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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9일 목요일

[신앙칼럼] 믿음으로 산다는 것, 히브리서 11장을 중심으로

 

믿음으로 산다는 것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막연한 낙관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현실을 모르는 순진함도 아니고, 마음만 강하게 먹으면 모든 일이 잘될 것이라는 자기 확신도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실제보다 더 실제로 붙드는 삶입니다. 눈앞의 상황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더 신뢰하고, 세상의 평가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무겁게 여기며,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하나님의 미래를 오늘의 삶 속에서 미리 살아내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합니다(히 11:1). 여기서 “실상”으로 번역된 말은 헬라어 휘포스타시스(ὑπόστασις)입니다. 이 말은 단순한 생각이나 감정이 아니라, 어떤 것을 든든히 받치고 서게 하는 기초와 확신을 뜻합니다. 믿음은 허공에 걸린 상상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 위에 삶을 세우는 영적 실재입니다. 성도는 아직 눈으로 다 보지 못해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 약속을 붙들고 살아갑니다.

히브리서 11장의 사람들은 모두 완벽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아벨은 죽임을 당했고, 노아는 보이지 않는 심판을 준비했으며,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사라는 늙은 몸으로 약속의 자녀를 기다렸고, 모세는 애굽의 보화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길을 택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삶의 조건이 평탄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불확실함과 기다림과 손해와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믿음은 환경이 좋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신실하시다는 사실에 뿌리내릴 때 자라납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먼저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인정하는 삶입니다. 세상은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가진 것, 이룬 것, 드러난 결과, 사람들의 인정이 인생의 무게를 결정하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보이는 세계가 전부가 아님을 압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약속이 있으며, 하나님의 심판과 상급이 있음을 압니다. 그래서 믿음은 성도의 시선을 바꿉니다. 눈앞의 손해가 전부가 아니고, 현재의 고난이 끝이 아니며, 사람들의 평가가 최종 판결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합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삶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 줍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습니다(히 11:8). 믿음은 언제나 모든 지도를 받은 뒤에 출발하는 삶이 아닙니다. 때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를 붙들고 익숙한 자리를 떠나는 것입니다. 안전해 보이는 계산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인도하실 미래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중요한 것은 목적지의 정보가 아니라 부르신 분의 신실하심이었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기다리는 삶이기도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의 사람들은 약속을 받았으나 그 완성을 다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은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자신들이 이 땅에서는 나그네와 외국인임을 고백했습니다(히 11:13). 이것이 믿음의 깊은 특징입니다. 믿음은 즉각적인 성취만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시간이 인간의 시간보다 깊고 크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성도는 기다림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아직 열매가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씨앗을 땅속에서 자라게 하심을 믿습니다.

또한 믿음은 선택으로 드러납니다.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받기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선택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히 11:24-26). 믿음은 마음속에만 머무는 관념이 아닙니다. 믿음은 무엇을 귀하게 여기고, 무엇을 포기하며,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를 결정하게 합니다. 참된 믿음은 가치의 질서를 바꿉니다. 세상이 크게 여기는 것을 작게 보게 하고, 세상이 작게 여기는 하나님의 뜻을 크게 보게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삶은 언제나 눈에 보이는 승리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기적적인 구원과 승리를 말하면서도 동시에 고문과 조롱과 결박과 옥에 갇힘과 죽음을 말합니다. 어떤 이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고 약속을 받았지만, 어떤 이들은 믿음으로 고난을 견디고 더 좋은 부활을 바라보았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의 믿음은 성공을 보장하는 기술이 아닙니다. 믿음은 어떤 결과 속에서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신뢰하는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을 이용하여 원하는 것을 얻는 삶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 자신을 가장 큰 분깃으로 삼는 삶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께 응답을 구하지만, 응답보다 하나님을 더 신뢰합니다. 길을 열어 주시기를 기도하지만, 길이 늦어질 때에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습니다. 치유를 구하지만, 아픔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붙듭니다. 믿음은 원하는 일이 이루어질 때만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께 마음을 맡기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결국 믿음의 사람들을 소개한 뒤, 히브리서 12장에서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라고 말합니다. 믿음의 최종 대상은 믿음의 영웅들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아벨도, 노아도, 아브라함도, 모세도 우리 믿음의 모범이지만, 그들의 믿음도 결국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참으시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시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성도의 믿음은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흔들리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오늘의 삶을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세우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이 흔들릴 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붙드는 것이고, 길이 분명하지 않을 때 부르신 분의 신실하심을 신뢰하는 것이며, 세상의 보화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더 귀히 여기는 것입니다. 믿음은 성도를 현실 밖으로 도피하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현실 한복판에서 하나님께 속한 사람답게 살게 합니다.

성도는 믿음으로 걷습니다. 때로는 갈 바를 알지 못해도 걷고, 때로는 오래 기다리면서 걷고, 때로는 손해를 감수하며 걷습니다. 그러나 그 걸음은 헛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걷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지 않으십니다. 믿음은 아직 보이지 않는 영광을 오늘 붙드는 손이며,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영원한 하나님께 닻을 내리는 영혼의 고백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성도는 결국 이 고백으로 하루를 살아갑니다. “주님, 제가 다 알지 못해도 주님은 아십니다. 제가 다 보지 못해도 주님은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믿음으로 살겠습니다.”

