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에게서 다윗까지: 언약의 계보, 구속의 뿌리
신약의 문을 여는 마태복음은 단순한 족보의 나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시간과 사람을 통해 짜오신 구속사의 씨줄과 날줄을 드러내는 계시입니다. 마태복음 1장 2절에서 6절 상반부까지, 아브라함에서 시작하여 다윗에 이르기까지의 족보는 하나님의 언약이 어떻게 역사 속에 구체화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신학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다윗을 낳으니라." (마 1:2-6상)
이 족보는 단지 혈통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언약의 맥을 따라 하나님의 섭리가 인간의 죄와 허물, 실패와 반역조차도 끌어안으며 구속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과정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과 약속의 계승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는 이 계보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과 약속으로 출발합니다.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시며, 그를 통해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은 오롯이 하나님의 주권적 선포이며, 인간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언약입니다.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함으로써, 메시아의 오심이 이 언약의 성취임을 명확히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 여기서 쓰인 헬라어 동사 ἐγέννησεν (egenēsen)은 능동형으로, 단순히 출산의 의미만이 아닌, 계보상 후손을 낳았다는 전통적 표현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셔서 아브라함과 사라의 불가능한 상황 속에 이삭을 주신 사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구속사가 인간의 가능성 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에 근거함을 보여줍니다.
이삭에서 야곱, 야곱에서 유다로 이어지는 계보는 하나님의 은혜가 인격을 넘어 선택으로 역사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삭은 이스마엘보다, 야곱은 에서보다, 유다는 요셉보다 선택받았습니다. 선택의 원리는 인간적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유다는 넷째 아들이었고, 여러 실수와 불의가 있었지만 메시아 계보를 이었습니다. 이는 구속사는 도덕적 자격이 아니라 은혜의 선택임을 선포합니다.
죄 많은 사람들 속에 흐르는 구속의 실타래
이 계보에 나열된 인물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각 인물들은 완전한 신앙인이 아니라 오히려 연약하고 때로는 비윤리적인 선택을 한 이들이 많습니다. 유다는 며느리 다말과 동침하여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습니다. 세상 기준으로 보면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사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를 족보 속에 숨기지 않고 드러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마저도 구속사 속에 사용하시는 은혜의 증거입니다.
다말, 라합, 룻은 이방 여인이며, 사회적으로 주변인으로 간주되던 여성들입니다. 라합은 기생이었고, 룻은 모압 여인이었으며, 다말은 며느리의 신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메시아의 계보를 이루는 결정적 인물들로 사용됩니다. 이것은 복음이 특정한 민족이나 계층, 도덕성에 갇히지 않고, 모든 민족과 인생의 경계 너머로 확장되는 보편적 구속임을 나타냅니다.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 이 표현에서 헬라어 ἐκ (ek, ~에게서)은 단순한 출산의 표현을 넘어 출신과 정체성을 함께 내포합니다. 마태는 의도적으로 이방 여인들의 이름을 넣어, 복음의 보편성과 하나님의 자유로운 은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경건한 혈통과 완벽한 계보에 의해서가 아니라, 죄인과 이방인, 잊힌 자들을 통해 이루어지는 구속의 드라마입니다.
다윗, 왕으로서의 언약 성취의 지점
마태는 이 계보의 첫 번째 중요한 전환점을 "다윗"에서 맞이합니다. 6절은 말합니다: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여기서 유일하게 이름 앞에 직함이 붙습니다. "다윗 왕". 이는 단순한 정체성 언급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음을 나타냅니다.
사무엘하 7장에서 하나님은 다윗과 언약을 맺으시며, 그의 후손 중에서 영원한 왕위를 이어갈 자가 나올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마태는 다윗을 메시아 계보의 중심으로 세움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약속의 성취자, 즉 참된 다윗의 자손임을 증명하고자 합니다.
"다윗 왕을 낳으니라"는 말은, 인간 왕조의 이상이 이제 메시아 안에서 완전한 하나님 나라의 통치로 이어진다는 선언입니다. 다윗의 왕권은 죄로 인해 쇠퇴하였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통치로 회복됩니다. 구속사의 흐름은 인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고, 오히려 더 큰 은혜로 나아가게 되는 신비를 보여줍니다.
결론
마태복음 1장 2절에서 6절 상반부까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의 족보는 단순한 가계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과 은혜가 어떻게 인간의 역사와 현실 속에서 구체화되는지를 보여주는 신학적 선언입니다. 이 족보는 인간의 자격이 아닌 하나님의 선택과 신실하심을 드러내며, 죄와 허물 가운데서도 구속사를 멈추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합니다.
그리고 이 구속의 계보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어집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배경을 가졌는지가 하나님의 구속사를 제한하지 않습니다. 다말과 라합과 룻을 쓰신 하나님, 유다와 다윗을 통해 일하신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인생 가운데서 구속의 계보를 이어가고 계십니다. 그분의 은혜는 언제나 우리의 실패를 뛰어넘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우리로 하여금 그 계보 안에 참여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족보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억하며, 우리 삶 또한 그분의 구속사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붙들어야 합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