, 제단을 장식처럼 여길 때입니다. 이 땅의 집과 소유와 성공은 영원한 성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린 예배와 순종은 영원한 나라와 연결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우리를 나그네 신앙으로 부릅니다. 너무 움켜쥐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땅의 흔들림이 우리의 최종 운명을 결정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지으실 성이 있습니다. 성도는 그 성을 바라보며 오늘의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5. 아브라함의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설교할 때 반드시 그리스도께 이르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단지 한 개인의 성공 이야기가 아닙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는 약속은 구속사의 큰 흐름을 엽니다. 이 약속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이어지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됩니다.

갈라디아서 3장은 아브라함의 자손을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와 연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복이 모든 민족에게 흘러가게 하시는 분입니다. 아브라함은 복의 통로로 부름 받았지만, 그 복의 실체는 그리스도입니다. 죄인이 의롭다 하심을 얻고, 하나님과 화목하며, 성령의 약속을 받는 모든 은혜가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집니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뜻을 아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갔지만,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장막에 거하며 더 나은 본향을 바라보았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그 본향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자기 몸을 찢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믿음은 그 자체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도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지만, 그 의로움의 근거는 결국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고, 그 믿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의미를 얻습니다.

오늘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섭니다. 그러나 이 믿음은 단순히 입술의 고백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참된 믿음은 아브라함처럼 떠나게 합니다. 죄의 자리에서 떠나고, 자기 의의 자리에서 떠나고,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던 것에서 떠나게 합니다. 그리고 약속을 따라 걷게 합니다.

결론: 말씀을 따라 떠나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의 믿음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나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에 순종했습니다. 그는 미래를 손에 쥐었기 때문에 떠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약속하신 하나님이 신실하심을 믿었기 때문에 떠났습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떠나라.” 이 말씀은 반드시 지리적 이동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죄의 습관에서 떠나라고 하십니다. 오래 붙들고 있던 두려움에서 떠나라고 하십니다. 사람의 인정에 매인 삶에서 떠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던 거짓 안전에서 떠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향해 걸으라고 하십니다.

믿음의 길은 언제나 선명한 지도와 함께 주어지지 않습니다. 때로는 한 걸음 앞만 보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한 걸음 앞만 보여도 말씀하신 하나님을 따라 걷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처럼 갈 바를 다 알지 못해도, 하나님이 부르셨다면 떠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다면 기다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신다면 장막에서도 예배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장막과 같습니다. 영원히 머물 집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도는 장막을 치는 곳마다 제단을 쌓는 사람입니다. 잠시 머무는 삶 속에서도 영원하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이 땅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성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부르시는 길이라면 떠나십시오. 하나님이 약속하신 길이라면 기다리십시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길이라면 낯선 곳에서도 예배하십시오. 믿음은 모든 것을 손에 쥐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붙드신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부르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더 크고 영원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고, 성령 안에서 약속의 백성이 되었으며, 하나님 나라의 본향을 향해 걷는 순례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믿음이 아브라함의 믿음처럼 되기를 바랍니다. 익숙한 자리를 떠나는 믿음, 갈 바를 알지 못해도 말씀을 따라 걷는 믿음, 현실보다 약속을 더 크게 붙드는 믿음, 장막의 삶 속에서도 제단을 쌓는 믿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약속의 완성을 바라보는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믿음으로 오늘도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걷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6년 10월 둘째주 주일 오후 찬양 예배 대표기도문

2026년 10월 둘째주 주일 오후 찬양 예배 대표기도문

찬양과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2026년 10월 둘째 주일 오후에도 저희를 주의 전으로 불러 모아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깊어 가는 가을의 하늘 아래, 우리의 호흡과 걸음과 하루의 생명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오전 예배 가운데 부어 주신 말씀의 은혜가 이 오후 찬양 예배 가운데서도 이어지게 하시고, 우리의 심령이 다시 하나님을 향하여 열리게 하옵소서.

천지를 말씀으로 지으시고 계절을 따라 열매 맺게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나 메마른 가지처럼 살아가던 저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속량하시고, 부활의 생명으로 새 소망을 얻게 하셨으니 감사드립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굳은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믿음으로 오늘도 우리를 붙들어 주옵소서. 우리의 찬양이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구원받은 백성의 고백이 되게 하시며, 은혜 입은 자들의 감사가 되게 하옵소서.

자비로우신 하나님, 이 시간 우리의 죄를 회개합니다. 예배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세상의 염려와 욕심에 머물렀고, 찬양을 부르면서도 그 고백대로 살지 못했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말씀을 들었으나 순종이 더뎠고, 받은 은혜는 잊어버린 채 감사보다 불평을 앞세웠던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형제와 자매를 사랑하기보다 판단하였고, 교회의 덕을 세우기보다 나의 생각을 앞세웠던 모든 허물을 십자가의 은혜로 씻어 주옵소서.

가을이 깊어지고 일교차가 커지는 이 계절에 성도들의 삶을 돌보아 주옵소서. 연로하신 성도들의 기력을 붙들어 주시고, 병상에 있는 성도들에게 치료와 회복의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일터에서 수고하는 성도들, 경제적 어려움으로 마음이 무거운 가정들, 홀로 눈물로 기도하는 영혼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자녀들과 청년들에게 믿음의 중심을 주시고, 수능과 진로와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지혜와 담대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가을 나들이와 이동 중에도 안전을 지켜 주시며, 모든 가정이 말씀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옵소서.

수금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고난의 날에도 여호와를 노래했던 다윗처럼, 우리도 형편에 매이지 않고 하나님을 높이게 하옵소서.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라” 하신 말씀처럼, 오늘 우리의 입술과 마음이 감사와 찬송으로 주의 임재 앞에 서게 하옵소서.