[신앙칼럼] 아브라함의 믿음

 

아브라함의 믿음

아브라함의 믿음은 완성된 지도를 들고 떠난 사람의 믿음이 아닙니다.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순종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르셨기 때문에 떠난 사람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히 11:8). 이 한 문장 안에 믿음의 깊은 본질이 담겨 있습니다. 믿음은 모든 길을 알고 걷는 것이 아니라, 부르신 하나님을 알고 걷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르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문명과 안정과 익숙함이 있던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익숙한 땅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은 때로 익숙함을 떠나는 데서 시작됩니다. 믿음은 단지 마음속의 동의가 아니라 삶의 방향을 바꾸는 순종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움직였습니다. 그의 믿음은 생각에 머물지 않았고, 발걸음이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이 강조하는 아브라함의 믿음은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그는 목적지를 다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습니다. 사람은 보통 확실한 조건이 있을 때 움직입니다. 손해가 없을 때, 길이 보일 때, 결과가 예측될 때 결단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인간의 계산보다 더 확실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중요한 것은 길의 정보가 아니라, 그 길로 부르신 분의 신실하심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또한 나그네의 믿음입니다. 히브리서는 그가 약속의 땅에 거류하며 이삭과 야곱과 함께 장막에 거했다고 말합니다(히 11:9). 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갔지만 그 땅을 완전히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성읍을 건설한 정착민이 아니라 장막을 치고 걷는 나그네였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단순히 땅의 소유를 향한 믿음이 아니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는 눈앞의 땅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더 큰 약속을 바라보았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0절은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아브라함 믿음의 깊은 중심입니다. 그는 가나안 땅만 바라본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세우실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았습니다. 성도의 믿음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땅에서 살지만 땅이 전부라고 믿지 않습니다. 집을 짓고 일하며 사랑하고 책임을 감당하지만, 우리의 최종 본향은 이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믿음은 성도를 현실에서 도피하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현실 속에서 영원을 바라보며 살게 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기다리는 믿음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자손을 약속하셨지만, 그 약속은 즉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기다림은 믿음을 가장 깊이 시험하는 시간입니다. 약속은 분명한데 현실은 움직이지 않을 때, 하나님의 말씀은 들었는데 상황은 여전히 메마를 때, 성도는 믿음의 밤을 통과합니다. 아브라함도 흔들렸습니다. 그는 언제나 완전한 믿음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연약함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더 크게 이루셨습니다. 믿음은 인간의 완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 위에 세워집니다.

사라는 나이가 많아 아이를 낳을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는 사라가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다”고 말합니다(히 11:11). 믿음은 자기 가능성을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약속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몸은 쇠하였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쇠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능력은 끝났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절망의 자리에서도 하나님께서 새 일을 이루실 수 있음을 붙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에서 가장 깊은 절정은 이삭을 바치는 장면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다”고 말합니다(히 11:17). 이삭은 단순한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약속의 자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의 증거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이삭을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장면은 믿음이 단지 복을 받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문제임을 보여 줍니다. 참된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보다 하나님을 더 붙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했습니다(히 11:19). 이것은 부활 신앙의 씨앗과도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명령이 서로 모순되는 듯 보이는 순간에도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은 모든 질문이 사라진 상태가 아닙니다. 믿음은 이해할 수 없는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선하시며 능하시다는 사실을 놓지 않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결국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은 단지 한 가문의 번성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씨를 통하여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하시겠다는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바라본 약속의 깊은 중심에는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믿음은 단지 고대 족장의 훌륭한 결단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고 그리스도의 날을 멀리서 바라본 믿음입니다.

오늘 성도에게도 아브라함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모든 길을 다 알고 살지 못합니다. 때로는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하루를 시작하고, 때로는 약속과 현실 사이에서 기다리며, 때로는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길이 보이기 때문에 걷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셨기 때문에 걷는 것입니다. 믿음은 상황이 안정되었기 때문에 평안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신실하시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떠났고, 믿음으로 거류했으며, 믿음으로 기다렸고, 믿음으로 드렸습니다. 그의 삶은 믿음이 무엇인지를 한 사람의 여정으로 보여 줍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이며, 약속을 붙드는 기다림이며, 이해할 수 없는 자리에서도 순종하는 용기입니다. 성도는 아브라함처럼 오늘도 부르신 하나님을 따라 걷습니다. 그 길이 때로 낯설고 멀어 보여도, 그 길 끝에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더 나은 본향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결국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 길을 다 알지 못해도 주님을 믿습니다. 약속이 더디 보여도 주님은 신실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믿음으로 걷겠습니다.”

[신앙칼럼] 믿음으로 산다는 것, 히브리서 11장을 중심으로

  믿음으로 산다는 것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막연한 낙관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현실을 모르는 순진함도 아니고, 마음만 강하게 먹으면 모든 일이 잘될 것이라는 자기 확신도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실제보다 더 실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