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15일 수요일

[신앙칼럼] 다윗의 믿음, 보이는 거인보다 크신 하나님을 보다

다윗의 믿음, 보이는 거인보다 크신 하나님을 보다

다윗의 믿음은 보이는 현실을 부정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그는 골리앗이 크다는 사실을 몰랐던 사람이 아닙니다. 블레셋 장수의 키와 갑옷과 창과 위협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것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믿음은 현실을 작게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크게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사람들을 말하면서 다윗의 이름을 함께 기록합니다(히 11:32). 다윗의 믿음은 강한 사람의 자신감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담대함입니다.

사무엘상 17장의 전쟁터는 믿음과 두려움이 선명하게 갈라지는 자리입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골리앗의 소리를 들을 때마다 두려워 떨었습니다. 골리앗은 단지 키 큰 장수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신앙을 조롱하는 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했고, 이스라엘의 마음을 공포로 묶었습니다. 두려움은 언제나 현실을 과장하고 하나님을 작게 만듭니다. 이스라엘은 골리앗을 보았지만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같은 전쟁터에서 다른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골리앗의 크기보다 하나님의 이름을 보았습니다. 다윗은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고 말했습니다(삼상 17:26). 이 말은 다윗의 믿음이 어디에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다윗에게 문제의 핵심은 군사력의 차이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당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자기 안전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더 크게 여깁니다.

다윗은 갑자기 믿음의 사람이 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들판에서 양을 치며 하나님을 배웠습니다. 사자와 곰이 양 떼를 해치려 할 때,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건져 주셨음을 경험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 앞에서 과거의 은혜를 기억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삼상 17:37). 믿음은 기억하는 힘입니다. 하나님께서 어제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은 오늘의 두려움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다윗의 믿음은 세상의 방식과 달랐습니다. 사울은 다윗에게 자신의 군복과 투구와 갑옷을 입혔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것을 벗었습니다. 그는 익숙하지 않은 갑옷으로 싸우지 않았습니다. 대신 물매와 돌 다섯 개를 들었습니다. 이것은 무모함이 아닙니다. 다윗은 자신이 의지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믿음은 세상이 강하다고 여기는 것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자리와 방식 안에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골리앗에게 나아가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 17:45). 이 고백은 다윗의 믿음의 절정입니다. 골리앗은 무기를 의지했고,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했습니다. 골리앗은 자기 힘을 자랑했고, 다윗은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했습니다. 믿음은 결국 의지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가진 것입니까, 실력입니까, 사람의 인정입니까, 아니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이름입니까.

다윗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전쟁의 주인이심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삼상 17:47). 이 말은 성도의 모든 싸움에도 적용됩니다. 우리의 삶에는 여러 골리앗이 있습니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 오래된 두려움, 관계의 상처, 경제적 불안, 죄와 습관의 싸움, 미래에 대한 막막함이 우리 앞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그 싸움의 최종 주인이 자신이 아님을 압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 힘만 계산하다가 낙심하지 않습니다.

다윗의 믿음은 작은 순종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그는 왕궁의 장군으로 전쟁터에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형들에게 음식을 전하러 온 소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작은 걸음을 통해 큰 믿음의 무대를 여셨습니다. 성도는 일상의 작은 순종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양을 치던 들판에서 다윗을 준비시키셨고, 심부름의 길 위에서 골리앗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믿음의 큰 사건은 종종 평범한 순종의 길 위에서 시작됩니다.

다윗의 믿음은 승리 이후에도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쓰러뜨렸지만, 그의 인생 전체가 곧장 평탄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후 사울에게 쫓기고, 광야를 지나며, 수많은 기다림과 고난을 겪었습니다. 믿음은 한 번의 승리로 모든 문제가 끝난다는 보장이 아닙니다. 믿음은 승리의 날에도 교만하지 않고, 광야의 날에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삶입니다. 다윗의 믿음은 골리앗 앞에서만이 아니라 엔게디 굴과 광야의 침묵 속에서도 시험받았습니다.

다윗은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훗날 큰 죄를 범했고, 깊은 책망과 징계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의 실패를 숨기지 않으면서도 그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이것은 다윗이 죄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죄를 깨달았을 때 하나님 앞에 무너질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넘어지지 않는 완전함이 아닙니다. 믿음은 넘어졌을 때 다시 하나님께 돌아가는 회개의 마음입니다. 다윗의 위대함은 자기 의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긍휼을 붙드는 데 있었습니다.