오늘 드리는 찬양 예배를 기쁘게 받아 주옵소서. 찬양대와 찬양팀, 반주자들과 예배를 섬기는 모든 손길 위에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사람의 기교가 드러나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예배가 되게 하시고, 회중의 찬양이 한마음으로 올려지는 거룩한 제사가 되게 하옵소서. 찬양 가운데 상한 마음이 위로받고, 닫힌 마음이 열리며, 낙심한 영혼이 다시 믿음의 자리로 돌아오게 하옵소서. 말씀을 선포하시는 목사님께 하늘의 능력과 권세를 더하시고, 찬양으로 열린 우리의 마음이 말씀 앞에서 순종으로 이어지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를 은혜로 붙들어 주옵소서. 예배가 회복되게 하시고, 말씀의 권위가 성도들의 가정과 일터와 삶의 자리마다 든든히 세워지게 하옵소서. 하반기 사역과 가을 전도, 목장과 구역 모임, 다음 세대 교육과 찬양 사역 위에 새 힘을 더하여 주옵소서. 성도 간에 화목과 사랑이 깊어지게 하시고, 서로의 짐을 나누어 지며 그리스도의 법을 이루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이 나라와 한국 교회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위정자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공의로운 판단력을 주시고, 재난과 사고와 사회적 갈등 가운데 이 땅을 지켜 주옵소서. 한국 교회가 다시 회개와 거룩의 자리로 돌아가게 하시며, 다음 세대가 세상의 가치에 휩쓸리지 않고 복음의 진리 위에 서게 하옵소서.

남은 예배의 모든 순서를 하나님께 맡겨 드립니다. 10월의 남은 날들과 새롭게 시작될 한 주간도 주의 손에 의탁하오니, 우리의 찬양이 삶의 순종이 되게 하시고, 우리의 믿음이 이웃을 살리는 사랑으로 나타나게 하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신앙 칼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무엇이 달라지는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무엇이 달라지는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지 생각 하나가 바뀌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존재의 방향이 바뀌는 일입니다. 이전에는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보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자신과 세상과 인생을 바라보게 됩니다. 믿음은 삶에 종교적 장식을 하나 더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뿌리와 기준과 목적을 새롭게 하는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반드시 달라집니다. 그 변화는 때로 조용하게 시작되지만, 결국 생각과 말과 선택과 관계와 소망 전체를 새롭게 빚어 갑니다.

첫째, 자신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자신을 세상의 평가로만 보지 않습니다. 사람은 자주 성취와 실패, 능력과 부족함, 타인의 인정과 거절 속에서 자기 가치를 판단합니다. 그래서 성공하면 교만해지고, 실패하면 쉽게 무너집니다. 그러나 믿음은 인간의 가치를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 안에서 보게 합니다. 나는 우연히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지음받은 사람이며,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사람입니다.

이 사실을 알 때 성도는 자기 자신을 함부로 미워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자기 자신을 우상처럼 높이지도 않습니다. 믿음은 우리를 교만에서도 구하고, 자기비하에서도 구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죄인이지만, 동시에 은혜로 사랑받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의 약함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절망하지 않고, 자신의 은사를 자랑하지 않으면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둘째, 죄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하나님을 믿기 전에는 죄를 단순히 실수나 습관이나 성격 문제로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죄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무너뜨리는 깊은 문제임을 알게 됩니다. 죄는 단지 나에게 손해를 주는 행동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빗나간 상태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믿는 사람은 죄 때문에 절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십자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죄를 깨달을 때 숨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회개는 하나님께 버림받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입니다. 믿음은 죄를 정직하게 보게 하고, 십자가의 은혜 안에서 다시 일어서게 합니다. 그래서 성도의 삶에는 반복되는 회개와 회복이 있습니다.

셋째, 고난을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고난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믿는 사람도 병들고, 실패하고, 상실을 겪고, 이해할 수 없는 시간을 지납니다. 그러나 믿음은 고난의 의미를 다르게 보게 합니다. 성도는 고난을 인생의 마지막 문장으로 읽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고난 속에서도 일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고난은 단지 불운이거나 부조리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에게 고난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낮추시고, 다듬으시고, 더 깊은 은혜로 이끄시는 자리일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고난의 이유를 쉽게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성도도 울고 아파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눈물 속에서도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사실을 놓지 않습니다. 믿음은 고난을 없애는 마술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붙들게 하는 힘입니다.

넷째,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이웃을 단순히 경쟁자나 이용할 대상으로 보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관계의 태도를 바꿉니다.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게 하고, 약한 사람을 멸시하지 않게 하며, 원수까지도 하나님의 긍휼 안에서 바라보게 합니다.

특히 십자가를 아는 사람은 용서를 배웁니다. 자신이 먼저 용서받은 사람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물론 용서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상처가 깊을수록 용서는 긴 여정이 됩니다. 그러나 성도는 미움이 자기 영혼을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크기 때문에, 조금씩 사랑과 긍휼의 길을 배워 갑니다. 믿음은 관계 속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 가게 합니다.

다섯째, 삶의 목적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더 이상 자기만을 위해 살 수 없습니다. 이전에는 성공, 소유, 인정, 편안함이 인생의 중심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들어오면 삶의 목적이 달라집니다. 성도는 “내가 무엇을 얻을 것인가”만 묻지 않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는가”를 묻게 됩니다.

이 변화는 매우 중요합니다. 믿음은 평범한 일상도 거룩하게 만듭니다. 가정에서의 사랑, 일터에서의 정직, 교회에서의 섬김, 이웃을 향한 작은 친절도 하나님 앞에서는 의미 있는 순종이 됩니다. 성도는 거창한 일을 해야만 하나님께 쓰임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오늘 맡겨진 일을 신실하게 감당할 때, 그 삶은 이미 하나님 나라의 증거가 됩니다.

여섯째, 미래를 바라보는 소망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죽음을 마지막으로 보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젊음도, 재물도, 명예도, 인간의 영광도 시간 앞에서 무너집니다. 그러나 성도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봅니다. 이 소망은 현실을 도피하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늘을 더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게 합니다.

영원을 믿는 사람은 사라질 것에 인생 전체를 걸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세상의 성공 앞에서도 지나치게 들뜨지 않고, 실패 앞에서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고, 우리의 미래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믿음은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영원한 소망에 마음의 닻을 내리게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방향이 달라진 사람입니다.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죄를 미워하게 되고, 고난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게 됩니다. 사람을 이용하던 자리에서 사랑하려는 자리로 옮겨지고, 자신만을 위해 살던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묻는 자리로 옮겨집니다.

