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벨의 믿음, 피로 말하는 예배
- 본문: 창세기 4:1-10 / 히브리서 11:4 / 히브리서 12:24
서론: 믿음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식에서 드러납니다
성경에서 아벨은 긴 생애를 남긴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왕도 아니었고, 선지자도 아니었으며, 위대한 업적을 세운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창세기 4장에 등장한 뒤 그는 곧 죽임을 당합니다. 그의 삶은 짧고, 그의 말은 성경에 거의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11장은 그를 믿음의 사람들 가운데 가장 먼저 세웁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이 말씀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알려 줍니다. 아벨의 위대함은 오래 산 데 있지 않았습니다. 많은 일을 한 데 있지도 않았습니다. 아벨의 믿음은 하나님께 드린 예배 안에서 드러났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무엇을 가지고 나아가야 하는지 알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의 제사를 받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아벨을 통해 예배의 본질을 생각하려 합니다. 예배는 단순히 종교적 행위가 아닙니다. 예배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 서는 방식입니다. 예배는 내가 누구를 의지하는지, 무엇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지, 하나님 앞에서 나의 죄와 생명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드러냅니다.
아벨의 믿음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참된 믿음은 자기 의를 들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받으시는 은혜의 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은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피 안에서 완성됩니다.
1. 아벨의 믿음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예배에서 드러났습니다
창세기 4장은 아담과 하와가 에덴 밖에서 낳은 두 아들을 소개합니다.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고, 아벨은 양 치는 자였습니다. 어느 날 두 사람은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습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습니다.
겉으로 보면 두 사람 모두 예배자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고,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하게 됩니다. 왜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까?
단순히 제물의 종류 때문이라고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구약 율법 안에는 곡식 제사도 있습니다. 땅의 소산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제물의 외형만이 아니라 예배자의 마음과 믿음입니다. 히브리서는 분명히 말합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 즉 하나님께서 주목하신 것은 단지 제물이 아니라 그 제물 안에 담긴 믿음이었습니다.
아벨은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방식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는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드렸습니다. “첫 새끼”는 가장 먼저 얻은 것, 곧 가장 귀한 것을 의미합니다. “기름”은 생명과 풍성함의 상징입니다. 아벨은 남은 것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자기에게 덜 중요한 것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가장 귀한 것을 드렸습니다.
믿음은 언제나 예배의 우선순위에서 드러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하나님께 남은 시간, 남은 마음, 남은 정성만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믿음은 하나님을 삶의 주변이 아니라 중심에 모십니다. 아벨의 제사는 그가 하나님을 가장 귀하게 여겼음을 보여 줍니다.
2. 아벨의 제사는 피 흘림의 의미를 품고 있었습니다
아벨이 드린 제물은 양의 첫 새끼였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목축민의 직업적 산물이 아닙니다. 창세기의 흐름 속에서 보면, 아벨의 제사는 피 흘림과 연결됩니다. 창세기 3장에서 하나님은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인간의 수치를 덮기 위해 생명의 희생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4장에서 아벨은 양을 드립니다.
물론 창세기 4장은 아직 레위기 제사 제도가 주어지기 전입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의 흐름 속에서 볼 때, 아벨의 제사는 장차 나타날 속죄의 원리를 희미하게 비추고 있습니다. 죄인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자기 의로 열리지 않습니다. 죄인은 생명의 대속 없이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가인의 제사가 거절된 이유를 생각할 때, 우리는 이 점을 지나쳐서는 안 됩니다. 가인은 자기 손의 수고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물론 땅의 소산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가인의 마음에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인식, 은혜 없이는 설 수 없다는 고백,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을 따라 나아가야 한다는 믿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반면 아벨의 제사는 피의 언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나아갈 때 생명의 희생을 앞세웠습니다. 이것은 예배의 깊은 본질을 보여 줍니다. 참된 예배는 인간의 성취를 자랑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참된 예배는 하나님 앞에서 내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없이는 살 수 없음을 인정하는 자리입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예배당에 올 때 우리의 공로를 들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한 일, 이룬 일, 지킨 일, 쌓은 업적을 들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여 나아갑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예배의 중심에는 언제나 십자가가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 없는 예배는 인간의 감정 행사가 될 수 있고, 십자가 없는 경건은 자기 의의 장식이 될 수 있습니다.
3. 가인의 분노는 믿음 없는 예배의 민낯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을 때, 가인은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했습니다. 여기에서 가인의 마음이 드러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이유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마음을 살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분노했습니다.