다윗의 믿음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합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었지만, 그는 더 크신 왕의 그림자였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씨를 통해 영원한 왕국을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그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사건은 단순히 작은 소년이 큰 장수를 이긴 감동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가 백성을 대신하여 원수를 무너뜨리는 구속사의 표지입니다. 참된 다윗이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다윗처럼 용감해져야 한다는 도덕적 교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먼저 다윗보다 크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골리앗을 이기는 영웅이기 전에, 그리스도의 승리 안에 피난한 백성입니다. 우리가 담대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안에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미 가장 큰 원수인 죄와 죽음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용기는 자기 확신에서 나오지 않고 그리스도의 승리에서 나옵니다.

오늘도 우리 앞에는 크고 무거운 문제들이 서 있습니다. 어떤 문제는 골리앗처럼 날마다 우리를 조롱합니다. “너는 못 한다. 너는 안 된다. 너는 무너질 것이다.” 그러나 믿음은 그 소리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듣는 것입니다. 믿음은 두려움의 크기를 재는 대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보이는 거인을 부정하지 않지만, 그 거인보다 크신 하나님을 더 분명히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믿음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골리앗을 보되 골리앗만 보지 말아야 합니다. 현실을 직면하되 현실에 갇히지 말아야 합니다. 두려움을 느끼되 두려움에게 인생의 왕좌를 내어 주지 말아야 합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해 있습니다. 성도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늘의 싸움 앞에 섭니다. 그 이름이 우리의 방패이며, 우리의 용기이며, 우리의 승리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거인이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거인 앞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물매와 돌을 들었지만, 그의 참된 무기는 하나님의 이름이었습니다. 오늘 성도에게도 같은 믿음이 필요합니다. 보이는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 들리는 위협보다 신실하신 하나님, 우리의 약함보다 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으로 성도는 오늘도 고백합니다.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갑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입니다.”

2026년 7월 14일 화요일

아브라함의 믿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나다

 

아브라함의 믿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나다

  • 본문: 창세기 12:1-9 / 히브리서 11:8-10 / 로마서 4:18-22

서론: 믿음은 익숙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향해 떠나는 것입니다

믿음은 언제나 길 위에서 시작됩니다. 믿음은 안전한 자리에서 하나님을 분석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익숙한 자리를 떠나는 일입니다. 성경의 믿음은 머릿속의 동의로 끝나지 않습니다. 믿음은 발걸음을 요구합니다. 믿음은 마음의 방향을 바꾸고, 삶의 자리를 옮기고, 익숙한 세계를 내려놓게 합니다.

아브라함은 그런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는 성경에서 “믿음의 조상”이라 불릴 만큼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갈대아 우르와 하란이라는 익숙한 세계 안에서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도 집이 있었고, 친족이 있었고, 문화가 있었고, 안정된 삶의 질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셨습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이 말씀은 아브라함의 인생을 흔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목적지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지도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과정을 미리 알려 주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말씀하셨습니다. “떠나라.” 그리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오늘 설교의 중심은 이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모든 것을 알고 떠난 믿음이 아니라, 말씀하신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에 갈 바를 알지 못하고도 순종한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결국 참된 약속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됩니다.

1.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의 부르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인간의 결심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서 시작됩니다. 창세기 12장은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믿음의 출발점은 아브라함의 종교적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먼저 하나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이것은 성경 전체의 중요한 원리입니다. 믿음은 인간이 하나님을 향해 쌓아 올린 사다리가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실 때 시작되는 응답입니다. 아담이 숨었을 때 하나님이 찾아오셨고, 노아가 살던 시대가 부패했을 때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셨으며, 아브라함이 이방 땅에 살고 있을 때 하나님이 그를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자기 신앙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자랑거리가 아니라 은혜의 흔적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붙든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먼저 나를 붙드셨습니다. 내가 말씀을 선택한 것 같지만, 사실은 말씀이 먼저 내 인생을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떠남은 믿음의 첫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그 떠남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삶의 주인을 바꾸는 사건이었습니다.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은 단순한 장소가 아닙니다. 그것은 정체성, 안전, 보호, 관계, 과거의 세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익숙한 의지처를 내려놓고 하나님 자신을 의지하라고 부르셨습니다.