믿음은 성도를 하루아침에 완성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날마다 새롭게 빚어 갑니다. 하나님은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의 마음을 다루시고,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의 죄를 씻으시며, 부활의 소망으로 우리의 걸음을 붙드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오늘도 조금씩 달라집니다. 더 낮아지고, 더 깊어지고, 더 사랑하게 되며, 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갑니다.

믿음의 변화는 결국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변화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내 삶의 왕좌에 내가 앉아 있던 자리에서 내려와,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는 일입니다. 그때 삶은 새 방향을 얻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흔들리고 우리는 여전히 연약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중심이 있습니다. 그 중심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며, 그 길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이고, 그 끝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입니다.

2026년 7월 13일 월요일

[신앙칼럼] 기드온과 믿음, 연약함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

 

기드온과 믿음, 연약함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

기드온의 믿음은 강한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큰일을 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연약하고 두려움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서 붙드시고 사용하신 이야기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사람들을 열거하면서 “기드온”의 이름을 짧게 언급합니다(히 11:32). 그의 이름은 아브라함이나 모세처럼 길게 설명되지 않지만, 그 짧은 언급 속에는 깊은 은혜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완성된 사람만 부르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떨고 있는 사람을 부르시고, 부르신 사람을 믿음의 자리로 이끌어 가시는 분입니다.

기드온이 살던 시대는 사사 시대였습니다. 사사기는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는 말로 그 시대의 영적 혼란을 요약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났고, 미디안의 압제 아래 고통받았습니다. 백성들은 산과 굴과 산성에 숨어 살았고, 수고하여 거둔 곡식은 미디안 사람들에게 빼앗겼습니다. 그 시대의 문제는 단지 정치적 약함이나 경제적 빈곤이 아니었습니다. 더 깊은 문제는 하나님을 떠난 언약 백성의 영적 무너짐이었습니다.

그런 시대에 하나님은 기드온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처음부터 담대한 용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미디안 사람들을 피하여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고 있었습니다(삿 6:11). 넓은 타작마당이 아니라 숨어 있는 포도주 틀에서 곡식을 턴다는 것은 그의 두려움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사자는 그를 향해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말했습니다(삿 6:12). 하나님은 기드온의 현재 모습만 보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와 함께하실 때 이루어질 미래를 보셨습니다.

이 장면은 믿음의 중요한 원리를 보여 줍니다. 믿음은 내가 강하다는 자기 확신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붙드는 것입니다. 기드온은 자신을 작게 보았습니다. 그는 자기 집이 므낫세 중에 가장 약하고, 자신은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말했습니다(삿 6:15). 그의 고백은 겸손이라기보다 두려움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약함을 몰라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능력이 어디서 오는지를 드러내십니다.

기드온의 믿음은 즉시 완전한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계속 표징을 구했습니다. 양털 뭉치에만 이슬이 있고 땅은 마르게 해 달라고 했고, 다시 양털만 마르고 땅에는 이슬이 있게 해 달라고 구했습니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기드온의 조심스러움과 두려움을 봅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께서 연약한 믿음을 얼마나 오래 참으시는지도 봅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의 더딘 믿음을 즉시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연약함을 책망만 하지 않으시고, 그가 한 걸음씩 순종하도록 붙들어 주셨습니다.

물론 성도는 기드온의 양털 시험을 아무 때나 따라 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 위에 서야 합니다. 그러나 기드온의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연약한 성도를 다루시는 방식에 대해 큰 위로를 줍니다. 하나님은 흔들리는 믿음을 무시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두려워하는 사람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믿음은 처음부터 크고 완전한 모습으로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때로 믿음은 떨리는 마음으로도 하나님께 한 걸음 순종하는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기드온의 믿음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군대의 숫자가 줄어드는 사건입니다. 처음에는 삼만 이천 명이 모였지만, 하나님은 두려워 떠는 자들을 돌려보내게 하셨고, 결국 삼백 명만 남게 하셨습니다(삿 7장). 인간적으로는 전쟁을 앞두고 병력을 늘려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히려 줄이셨습니다.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스스로 자랑하며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고 말하지 못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승리보다 더 중요한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구원은 사람의 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 속한 것입니다.

믿음은 숫자의 많음에 의지하지 않는 삶입니다. 성도는 자주 보이는 조건을 세어 봅니다. 가진 것이 얼마나 되는지, 사람이 얼마나 모였는지, 가능성이 얼마나 있는지 계산합니다. 물론 지혜로운 준비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계산을 최종 근거로 삼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적은 것도 충분하고, 하나님께서 떠나시면 많은 것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기드온의 삼백 명은 약함의 숫자였지만, 하나님 손에 붙들릴 때 구원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기드온의 전쟁 방식도 놀랍습니다. 칼과 창이 아니라 나팔과 항아리와 횃불이 사용되었습니다. 항아리가 깨지고 횃불이 드러나며 나팔 소리가 울릴 때, 하나님은 미디안 진영을 혼란에 빠뜨리셨습니다. 이 장면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유롭게 일하시는지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예상하는 방식에 갇히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강한 무기를 통해서도 일하시지만, 때로는 깨어진 항아리와 작은 횃불을 통해서도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성도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너무 약하다고 생각합니다. 말이 부족하고, 능력이 부족하고, 믿음도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완전한 그릇만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깨어진 그릇을 통해서도 빛을 드러내십니다. 중요한 것은 그릇의 화려함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빛입니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질그릇에 보배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심히 큰 능력은 우리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습니다(고후 4:7).

기드온의 믿음은 연약함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배우는 믿음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용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숨어 있었고, 주저했고, 여러 번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기드온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영웅담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이야기입니다. 믿음의 핵심은 기드온이 얼마나 대단했는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얼마나 신실하게 그를 붙드셨는가에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기드온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자주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봅니다. “나는 작습니다. 나는 약합니다. 나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약함을 모르고 부르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약함을 아시면서도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 약함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히 드러나게 하십니다. 믿음은 내 가능성을 크게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능성을 크게 보는 것입니다.

