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믿음, 보이는 거인보다 크신 하나님을 보다
다윗의 믿음은 보이는 현실을 부정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그는 골리앗이 크다는 사실을 몰랐던 사람이 아닙니다. 블레셋 장수의 키와 갑옷과 창과 위협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것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믿음은 현실을 작게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크게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사람들을 말하면서 다윗의 이름을 함께 기록합니다(히 11:32). 다윗의 믿음은 강한 사람의 자신감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담대함입니다.
사무엘상 17장의 전쟁터는 믿음과 두려움이 선명하게 갈라지는 자리입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골리앗의 소리를 들을 때마다 두려워 떨었습니다. 골리앗은 단지 키 큰 장수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신앙을 조롱하는 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했고, 이스라엘의 마음을 공포로 묶었습니다. 두려움은 언제나 현실을 과장하고 하나님을 작게 만듭니다. 이스라엘은 골리앗을 보았지만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같은 전쟁터에서 다른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골리앗의 크기보다 하나님의 이름을 보았습니다. 다윗은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고 말했습니다(삼상 17:26). 이 말은 다윗의 믿음이 어디에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다윗에게 문제의 핵심은 군사력의 차이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당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자기 안전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더 크게 여깁니다.
다윗은 갑자기 믿음의 사람이 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들판에서 양을 치며 하나님을 배웠습니다. 사자와 곰이 양 떼를 해치려 할 때,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건져 주셨음을 경험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 앞에서 과거의 은혜를 기억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삼상 17:37). 믿음은 기억하는 힘입니다. 하나님께서 어제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은 오늘의 두려움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다윗의 믿음은 세상의 방식과 달랐습니다. 사울은 다윗에게 자신의 군복과 투구와 갑옷을 입혔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것을 벗었습니다. 그는 익숙하지 않은 갑옷으로 싸우지 않았습니다. 대신 물매와 돌 다섯 개를 들었습니다. 이것은 무모함이 아닙니다. 다윗은 자신이 의지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믿음은 세상이 강하다고 여기는 것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자리와 방식 안에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골리앗에게 나아가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 17:45). 이 고백은 다윗의 믿음의 절정입니다. 골리앗은 무기를 의지했고,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했습니다. 골리앗은 자기 힘을 자랑했고, 다윗은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했습니다. 믿음은 결국 의지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가진 것입니까, 실력입니까, 사람의 인정입니까, 아니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이름입니까.
다윗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전쟁의 주인이심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삼상 17:47). 이 말은 성도의 모든 싸움에도 적용됩니다. 우리의 삶에는 여러 골리앗이 있습니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 오래된 두려움, 관계의 상처, 경제적 불안, 죄와 습관의 싸움, 미래에 대한 막막함이 우리 앞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그 싸움의 최종 주인이 자신이 아님을 압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 힘만 계산하다가 낙심하지 않습니다.
다윗의 믿음은 작은 순종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그는 왕궁의 장군으로 전쟁터에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형들에게 음식을 전하러 온 소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작은 걸음을 통해 큰 믿음의 무대를 여셨습니다. 성도는 일상의 작은 순종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양을 치던 들판에서 다윗을 준비시키셨고, 심부름의 길 위에서 골리앗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믿음의 큰 사건은 종종 평범한 순종의 길 위에서 시작됩니다.
다윗의 믿음은 승리 이후에도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쓰러뜨렸지만, 그의 인생 전체가 곧장 평탄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후 사울에게 쫓기고, 광야를 지나며, 수많은 기다림과 고난을 겪었습니다. 믿음은 한 번의 승리로 모든 문제가 끝난다는 보장이 아닙니다. 믿음은 승리의 날에도 교만하지 않고, 광야의 날에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삶입니다. 다윗의 믿음은 골리앗 앞에서만이 아니라 엔게디 굴과 광야의 침묵 속에서도 시험받았습니다.
다윗은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훗날 큰 죄를 범했고, 깊은 책망과 징계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의 실패를 숨기지 않으면서도 그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이것은 다윗이 죄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죄를 깨달았을 때 하나님 앞에 무너질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넘어지지 않는 완전함이 아닙니다. 믿음은 넘어졌을 때 다시 하나님께 돌아가는 회개의 마음입니다. 다윗의 위대함은 자기 의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긍휼을 붙드는 데 있었습니다.
다윗의 믿음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합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었지만, 그는 더 크신 왕의 그림자였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씨를 통해 영원한 왕국을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그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사건은 단순히 작은 소년이 큰 장수를 이긴 감동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가 백성을 대신하여 원수를 무너뜨리는 구속사의 표지입니다. 참된 다윗이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다윗처럼 용감해져야 한다는 도덕적 교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먼저 다윗보다 크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골리앗을 이기는 영웅이기 전에, 그리스도의 승리 안에 피난한 백성입니다. 우리가 담대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안에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미 가장 큰 원수인 죄와 죽음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용기는 자기 확신에서 나오지 않고 그리스도의 승리에서 나옵니다.
오늘도 우리 앞에는 크고 무거운 문제들이 서 있습니다. 어떤 문제는 골리앗처럼 날마다 우리를 조롱합니다. “너는 못 한다. 너는 안 된다. 너는 무너질 것이다.” 그러나 믿음은 그 소리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듣는 것입니다. 믿음은 두려움의 크기를 재는 대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보이는 거인을 부정하지 않지만, 그 거인보다 크신 하나님을 더 분명히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믿음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골리앗을 보되 골리앗만 보지 말아야 합니다. 현실을 직면하되 현실에 갇히지 말아야 합니다. 두려움을 느끼되 두려움에게 인생의 왕좌를 내어 주지 말아야 합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해 있습니다. 성도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늘의 싸움 앞에 섭니다. 그 이름이 우리의 방패이며, 우리의 용기이며, 우리의 승리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거인이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거인 앞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물매와 돌을 들었지만, 그의 참된 무기는 하나님의 이름이었습니다. 오늘 성도에게도 같은 믿음이 필요합니다. 보이는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 들리는 위협보다 신실하신 하나님, 우리의 약함보다 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으로 성도는 오늘도 고백합니다.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갑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