믿음은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너는 무엇을 의지하고 사느냐?”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가지고 있습니다. 돈일 수 있고, 사람의 인정일 수 있고, 과거의 경험일 수 있고, 지식일 수 있고, 안정된 환경일 수 있습니다. 그것들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하나님보다 더 깊은 의지처가 될 때,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 자리에서 떠나라. 나를 신뢰하라.”

2.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순종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8절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이 말씀에서 가장 인상적인 표현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입니다.

우리는 대개 모든 것을 알고 나서 움직이고 싶어 합니다. 목적지가 분명해야 하고, 과정이 계산되어야 하고, 손해가 없어야 하며, 결과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길은 언제나 모든 정보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최종 목적지보다 먼저 하나님 자신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은 무지한 모험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아무 근거 없이 떠난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떠났습니다. 목적지는 몰랐지만 말씀하신 분은 알았습니다. 길은 몰랐지만 부르신 하나님은 신실하심을 믿었습니다. 믿음은 미래를 다 아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붙드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우리는 내일을 모릅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어떤 문이 열리고 어떤 문이 닫힐지, 어떤 기쁨과 슬픔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말씀하신 하나님을 압니다. 우리를 부르신 분이 신실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 선하시며, 우리를 끝까지 버리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즉각적이었습니다. 창세기 12장 4절은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라고 말합니다. 여기에는 믿음의 단순함이 있습니다. 그는 많은 변명을 늘어놓지 않았습니다. 모든 가능성을 계산한 뒤 움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말씀을 들었고, 말씀을 따라갔습니다.

오늘 우리의 믿음이 약해지는 이유 중 하나는 말씀보다 계산을 더 오래 붙들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이미 들었는데, 우리는 계속 계산합니다. 순종해야 할 것을 알면서도 더 안전한 조건을 기다립니다. 용서해야 할 것을 알면서도 상대가 먼저 바뀌기를 기다립니다. 내려놓아야 할 것을 알면서도 손해가 없을 때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믿음은 계산이 끝난 뒤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 계산보다 더 크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시작됩니다.

3. 아브라함의 믿음은 약속을 붙드는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떠나라고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약속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아브라함의 믿음은 막연한 종교심이 아니라 약속을 붙드는 믿음이었습니다.

성경의 믿음은 언제나 하나님의 약속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믿음은 자기 소원을 강하게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붙든 것은 자기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약속은 처음부터 현실과 충돌했습니다. 하나님은 큰 민족을 약속하셨지만, 아브라함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땅을 약속하셨지만, 그는 가나안 땅에서 장막에 거하는 나그네였습니다. 복의 근원이 되리라 하셨지만, 그의 현실은 불안정한 이주민의 삶이었습니다. 약속은 컸지만 현실은 작았습니다. 약속은 영광스러웠지만 삶은 흔들렸습니다.

여기서 믿음의 훈련이 시작됩니다. 믿음은 약속과 현실 사이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현실이 약속을 부정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믿음은 약속하신 하나님을 붙듭니다. 로마서 4장은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고 말합니다. 그의 몸은 늙었고 사라의 태도 죽은 것 같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졌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의 믿음이 언제나 흔들림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갔고, 두려움 때문에 아내를 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약속을 기다리지 못해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의 실패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더 크게 보여 줍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완벽한 믿음이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다시 약속으로 돌아오는 믿음이었습니다.