기드온의 이야기는 성도에게 조용하지만 강한 위로를 줍니다. 두려움이 있다고 해서 믿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흔들린다고 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이 취소되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는 것입니다. 연약함 속에서도 하나님께 순종의 한 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작은 순종을 통해 자신의 큰 일을 이루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드온의 믿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강한 사람을 찾아 자신의 일을 맡기시는 분이 아니라, 연약한 사람을 붙들어 강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많은 숫자와 큰 조건을 통해서만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 삼백 명과 깨어진 항아리와 작은 횃불을 통해서도 영광을 드러내시는 분입니다. 성도는 자신의 약함 때문에 낙심하지 않아도 됩니다. 약함은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없는 이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날 수 있는 자리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정직하게 인정하면서도, 그 연약함보다 크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기드온이 숨어 있던 자리에서 부르심을 받았듯이, 오늘 우리도 두려움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하리라.” 이 약속이 성도의 힘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연약한 사람도 믿음의 사람이 되고, 작은 순종도 구원의 도구가 됩니다.

[신앙칼럼] 라합의 믿음, 은혜는 예상 밖의 사람에게 임합니다

라합의 믿음, 은혜는 예상 밖의 사람에게 임합니다

라합의 믿음은 성경이 말하는 은혜의 놀라움을 보여 줍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사람들을 소개하면서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모세와 같은 위대한 인물들 사이에 라합의 이름을 기록합니다.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히 11:31). 이 말씀은 믿음이 사람의 과거와 신분을 넘어 하나님의 긍휼 안에서 새롭게 시작될 수 있음을 증언합니다.

라합은 여리고 성에 살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의 혈통에 속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언약 백성의 가문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율법을 배운 경건한 집안의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그를 “기생”이라고 부릅니다. 이 표현은 그의 삶이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존귀하게 여겨지기 어려운 자리였음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그 라합을 믿음의 사람으로 기록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역설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주목하지 않는 자리에서 믿음을 보시고, 사람이 버린 이름을 은혜로 다시 부르십니다.

라합의 믿음은 소문을 들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여호수아 2장에서 라합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홍해를 마르게 하신 일과 아모리 왕들을 멸하신 일을 들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단지 정보를 들은 것이 아닙니다. 그 소문 속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여리고 사람들도 같은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들도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라합은 두려움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두려움을 믿음으로 바꾸었습니다. 같은 말씀을 들어도 어떤 사람은 완고해지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돌아옵니다. 믿음은 들은 말씀 앞에서 하나님을 인정하는 마음입니다.

라합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했습니다(수 2:11). 이것은 단순한 감탄이 아닙니다. 이방 여인의 입에서 나온 놀라운 신앙고백입니다. 여리고 성은 강한 성이었고, 그 안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과 군사력과 성벽을 의지했습니다. 그러나 라합은 성벽보다 크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는 여리고의 안전보다 하나님의 심판을 더 실제로 받아들였습니다. 믿음은 보이는 성벽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더 크게 보는 것입니다.

라합의 믿음은 행동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는 정탐꾼들을 숨겨 주었고, 그들을 평안히 보내 주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이 그를 믿음의 사람으로 기록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믿음은 마음속의 동의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참된 믿음은 반드시 방향을 바꾸고 선택을 낳습니다. 라합은 자신의 민족과 성읍의 운명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편에 서기로 선택했습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선택은 위험했고, 드러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심을 알았기 때문에 믿음으로 행동했습니다.

라합의 이야기는 믿음과 행함의 관계를 잘 보여 줍니다. 야고보서는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한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말합니다(약 2:25). 이것은 행위가 믿음을 대신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라합의 행동은 그의 믿음이 살아 있음을 드러낸 증거였습니다. 믿음은 뿌리이고, 순종은 열매입니다. 뿌리 없는 열매가 없듯이, 참된 믿음은 반드시 삶의 방향 속에서 드러납니다. 라합은 말로만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위험을 감수하고 하나님 편에 섰습니다.

라합의 믿음에는 붉은 줄의 표지가 있었습니다. 정탐꾼들은 여리고가 무너질 때 라합의 집 창문에 붉은 줄을 매어 두라고 했습니다. 그 붉은 줄은 심판 가운데서 구원을 가리키는 표지가 되었습니다. 라합의 집은 여리고 성 안에 있었지만, 하나님의 긍휼의 표시 아래 있었습니다. 이 장면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떠올리게 합니다. 애굽의 집 문설주에 발린 피가 심판을 넘어가게 한 것처럼, 라합의 창에 매인 붉은 줄은 멸망 가운데서 은혜의 표지가 되었습니다. 성도는 자기 의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표지 아래 피난함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라합의 믿음은 과거가 최종 운명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성경은 그의 과거를 숨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의 과거로 그의 미래를 결정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여리고의 기생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믿음의 여인이 되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마태복음 1장의 족보입니다. 라합은 살몬의 아내가 되었고, 보아스의 어머니가 되었으며, 결국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 안에 들어갑니다. 이것은 은혜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부끄러운 과거를 가진 사람도 구속사의 통로로 삼으실 수 있습니다.

라합의 이야기는 교회가 어떤 시선으로 사람을 보아야 하는지도 가르칩니다. 우리는 때로 사람을 과거로 판단하고, 신분으로 평가하며, 겉모습으로 가능성을 결정하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믿음을 보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예상한 경계 안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리고 성 안에서도 자기 백성을 부르시고, 이방 여인의 입술에서도 참된 고백을 끌어내시며, 멸망의 도시 한가운데서 구원의 집을 세우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누구도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은혜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넓고 깊습니다.

