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모세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모세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26년 7월 12일 일요일

[신앙칼럼] 모세의 믿음, 세상의 보화보다 하나님을 택하다

 

모세의 믿음, 세상의 보화보다 하나님을 택하다

모세의 믿음은 선택의 믿음입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광야로 밀려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하는 길을 믿음으로 선택한 사람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모세의 믿음을 매우 선명하게 증언합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였다”고 말합니다(히 11:24-25). 이 말씀은 믿음이 단순한 마음의 위로가 아니라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영적 분별임을 보여 줍니다.

모세는 애굽 왕궁에서 자랐습니다. 그는 당시 세계 강대국의 중심에서 교육받고, 권력과 문화와 부요함을 가까이 누릴 수 있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불린다는 것은 단순한 신분의 호칭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안정과 명예와 미래를 보장하는 이름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 이름을 믿음으로 거절했습니다. 믿음은 때로 세상이 부러워하는 이름을 내려놓는 용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정체성을 붙들기 위해 세상이 붙여 준 화려한 이름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선택은 인간적으로 보면 손해였습니다. 애굽에 남아 있었다면 그는 더 편안하고, 더 안전하고, 더 높아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길을 택했습니다. 여기서 믿음의 본질이 드러납니다. 믿음은 편한 길을 찾는 기술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뜻이 있는 길을 더 귀하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성도는 언제나 쉬운 길과 옳은 길 사이에 섭니다. 믿음은 쉬운 길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길을 선택하게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모세가 “잠시 죄악의 낙”을 거절했다고 말합니다. 죄는 늘 어느 정도의 즐거움을 약속합니다. 그것이 전혀 달콤하지 않다면 사람은 죄에 끌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즐거움이 “잠시”라고 말합니다. 죄의 낙은 순간적이고,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합니다. 믿음은 이 차이를 아는 눈입니다. 믿음은 지금 당장 달콤해 보이는 것을 붙잡기보다, 영원히 남을 하나님의 뜻을 붙드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히 11:26). 이것은 놀라운 표현입니다. 모세는 그리스도의 이름이 역사 속에 분명히 드러나기 오래전 사람이지만, 히브리서는 그의 고난을 그리스도를 위한 수모로 해석합니다. 이는 구속사의 깊은 통일성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길은 결국 그리스도의 길과 연결됩니다. 모세가 선택한 길은 단순한 민족적 연대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참여하는 믿음의 길이었습니다.

믿음은 가치의 질서를 바꿉니다. 세상은 보화를 크게 보고 수모를 작게 봅니다. 그러나 모세는 반대로 보았습니다. 그는 애굽의 보화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하는 고난을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 이것은 믿음이 주는 새로운 평가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길이 손해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에게는 하나님 없는 풍요가 가난이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고난이 부요입니다. 참된 부요는 소유의 양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결정됩니다.

모세의 믿음은 보상을 바라보는 믿음이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그가 “상 주심을 바라보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상은 단순히 땅의 보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시는 궁극적 인정과 영원한 기업입니다. 성도는 사람의 박수만 바라보며 살 수 없습니다. 사람의 박수는 쉽게 사라지고, 세상의 평가는 자주 흔들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삶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마지막 평가를 현재의 선택 안으로 끌어오는 능력입니다.

모세는 또한 두려움을 이기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않고 애굽을 떠났습니다(히 11:27). 물론 모세가 처음부터 전혀 흔들리지 않은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출애굽기에서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말했고,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주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두려움이 전혀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믿음은 두려움보다 하나님을 더 크게 보는 것입니다. 모세는 눈에 보이는 왕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고, 더 신뢰했습니다.

히브리서는 모세가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다”고 말합니다. 이 표현은 믿음의 깊은 비밀을 보여 줍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처럼 사는 삶입니다. 육신의 눈에는 바로의 권력이 크게 보였고, 애굽의 군대가 두렵게 보였으며, 광야의 길이 막막하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에는 하나님이 더 실제였습니다. 성도는 보이는 현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보이는 현실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모세의 믿음은 유월절을 지키는 순종으로도 나타났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그가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행하였다고 말합니다(히 11:28). 유월절 어린양의 피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표합니다. 애굽의 장자를 치는 심판 속에서 이스라엘이 보호받은 것은 그들의 도덕적 우월함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문설주에 발린 피 때문이었습니다. 구원은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마련하신 대속의 은혜 위에 세워집니다. 모세의 믿음은 이 은혜의 표지를 붙드는 믿음이었습니다.

홍해를 건넌 사건도 믿음의 절정입니다. 이스라엘은 앞에는 바다, 뒤에는 애굽 군대가 있는 막다른 자리에 섰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내셨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이스라엘이 믿음으로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다고 말합니다(히 11:29). 믿음은 언제나 막다른 길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배웁니다. 사람이 끝났다고 말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은 시작하십니다. 성도는 길이 보이지 않아도 길을 여시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모세의 믿음은 오늘 우리에게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무엇을 더 큰 재물로 여기고 있습니까. 세상의 인정입니까, 하나님의 뜻입니까. 잠시 죄악의 낙입니까, 영원한 하나님의 상급입니까. 애굽의 보화입니까,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입니까. 믿음은 결국 무엇을 더 귀하게 여기느냐의 문제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귀하게 여기는 것을 향해 인생을 사용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가장 귀하게 여기기에 하나님께 자신의 시간을 드리고, 선택을 드리고, 삶을 드립니다.

성도는 모세처럼 날마다 선택의 자리에 섭니다. 세상은 더 편한 길, 더 화려한 길, 더 인정받는 길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믿음은 우리에게 더 깊은 길을 보게 합니다. 그 길은 때로 좁고 외로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길이라면 광야도 은혜의 학교가 되고, 홍해 앞의 막막함도 구원의 무대가 됩니다.

모세의 믿음은 세상의 보화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든 믿음입니다. 보이는 왕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더 두려워한 믿음입니다. 잠시 누리는 낙보다 영원한 상급을 더 바라본 믿음입니다. 오늘 성도에게 필요한 믿음도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의 화려함 앞에서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다운 정체성을 붙들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을 가장 큰 영광으로 여기는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분을 붙든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언제나 편안한 길을 걷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모세가 애굽의 보화보다 그리스도의 수모를 더 큰 재물로 여겼듯이, 성도는 오늘도 세상의 잠시 빛나는 것보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더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으로 사는 삶입니다.

2026년 9월 셋째주 주일 오후 찬양 예배 대표기도문

2026년 9월 셋째주 주일 오후 찬양 예배 대표기도문 거룩하시고 은혜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2026년 9월 셋째 주일 오후 찬양 예배로 다시 하나님 앞에 모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오전 예배 가운데 말씀으로 우리의 심령을 깨우시고, 오후의 이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