이 점에서 아브라함은 우리에게 큰 위로를 줍니다. 믿음의 조상도 흔들렸습니다. 믿음의 조상도 두려워했습니다. 믿음의 조상도 자기 방식으로 약속을 이루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말씀하셨고, 다시 약속을 확인하셨고, 결국 그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4. 아브라함은 장막에 살며 더 나은 본향을 바라보았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에 거할 때 장막에 거했다고 말합니다. 장막은 임시 거처입니다. 그는 가나안 땅을 약속받았지만, 그 땅에서 성을 쌓고 정착한 사람이 아니라 나그네처럼 살았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단지 땅의 소유에 머물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히브리서 11장 10절은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다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눈앞의 땅만 바라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비하실 더 나은 본향을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믿음은 땅의 약속을 통해 하늘의 본향으로 나아갔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삽니다. 나그네라는 말은 세상을 미워하며 산다는 뜻이 아닙니다. 책임 없이 산다는 뜻도 아닙니다. 나그네는 목적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이 땅의 삶을 소중히 살지만, 이 땅을 최종 목적지로 삼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장막에 살면서도 제단을 쌓았습니다. 창세기 12장을 보면 그가 세겜에 이르렀을 때 여호와께 제단을 쌓았고, 벧엘 동쪽 산에서도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의 모습입니다. 세상 속에서는 장막을 치고, 하나님 앞에서는 제단을 쌓습니다. 삶은 임시적이지만 예배는 영원한 방향을 가집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장막과 제단이 필요합니다. 장막은 이 세상이 영원하지 않다는 고백입니다. 제단은 하나님이 나의 참 주인이시라는 고백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장막을 성처럼 여기고, 제단을 장식처럼 여길 때입니다. 이 땅의 집과 소유와 성공은 영원한 성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린 예배와 순종은 영원한 나라와 연결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우리를 나그네 신앙으로 부릅니다. 너무 움켜쥐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땅의 흔들림이 우리의 최종 운명을 결정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지으실 성이 있습니다. 성도는 그 성을 바라보며 오늘의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5. 아브라함의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설교할 때 반드시 그리스도께 이르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단지 한 개인의 성공 이야기가 아닙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는 약속은 구속사의 큰 흐름을 엽니다. 이 약속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이어지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됩니다.

갈라디아서 3장은 아브라함의 자손을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와 연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복이 모든 민족에게 흘러가게 하시는 분입니다. 아브라함은 복의 통로로 부름 받았지만, 그 복의 실체는 그리스도입니다. 죄인이 의롭다 하심을 얻고, 하나님과 화목하며, 성령의 약속을 받는 모든 은혜가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집니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뜻을 아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갔지만,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장막에 거하며 더 나은 본향을 바라보았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그 본향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자기 몸을 찢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믿음은 그 자체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도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지만, 그 의로움의 근거는 결국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고, 그 믿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의미를 얻습니다.

오늘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섭니다. 그러나 이 믿음은 단순히 입술의 고백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참된 믿음은 아브라함처럼 떠나게 합니다. 죄의 자리에서 떠나고, 자기 의의 자리에서 떠나고,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던 것에서 떠나게 합니다. 그리고 약속을 따라 걷게 합니다.

결론: 말씀을 따라 떠나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의 믿음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나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에 순종했습니다. 그는 미래를 손에 쥐었기 때문에 떠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약속하신 하나님이 신실하심을 믿었기 때문에 떠났습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떠나라.” 이 말씀은 반드시 지리적 이동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죄의 습관에서 떠나라고 하십니다. 오래 붙들고 있던 두려움에서 떠나라고 하십니다. 사람의 인정에 매인 삶에서 떠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던 거짓 안전에서 떠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향해 걸으라고 하십니다.

믿음의 길은 언제나 선명한 지도와 함께 주어지지 않습니다. 때로는 한 걸음 앞만 보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한 걸음 앞만 보여도 말씀하신 하나님을 따라 걷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처럼 갈 바를 다 알지 못해도, 하나님이 부르셨다면 떠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다면 기다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신다면 장막에서도 예배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장막과 같습니다. 영원히 머물 집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도는 장막을 치는 곳마다 제단을 쌓는 사람입니다. 잠시 머무는 삶 속에서도 영원하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이 땅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성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부르시는 길이라면 떠나십시오. 하나님이 약속하신 길이라면 기다리십시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길이라면 낯선 곳에서도 예배하십시오. 믿음은 모든 것을 손에 쥐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붙드신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부르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더 크고 영원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고, 성령 안에서 약속의 백성이 되었으며, 하나님 나라의 본향을 향해 걷는 순례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믿음이 아브라함의 믿음처럼 되기를 바랍니다. 익숙한 자리를 떠나는 믿음, 갈 바를 알지 못해도 말씀을 따라 걷는 믿음, 현실보다 약속을 더 크게 붙드는 믿음, 장막의 삶 속에서도 제단을 쌓는 믿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약속의 완성을 바라보는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믿음으로 오늘도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걷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신앙칼럼] 다윗의 믿음, 보이는 거인보다 크신 하나님을 보다

다윗의 믿음, 보이는 거인보다 크신 하나님을 보다 다윗의 믿음은 보이는 현실을 부정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그는 골리앗이 크다는 사실을 몰랐던 사람이 아닙니다. 블레셋 장수의 키와 갑옷과 창과 위협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것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