라합의 믿음은 오늘 우리에게 결단을 요구합니다. 그는 여리고와 하나님 사이에서 선택해야 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안전과 하나님의 약속 사이에 서 있습니다. 보이는 성벽을 의지할 것인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신뢰할 것인가를 날마다 선택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지금 가진 것을 붙들라고 말하지만, 믿음은 하나님께 피하라고 말합니다. 여리고의 성벽은 크고 강해 보였지만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보이지 않았지만 이루어졌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편에 서는 것입니다. 라합은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는 많은 것을 알지 못했지만, 자신이 들은 하나님의 소문 앞에서 마음을 열었습니다. 그는 여리고의 운명을 알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했으며, 은혜의 길을 붙들었습니다. 믿음은 언제나 그렇게 시작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께 피하며, 그분의 약속을 따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라합의 믿음은 성도에게 복음의 위로를 줍니다. 우리의 과거가 어두워도 하나님의 은혜는 더 깊습니다. 우리의 이름이 세상에서 부끄럽게 불렸어도, 하나님은 믿음 안에서 새 이름을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 있는 자리가 여리고처럼 무너질 자리라 해도, 하나님의 은혜의 표지 아래 피하면 살 수 있습니다. 라합은 심판의 성읍 안에서 구원을 얻었고, 부끄러운 이름에서 믿음의 이름으로 옮겨졌으며, 마침내 그리스도의 족보 안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라합의 믿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은혜는 예상 밖의 사람에게도 임합니다. 믿음은 완벽한 조건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소식을 듣고, 그 하나님께 마음을 돌이키며, 그분의 약속에 자신의 생명을 맡기는 데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라합을 구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오늘도 무너질 성읍 가운데서 자기 백성을 부르시고, 붉은 줄과 같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 피하는 자들을 살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026년 9월 셋째주 주일 오후 찬양 예배 대표기도문

2026년 9월 셋째주 주일 오후 찬양 예배 대표기도문

거룩하시고 은혜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2026년 9월 셋째 주일 오후 찬양 예배로 다시 하나님 앞에 모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오전 예배 가운데 말씀으로 우리의 심령을 깨우시고, 오후의 이 시간에는 찬양과 기도로 하나님을 높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여름의 뜨거운 시간이 물러가고 가을의 문턱에 서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계절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은혜로 우리를 붙드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아버지,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만물을 말씀으로 붙드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높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난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십자가와 부활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음을 고백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굳은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찬양이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구속받은 백성의 믿음의 고백이 되게 하옵소서.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의 죄와 허물을 고백합니다.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마음은 세상의 염려에 흩어질 때가 많았습니다. 찬양은 입술에 머물렀고, 말씀은 귀에만 머물렀으며, 순종은 삶으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감사해야 할 자리에서 불평했고, 기도해야 할 시간에 근심했으며, 사랑해야 할 사람을 판단했습니다. 우리의 형식적인 예배와 식어진 사랑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하게 하시고, 성령으로 새롭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9월의 환절기 가운데 성도들의 건강을 지켜 주옵소서. 여름의 피로가 남아 있는 연로하신 성도들에게 강건함을 주시고, 병상에 있는 성도들에게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일터와 가정에서 무거운 책임을 감당하는 성도들에게 새 힘을 주시고, 경제적 어려움과 관계의 아픔 가운데 있는 가정들에는 하늘의 위로와 평안을 더하여 주옵소서. 다가오는 명절을 앞두고 오고 가는 길과 만남의 자리도 주님의 손으로 지켜 주옵소서.

새 학기의 흐름 속에 있는 자녀들과 청년들을 축복하여 주옵소서. 배움의 자리에서 지혜와 집중력을 허락하시고, 좋은 만남과 바른 습관을 주옵소서. 세상의 가치관과 비교의 문화 속에서도 믿음의 중심을 잃지 않게 하시며,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과 정체성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감옥에서도 찬송하던 바울과 실라처럼, 우리의 다음 세대도 환경에 눌리지 않고 하나님을 높이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나게 하옵소서.

은혜로우신 하나님,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하신 말씀처럼 우리의 모든 호흡이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되게 하옵소서. 기쁠 때만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길이 막힐 때에도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시고, 풍성할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기다림의 시간에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고백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가정과 일터와 교회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의 제단이 되게 하옵소서.

오늘 드리는 찬양 예배를 기쁘게 받아 주옵소서. 찬양대와 찬양팀과 반주자들의 섬김을 기억하여 주시고, 모든 소리와 악기와 마음이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제사가 되게 하옵소서. 회중의 찬양 가운데 굳어진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낙심한 영혼이 다시 일어서게 하옵소서.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께 성령의 충만함을 허락하시고, 찬양으로 열린 마음이 말씀 앞에서 순종의 결단으로 이어지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를 붙들어 주옵소서. 하반기 사역이 이어지는 이때에 예배가 회복되고, 말씀의 권위가 굳게 세워지며, 기도의 불이 꺼지지 않게 하옵소서. 교회학교와 청년부, 목장과 구역, 각 기관과 부서 위에 은혜를 부어 주시고, 맡겨진 자리에서 기쁨으로 섬기게 하옵소서. 성도들 사이에 사랑과 화목을 더하시고, 서로의 연약함을 판단하기보다 품고 기도하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이 나라와 민족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위정자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백성을 섬기는 지혜를 주시고, 이 땅에 정직과 공의와 생명을 귀히 여기는 마음이 회복되게 하옵소서. 한국 교회가 먼저 회개하고 거룩과 사랑을 회복하여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서게 하시며, 다음 세대가 복음의 진리 위에 든든히 세워지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남은 9월과 새로 시작되는 한 주간을 하나님 손에 맡깁니다. 우리의 찬양이 예배당 안에서 끝나지 않고 가정과 일터와 관계 속에서 계속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산 제사가 되게 하시고, 구속받은 백성답게 감사와 순종과 소망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 드리며,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6년 7월 12일 일요일

노아의 믿음, 보이지 않는 심판을 준비하는 사람

 

노아의 믿음, 보이지 않는 심판을 준비하는 사람

  • 본문: 창세기 6:5-22 / 히브리서 11:7 / 베드로후서 2:5

서론: 믿음은 보이지 않는 말씀 앞에서 현실을 다시 해석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눈에 보이는 현실만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아직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 실제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세상은 보이는 것을 현실이라 부릅니다. 숫자, 성과, 분위기, 여론, 시대의 흐름을 현실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른 현실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 참된 현실입니다. 아직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어도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면 그것은 이미 가장 확실한 미래입니다.