믿음 없는 예배의 특징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지 않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렸지만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습니다. 제물을 드렸지만 마음은 하나님께 드리지 않습니다. 종교 행위는 있으나 회개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뜻대로 반응하지 않으시면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고, 형제를 미워합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경고이자 긍휼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을 즉시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죄가 문 앞에 웅크리고 있다고 말씀하시며, 그 죄를 다스려야 한다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그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는 들로 아벨을 불러내어 죽였습니다. 예배의 자리에서 시작된 문제가 형제 살해로 이어졌습니다. 이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잘못된 예배는 단지 형식의 문제가 아닙니다. 믿음 없는 예배는 결국 이웃을 향한 미움과 폭력으로 번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지 않는 사람은 사람도 바르게 사랑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의를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은 형제 앞에서도 자기 의를 내려놓지 못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형제 앞에서도 긍휼을 모릅니다. 그래서 예배는 삶과 분리되지 않습니다. 예배의 실패는 관계의 실패로 이어지고, 하나님 앞에서의 왜곡은 사람 앞에서의 폭력으로 나타납니다.
4. 아벨은 죽었으나 그의 믿음은 아직도 말합니다
히브리서 11장 4절은 아벨에 대해 놀라운 말을 합니다.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아벨은 죽었습니다. 그의 생애는 가인의 폭력 앞에서 끊어졌습니다. 그는 억울하게 피를 흘렸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아벨은 죽었으나 지금도 말한다고.
무엇을 말합니까? 아벨은 우리에게 참된 예배가 무엇인지 말합니다. 그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가장 귀한 것을 드리는 삶이 참 예배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의가 아니라 피 흘림의 은혜를 의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의인의 피는 하나님 앞에서 결코 잊히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창세기 4장에서 하나님은 가인에게 물으셨습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가인은 대답했습니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사람은 아벨의 죽음을 묻어 버릴 수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 피의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때로 세상에서 손해를 봅니다. 믿음으로 산다고 해서 언제나 즉각적인 승리가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지만, 그 믿음 때문에 형의 미움을 받았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의롭다고 증언하셨습니다. 세상이 믿음의 사람을 침묵시켜도 하나님은 그 믿음을 말하게 하십니다.
이것은 오늘의 성도에게 큰 위로입니다. 우리의 작은 순종, 우리의 눈물의 예배, 우리의 보이지 않는 헌신, 우리의 억울한 고난을 하나님은 들으십니다. 사람은 몰라도 하나님은 아십니다. 사람은 잊어도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믿음으로 드린 예배는 땅에 묻히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것은 여전히 말합니다.
5.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피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벨의 이야기는 아벨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12장 24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가리켜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라고 합니다. 아벨의 피도 말합니다. 그의 피는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그의 피는 죄의 폭력을 고발합니다. 그의 피는 땅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피는 더 나은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피는 단지 억울함만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용서를 말합니다. 화목을 말합니다. 속죄를 말합니다. 새 언약을 말합니다. 아벨의 피는 가인의 죄를 고발하지만, 그리스도의 피는 죄인을 용서하는 은혜를 선포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놀라움입니다. 우리는 가인처럼 자기 의를 들고 하나님께 나아가려 했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마음속으로 형제를 미워하고, 하나님 앞에서 안색이 변하고, 죄가 문 앞에 엎드려 있음에도 그것을 다스리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안에는 아벨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인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벨의 모범만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된 아벨이십니다. 죄 없이 의로우셨으나 악한 자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죽음은 단지 억울한 순교가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자기 백성의 죄를 대신 지고 죽으셨습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양을 드렸지만, 예수님은 친히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셨습니다. 아벨은 피 흘림의 예배를 드렸지만, 예수님은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온전해집니다. 우리는 아벨처럼 믿음으로 나아가야 하지만, 아벨의 제사 자체가 우리를 구원하지는 못합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정성이 크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가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결론: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벨의 믿음은 예배의 믿음입니다. 그는 오래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예배가 말합니다. 그는 많은 업적을 남기지 않았지만, 그의 믿음이 말합니다. 그는 죽었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증언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예배자로 하나님 앞에 서고 있습니까? 가인처럼 자기 손의 수고와 자기 의를 붙들고 나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배의 형식은 있으나 회개가 없고, 제물은 있으나 믿음이 없고, 종교 행위는 있으나 하나님께 대한 경외가 사라져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화려한 예배가 아니라 믿음의 예배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는 자기 의를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은혜를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인간의 성취로 열리지 않고, 오직 피 흘림의 은혜로 열립니다. 구약의 제사는 그 길을 그림자로 보여 주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 길을 완성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공로를 붙듭니다. 우리의 정결함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를 붙듭니다. 우리의 열심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듭니다.
아벨의 믿음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무엇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느냐?”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대답해야 합니다. “나는 내 의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나는 내 공로로 서지 않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이 고백이 우리의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믿음이 우리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예배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형식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지는 믿음의 제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헌신이 남은 것을 드리는 습관이 아니라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사랑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혹 우리의 믿음이 세상에서 알아주지 않는 길이라 해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벨의 피를 들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드린 예배를 기억하십니다. 사람은 몰라도 하나님은 아십니다. 세상은 침묵시켜도 하나님은 말하게 하십니다.
아벨은 죽었으나 그의 믿음은 아직도 말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피는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합니다. 그 피는 우리에게 용서를 말하고, 생명을 말하고, 하나님께 나아갈 새롭고 산 길을 말합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가 그 피 위에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믿음이 그 은혜 안에서 새로워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믿음의 예배자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