노아는 바로 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는 비가 오기 전 방주를 지었습니다. 홍수가 보이기 전 심판을 준비했습니다. 세상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며 평상시처럼 살아갈 때, 그는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 움직였습니다. 그의 믿음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나무를 베고, 방주를 짓고, 가족을 이끌고, 긴 세월 조롱 속에서도 순종하는 실제적 믿음이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 한 문장 안에 노아의 믿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대해 하나님의 경고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했습니다.

오늘 설교의 중심은 이것입니다. 노아의 믿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움과 경외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에 따라 오늘의 삶을 준비하는 순종의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방주보다 더 크신 구원의 방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됩니다.

1. 노아의 시대는 죄가 일상이 된 시대였습니다

창세기 6장은 노아의 시대를 매우 어둡게 묘사합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이 말씀은 인간의 죄가 단순히 몇몇 행동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보여 줍니다. 죄는 세상에 가득했고, 인간의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습니다. 생각의 계획이 항상 악했습니다. 죄는 사건이 아니라 분위기가 되었고, 일탈이 아니라 문화가 되었습니다.

죄가 무서운 이유는 반복되면 익숙해지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부끄럽던 것이 나중에는 자연스러워지고, 처음에는 두렵던 것이 나중에는 당연해집니다. 노아의 시대는 죄가 일상이 된 시대였습니다. 폭력이 가득했고, 부패가 깊어졌으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심판이 가까워지는 줄 알지 못한 채 평범한 일상을 살았습니다.

예수님도 노아의 때를 언급하셨습니다. 사람들이 홍수 전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다가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했다고 하셨습니다. 문제는 먹고 마시고 결혼하는 일 자체가 죄라는 뜻이 아닙니다. 문제는 하나님 없이 일상에 갇힌 삶입니다. 심판의 경고 앞에서도 아무 일 없는 듯 살아가는 무감각입니다.

노아의 시대는 특별히 타락한 고대의 한 시대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잊은 모든 시대의 초상입니다. 인간은 문명을 세우고 도시를 만들고 제도를 발전시키지만, 하나님을 떠난 마음은 결국 폭력과 교만과 부패로 기울어집니다. 그래서 노아의 시대는 오늘 우리의 시대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시대를 무조건 따라가지 않습니다. 모두가 괜찮다고 말해도 하나님이 죄라 하시면 죄로 봅니다. 모두가 자연스럽다고 말해도 하나님이 심판을 말씀하시면 두려움으로 듣습니다. 믿음은 시대의 분위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신뢰하는 것입니다.

2. 노아는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입은 사람이었습니다

창세기 6장 8절은 어두운 심판의 문장들 사이에서 빛처럼 나타납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이 말씀은 노아 이야기를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노아가 의인이었기 때문에 은혜를 얻은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성경의 흐름은 더 깊습니다. 노아의 의로움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는 자기 힘으로 시대를 이긴 영웅이 아니라,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성경은 이어서 노아를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고 말하고,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증언합니다. 이 표현은 에녹과 연결됩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듯이 노아도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그러나 노아의 동행은 더 어두운 시대 속에서 드러났습니다. 그는 부패한 세대 한가운데서 하나님 앞에 살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의 중요한 원리를 배웁니다. 믿음은 은혜에서 시작됩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던 것도 은혜입니다. 심판의 경고를 가볍게 넘기지 않은 것도 은혜입니다. 방주를 지을 힘과 인내를 얻은 것도 은혜입니다. 시대가 모두 한 방향으로 흘러갈 때, 혼자 다른 방향으로 설 수 있었던 것도 은혜입니다.

우리는 노아를 보며 “나도 노아처럼 강한 사람이 되어야지”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먼저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 나도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은혜 없이는 시대를 이길 수 없습니다. 은혜 없이는 죄를 분별할 수 없습니다. 은혜 없이는 말씀을 붙들 수 없습니다. 은혜 없이는 조롱 속에서 순종할 수 없습니다.

노아의 믿음은 그의 강인한 성품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붙드신 은혜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믿음의 길을 걸을 때 자기 결심만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 이 시대 속에서 제 마음을 지켜 주십시오. 제가 말씀을 가볍게 듣지 않게 하십시오. 보이지 않는 주님의 약속과 경고 앞에서 깨어 있게 하십시오.”

3.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을 믿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7절은 노아가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노아 믿음의 핵심입니다. 홍수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하늘은 여전히 평온했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일상을 살고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증거만 놓고 보면 노아의 행동은 어리석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준비했습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보이는 현실을 다시 해석하는 능력입니다. 믿음 없는 사람은 보이는 현실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보이지 않는 심판, 보이지 않는 약속, 보이지 않는 영원을 현실보다 더 확실하게 붙듭니다.

노아의 방주는 믿음의 물질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믿음은 마음속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방주는 그의 믿음이 나무와 역청과 치수와 노동으로 나타난 결과였습니다. 믿음은 추상적 관념이 아닙니다. 참된 믿음은 언제나 순종의 형태를 가집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생각만 하지 않았습니다. 감동만 받지 않았습니다. 그는 방주를 지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믿음도 물어야 합니다. 내 믿음은 어떤 순종으로 나타나고 있습니까?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뒤 무엇을 짓고 있습니까? 가정을 말씀 위에 짓고 있습니까? 인격을 진리 위에 짓고 있습니까? 교회를 복음 위에 짓고 있습니까? 삶의 선택을 하나님 나라의 가치 위에 짓고 있습니까?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기 때문에 보이는 삶을 바꾸는 것입니다. 영원을 믿기 때문에 오늘의 시간을 다르게 사용합니다. 심판을 믿기 때문에 죄와 타협하지 않습니다. 구원을 믿기 때문에 세상의 조롱 앞에서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노아의 믿음은 바로 그런 믿음이었습니다.

4. 노아의 순종은 오래 지속된 순종이었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지은 일은 하루아침에 끝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긴 시간의 순종이었습니다. 방주의 규모는 거대했고, 그 작업은 고된 노동이었습니다. 더구나 그는 세상의 지지와 박수를 받으며 일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비가 오기 전 방주를 짓는 사람은 시대의 눈에는 비현실적인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계속 지었습니다. 여기에서 믿음의 또 다른 중요한 성격이 드러납니다. 믿음은 시작보다 지속에서 더 깊이 검증됩니다. 처음에는 누구나 감동을 받을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누구나 결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길어지고, 결과가 보이지 않고, 사람들의 조롱이 계속되고, 마음이 지칠 때에도 계속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노아의 순종은 정확한 순종이기도 했습니다. 창세기 6장 2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그는 자기 방식으로 방주를 짓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했습니다. 믿음은 열심만이 아니라 말씀에 대한 복종입니다. 자기 생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신 방식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믿음의 이름으로 자기 뜻을 밀어붙입니다. 하나님을 위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자기 욕망을 이루려 합니다. 그러나 노아의 믿음은 다릅니다. 그는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다 준행했습니다. 이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말씀을 고치지 않고, 말씀을 축소하지 않고, 말씀을 자기 편의에 맞게 바꾸지 않는 것입니다.

성도에게도 오래 지속되는 순종이 필요합니다. 한 번의 열심보다 중요한 것은 오래된 충성입니다. 한 번의 눈물보다 중요한 것은 매일의 순종입니다. 믿음은 방주를 짓듯이 조금씩 쌓아 가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의 나무를 놓고, 내일 또 하나의 나무를 놓고, 아무 변화가 없어 보여도 말씀을 따라 계속 짓는 것입니다.

5. 방주는 심판 속에 마련된 구원의 은혜였습니다

노아의 방주는 단순한 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심판 속에 마련된 하나님의 구원의 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심판하셨습니다. 홍수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공의가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방주를 명하셨습니다. 심판을 말씀하신 하나님이 구원의 길도 마련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구조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자기 백성을 위하여 피할 길을 주십니다. 방주 안에 들어간 자들은 물 가운데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방주 밖의 물은 심판의 물이었지만, 방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그 물은 구원의 경계를 이루었습니다.

베드로전서는 노아의 홍수를 세례와 연결하여 말합니다. 이것은 물 자체가 사람을 구원한다는 뜻이 아니라, 심판을 통과하여 새 생명으로 들어가는 구원의 표지를 말합니다. 방주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그림자입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이 방주 안에서 구원을 얻었듯이,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심판을 피하고 생명을 얻습니다.

중요한 것은 방주가 하나였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피난처를 만들 수 없었습니다. 높은 산도, 튼튼한 집도, 인간의 지혜도 홍수 앞에서는 구원이 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구원의 길은 방주였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구원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도덕성도, 종교성도, 지식도, 업적도 마지막 심판 앞에서 방주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방주이십니다.

그러므로 노아의 믿음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이끕니다. 방주를 바라보며 우리는 십자가를 보아야 합니다. 방주 안으로 들어가는 노아의 가족을 보며 우리는 그리스도 안으로 피하는 성도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구원은 바깥에서 방주를 구경하는 자에게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방주 안에 들어간 자에게 주어졌습니다.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를 좋은 가르침으로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분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분 안에 거해야 합니다.

결론: 오늘의 삶으로 방주를 지으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노아의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아직 오지 않은 심판을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실제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했습니다. 그는 시대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오래 순종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노아처럼 물리적인 방주를 짓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오늘의 삶 속에서 믿음의 방주를 지어야 합니다. 말씀 위에 가정을 세우고, 기도 위에 하루를 세우고, 거룩함 위에 습관을 세우고, 복음 위에 인생의 방향을 세워야 합니다. 세상은 지금 당장 보이는 것을 따라 살라고 말하지만, 믿음은 영원을 준비하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더 편안한 삶만 준비하고 있습니까? 더 많은 소유만 준비하고 있습니까? 더 높은 자리를 준비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 앞에 설 날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노아의 시대 사람들은 홍수가 올 때까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일상을 살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깨어 있었습니다. 믿음은 깨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가볍게 듣지 않는 것입니다. 죄를 시대의 유행이라 부르지 않고, 심판을 낡은 교리라 여기지 않으며, 구원을 가장 시급한 은혜로 붙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노아의 믿음은 경외의 믿음이었습니다. 경외는 하나님을 무서워하기만 하는 감정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떨며,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를 붙드는 마음입니다. 노아는 심판을 두려워했지만, 더 깊이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방주를 지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참 방주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심판은 마지막 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심판의 물결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방주를 찾지 말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사람답게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오늘의 삶을 바꾸는 것입니다. 노아처럼 오래 순종하십시오. 노아처럼 말씀대로 준비하십시오. 노아처럼 시대의 조롱보다 하나님의 경고를 더 무겁게 여기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십시오. 그분만이 우리의 구원이시며, 심판의 날에도 흔들리지 않는 참 방주이십니다.

오늘 우리의 믿음이 노아의 믿음처럼 되기를 바랍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로 믿는 믿음, 세상의 흐름 속에서도 말씀대로 준비하는 믿음, 오래 지속되는 순종의 믿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은혜를 붙드는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믿음으로 오늘의 삶에 방주를 짓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신앙칼럼] 모세의 믿음, 세상의 보화보다 하나님을 택하다

 

모세의 믿음, 세상의 보화보다 하나님을 택하다

모세의 믿음은 선택의 믿음입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광야로 밀려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하는 길을 믿음으로 선택한 사람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모세의 믿음을 매우 선명하게 증언합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였다”고 말합니다(히 11:24-25). 이 말씀은 믿음이 단순한 마음의 위로가 아니라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영적 분별임을 보여 줍니다.

모세는 애굽 왕궁에서 자랐습니다. 그는 당시 세계 강대국의 중심에서 교육받고, 권력과 문화와 부요함을 가까이 누릴 수 있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불린다는 것은 단순한 신분의 호칭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안정과 명예와 미래를 보장하는 이름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 이름을 믿음으로 거절했습니다. 믿음은 때로 세상이 부러워하는 이름을 내려놓는 용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정체성을 붙들기 위해 세상이 붙여 준 화려한 이름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선택은 인간적으로 보면 손해였습니다. 애굽에 남아 있었다면 그는 더 편안하고, 더 안전하고, 더 높아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길을 택했습니다. 여기서 믿음의 본질이 드러납니다. 믿음은 편한 길을 찾는 기술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뜻이 있는 길을 더 귀하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성도는 언제나 쉬운 길과 옳은 길 사이에 섭니다. 믿음은 쉬운 길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길을 선택하게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모세가 “잠시 죄악의 낙”을 거절했다고 말합니다. 죄는 늘 어느 정도의 즐거움을 약속합니다. 그것이 전혀 달콤하지 않다면 사람은 죄에 끌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즐거움이 “잠시”라고 말합니다. 죄의 낙은 순간적이고,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합니다. 믿음은 이 차이를 아는 눈입니다. 믿음은 지금 당장 달콤해 보이는 것을 붙잡기보다, 영원히 남을 하나님의 뜻을 붙드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히 11:26). 이것은 놀라운 표현입니다. 모세는 그리스도의 이름이 역사 속에 분명히 드러나기 오래전 사람이지만, 히브리서는 그의 고난을 그리스도를 위한 수모로 해석합니다. 이는 구속사의 깊은 통일성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길은 결국 그리스도의 길과 연결됩니다. 모세가 선택한 길은 단순한 민족적 연대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참여하는 믿음의 길이었습니다.

믿음은 가치의 질서를 바꿉니다. 세상은 보화를 크게 보고 수모를 작게 봅니다. 그러나 모세는 반대로 보았습니다. 그는 애굽의 보화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하는 고난을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 이것은 믿음이 주는 새로운 평가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길이 손해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에게는 하나님 없는 풍요가 가난이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고난이 부요입니다. 참된 부요는 소유의 양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결정됩니다.

모세의 믿음은 보상을 바라보는 믿음이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그가 “상 주심을 바라보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상은 단순히 땅의 보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시는 궁극적 인정과 영원한 기업입니다. 성도는 사람의 박수만 바라보며 살 수 없습니다. 사람의 박수는 쉽게 사라지고, 세상의 평가는 자주 흔들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삶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마지막 평가를 현재의 선택 안으로 끌어오는 능력입니다.

모세는 또한 두려움을 이기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않고 애굽을 떠났습니다(히 11:27). 물론 모세가 처음부터 전혀 흔들리지 않은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출애굽기에서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말했고,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주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두려움이 전혀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믿음은 두려움보다 하나님을 더 크게 보는 것입니다. 모세는 눈에 보이는 왕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고, 더 신뢰했습니다.

히브리서는 모세가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다”고 말합니다. 이 표현은 믿음의 깊은 비밀을 보여 줍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처럼 사는 삶입니다. 육신의 눈에는 바로의 권력이 크게 보였고, 애굽의 군대가 두렵게 보였으며, 광야의 길이 막막하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에는 하나님이 더 실제였습니다. 성도는 보이는 현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보이는 현실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모세의 믿음은 유월절을 지키는 순종으로도 나타났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그가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행하였다고 말합니다(히 11:28). 유월절 어린양의 피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표합니다. 애굽의 장자를 치는 심판 속에서 이스라엘이 보호받은 것은 그들의 도덕적 우월함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문설주에 발린 피 때문이었습니다. 구원은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마련하신 대속의 은혜 위에 세워집니다. 모세의 믿음은 이 은혜의 표지를 붙드는 믿음이었습니다.

홍해를 건넌 사건도 믿음의 절정입니다. 이스라엘은 앞에는 바다, 뒤에는 애굽 군대가 있는 막다른 자리에 섰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내셨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이스라엘이 믿음으로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다고 말합니다(히 11:29). 믿음은 언제나 막다른 길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배웁니다. 사람이 끝났다고 말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은 시작하십니다. 성도는 길이 보이지 않아도 길을 여시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모세의 믿음은 오늘 우리에게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무엇을 더 큰 재물로 여기고 있습니까. 세상의 인정입니까, 하나님의 뜻입니까. 잠시 죄악의 낙입니까, 영원한 하나님의 상급입니까. 애굽의 보화입니까,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입니까. 믿음은 결국 무엇을 더 귀하게 여기느냐의 문제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귀하게 여기는 것을 향해 인생을 사용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가장 귀하게 여기기에 하나님께 자신의 시간을 드리고, 선택을 드리고, 삶을 드립니다.

성도는 모세처럼 날마다 선택의 자리에 섭니다. 세상은 더 편한 길, 더 화려한 길, 더 인정받는 길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믿음은 우리에게 더 깊은 길을 보게 합니다. 그 길은 때로 좁고 외로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길이라면 광야도 은혜의 학교가 되고, 홍해 앞의 막막함도 구원의 무대가 됩니다.

모세의 믿음은 세상의 보화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든 믿음입니다. 보이는 왕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더 두려워한 믿음입니다. 잠시 누리는 낙보다 영원한 상급을 더 바라본 믿음입니다. 오늘 성도에게 필요한 믿음도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의 화려함 앞에서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다운 정체성을 붙들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을 가장 큰 영광으로 여기는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분을 붙든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언제나 편안한 길을 걷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모세가 애굽의 보화보다 그리스도의 수모를 더 큰 재물로 여겼듯이, 성도는 오늘도 세상의 잠시 빛나는 것보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더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으로 사는 삶입니다.

2026년 10월 넷째 주일 낮예배 대표기도문

  2026년 10월 넷째 주일 낮예배 대표기도문 거룩하시고 영원히 변함없으신 하나님 아버지, 결실의 계절 10월 넷째 주일에 저희를 주님의 전으로 불러 모아 예배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들녘의 곡식이 익고 나뭇잎이 제 빛깔을 드러낸 뒤 조용히 땅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